어렸을 때부터 꿈꾸던 장소가 있었어요.
외국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아이들을 위한
나무 위 작은 오두막집.
어린아이 두 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에
외울 정도로 여러 번 읽어 너덜너덜해진 책과
손때가 묻어 꾀죄죄해진 장난감.
덮자마자 잠이 솔솔 올 것만 같은 포근한 담요.
특별할 것 없는 소박한 장소이지만
생각만 해도 근사한 나만의 비밀기지죠.
시험 성적이 좋지 않아 부모님께 야단을 맞거나
친구와 싸웠는데 아직 화해를 하지 못했거나
혹은 연인과 헤어져서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을 때.
가만히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나만의 공간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비록 영화에 나오는 나무 위 근사한 오두막집이 아니더라도
나만 알고 있는, 그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져서
앞으로 두고두고 찾아가고 싶은 나만의 비밀기지.
하나쯤 가슴 속에 품고 살고 싶습니다.
집을 나왔다. 가출했다는 소리다. 나이 서른 먹고 저지른 일탈이었다. 거창한 선언도, 대단한 짐도 없었다. 남들은 독립하는 나이에 무슨 가출이냐 싶겠지만 나름대로 사연이 있다. 발단은 아침부터 시작된 엄마와의 사소한 충돌이었다. 1년 간의 워킹 홀리데이를 마치고 돌아온 뒤 야심 차게 준비하던 본업 복귀는 타이밍과 운때가 야속할 정도로 어긋나고 있었다. 길어지는 공백기에 마음은 바짝 가물어 아주 작은 불씨에도 쉽게 타오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불쏘시개는 공간의 공유였다. 난생처음 경험한 타지에서의 자취 생활은 나에게 완벽한 독립의 맛을 알려주었다. 내가 유발하지 않은 소음이 없는 곳, 온전히 내 의지로만 운용되는 시간. 그 평온함에 익숙해진 뒤 돌아온 집은 묘하게 불편했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일에 집중할 수 있었고 거실에서 들려오는 TV 소리나 주방의 달그락거림조차 귀에 거슬리는 지경이었다. 흔히 독립은 번듯한 어른이 되기 위한 과정이라고들 하지만 내가 느낀 독립의 이유는 조금 달랐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이름표를 떼고 사람 대 사람으로 부딪히지 않기 위해, 서로의 밑바닥을 보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각자의 섬이 필요했다.
평소 나는 주위에서 알아주는 우리 집 애착 인간이었다. 왕복 다섯 시간에 달하는 통근길을 견디면서도 선후배 동료들의 숱한 자취 권유를 뿌리쳤던 이유는 한 시간을 자더라도 내 방의 내 침대에서 가족들의 기척을 느끼며 잠드는 편이 행복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집을 탈출하고 싶은 공간으로 여기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무척 씁쓸했다. 고성이 오간 뒤 엄마가 마음을 추스르러 외출하자 텅 빈 집에 덩그러니 홀로 남겨졌지만 여전히 숨이 막혔다. 감정의 배출구가 필요했다.
문득 어릴 적 영화에서 본 나무 위 오두막, 일명 트리 하우스가 떠올랐다.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에서 주인공과 친구가 어릴 적 함께 시간을 보낸 오두막에 올라가 해묵은 갈등을 풀던 장면이 눈에 훤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로지 나의 감정에만 집중할 수 있는 그 비밀 기지가, 지금의 나에게 절실했다. 휴대폰을 뒤적이다 집에서 사십 분 거리에 있는 비즈니스호텔을 찾아냈다. 대충 잠옷 한 벌만 챙겨 집을 나섰다.
[나 오늘 집 안 들어가. 밖에서 잘 거니까 그렇게 알아.]
나만의 영원한 대나무숲인 언니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아무튼 부모님께 전한 것은 아니니 가출이라 하겠다. 체크인을 하고 침대에 몸을 던지니 비로소 고요가 찾아왔다. 감정이 어긋나면 상대의 숨소리조차 곱게 들리지 않는 법인데 이곳에는 제재하는 사람도, 눈치 줄 사람도 없었다. 한숨에 섞어 내뱉은 감정들이 침구 사이로 흩어졌다. 언니는 내 소식을 듣고 옷가지를 챙겨 호텔로 찾아왔다. 왜 왔어? 툴툴거리면서도 내심 반가워 야식까지 시켜 먹었다. 우리는 호텔방을 오두막 삼아 나란히 누워 시간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언니는 호텔에서 바로 회사로 출근했고 나는 또 다시 홀로 남겨진 공간에서 짐을 챙겼다.
하룻밤의 도피는 훌륭했다. 물론 마음의 짐을 던 만큼 통장의 무게도 가벼워졌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가족끼리 만든 단체 채팅방에 메시지를 남겼다. 조금 민망하니까 그냥 이모티콘 하나. 머지않아 부모님의 답장이 올라왔다. 잘 자고 왔어? (웃음웃음).
“그냥 얼마나 속상했으면 집에도 들어오기 싫었을까 싶었지.”
며칠 후 엄마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엄마는 그날의 가출을 그렇게 추억했다. 엄마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나에게 정말 필요했던 것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돌아올 잠깐의 부재였다는 것을. 높은 나무 위나 호텔의 푹신한 침구 위. 그곳들이 진정한 비밀 기지가 되어줄 수는 없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를 때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는 마음속 한 칸의 여백. 그 작은 비밀 기지만 있다면 우리는 언제든 기꺼이 멈추고 다시 쉬어가며 인생을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그날의 가출이, 아무 말 없이 한달음에 달려와 준 언니의 온기가, 그리고 나보다 먼저 내 마음을 읽어준 엄마의 너른 이해가 바로 그 비밀 기지였다.
문득 궁금해진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의 오두막은 어디에 있는지, 또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어디에 있든 어떤 모습이든 부디 그곳이 여러분을 가만히 품어줄 수 있는 다정한 공간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