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체육관처럼
하... 하...
침착하게 호흡을 고른다. 손등을 타고 흐른 땀이 라켓 손잡이에 스며든다. 이제 상대의 서브를 받을 차례. 스코어는 10:11. 남은 기회는 없다. 단 한 번의 실수가 패배를 안겨줄 수도 있는 상황. 시끌벅적한 경기장은 지금 물속에 잠긴 듯, 아무런 응원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오직 눈앞의 공. 저 조그만 하얀 원 하나에만 모든 신경을 곤두세울 뿐.
탁.
삐익-!!
그날도 손에서 라켓은 미끄러졌다. 공은 네트를 넘지 못한 채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고, 그녀는 코트를 등지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눈앞이 캄캄했다.
'또 졌다.'
대회를 마치고 탁구부 버스에 오른 하늘은 고개를 숙인 채 자리에 앉자마자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8강 전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탁구 선수로서의 길은 또 한 번 멀어져만 갔다. 버스가 출발하자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은 흐릿했다. 흘러가는 바깥 사물 따라, 생각 속 여러 장면이 스크린 없이 틀어진 필름처럼 그녀의 머릿속을 헤집고 지나갔다.
'와~ 잘한다!'
'얘 재능 있습니다 어머니.'
'우리 하늘이는 분명 멋진 탁구 선수가 될 거야!'
오래전부터 늘 꿈꿔왔던 탁구 선수였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그 꿈의 벽은 높아져만 갔다. 그래도 나름 어릴 적 재능 있다는 소리를 듣고 입문한 그녀였다. 실제로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또래 애들에 사이에선 하늘의 적수가 될 만한 상대는 드물었다. 그런데 재능의 발현은 시기상의 문제였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니,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또래의 선수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재능이란 것도 결국엔 급이라는 게 있었다. 누구는 전국권을 넘어 세계권에서 다투고 있었고, 심지어 누구는 비슷한 나이대에 올림픽에 나가 메달을 따기도 했다. 금호 고등학교는 나름 탁구부로 유명한 학교였기에 하늘은 이를 악물고 진학에 성공했지만, 그 뒤엔 하염없이 높은 벽만이 그녀를 가로막고 있었다.
"이하늘. 너 요즘 슬럼프니? 훈련 때도 실수가 잦고, 최근 대회 성적도 그렇고. 이러다 주전에서 빠지는 수가 있어."
감독님의 말은 이젠 단순한 엄포가 아니었다. 물론 하늘도 지금의 사태가 어떤 상황을 의미하는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공식적으로 매겨지는 랭킹은 없지만, 한 시장 내에서 평가되는 암묵적인 랭킹은 어느 분야에나 있는 법이었다. 거기서 뒤쳐질 때마다 다가오는 조바심. 한때는 당연하게 여겨왔던 주전 자리였지만, 어느새 하늘은 감독님의 눈치를 보며 하루하루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사실은 최근 성적만 놓고 보면 언제 밀려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한 성적이었다. 하늘은 몸이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 탓에 답답한 마음만 늘어갈 뿐이었다.
"이하늘 듣고 있어? 너 계속 그런 식으로 하면 주전에서 빠지는 수가 있다고."
"듣고 있어요."
"너 저번에 붙었던 상대한테 또 졌어. 그건 알지?"
"알아요."
"알아? 안다는 애가 또 똑같이 지냐? 너 저번에도 듀스까지 갔다가 어이없이 실수해서 지지 않았어? 그래도 그땐 지고 나서 울기라도 했지 지금은 표정 보니까 아얘 놨네 놨어. 너 탁구 계속할 생각은 있긴 하냐?"
"..."
그는 답답하다는 듯 손뼉을 크게 한 번 치며 선수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이내 작정한 듯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자! 다들 주목! 이번 대회 성적 꼬락서니 보니까 다들 글러먹었다. 야, 지금 너네 나이대에 올림픽 나가서 메달..."
감독님의 잔소리는 버스 안을 메아리치듯 떠돌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떠한 말도 하늘의 귀엔 아무런 자취도 남길 수 없었다. 나머지 선수들 또한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아마 각자의 눈앞엔 패배로 얼룩진 하루의 파노라마가 흐르고 있었을 것이었다. 하늘은 흘러가는 구름 따라 시선을 옮겨갔다. 노을은 쓸데없이 이쁘기만 했다. 언제나 그랬듯 세상은 알아주지 않는다. 그저 알아서 살아남으라며 차갑게 비웃을 뿐이다.
하늘은 문득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냥... 그만둘까?'
해가 완전히 저문 늦은 밤이 되어서야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버스에서 내린 뒤, 선수들은 체육관 앞에서 또 한 번 감독님의 설교를 들어야만 했다. 하늘은 당장이라도 집에 들어가 침대에 누워 잠을 자고 싶었다. 시합 때 온몸에 힘을 준 채로 뛰어서 그런지 제대로 서 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발바닥이 뜨거웠고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내일 토요일에도 훈련이 있으니 그렇게 알고!"
"넵."
"목소리 봐라 이거. 정신상태가 글러 먹었어 너넨. 목소리 크게!"
"넵!"
"이상!"
선수들은 감독의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흩어지는 개미떼처럼 각자의 집으로 해산했다. 하늘도 곧장 집으로 향하려던 찰나 문득 교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어딘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끝내 매듭을 짓지 못한 기분. 미처 날아가지 못한 공 한 점의 미련. 그녀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천천히 몸을 돌려 체육관 쪽으로 걸음을 틀었다.
끼익-
문을 열고 들어서자, 체육관 내부엔 싸늘한 공기만이 가득했다. 불 꺼진 체육관은 텅 빈 소리와 함께 정적에 잠긴 듯 고요했고, 또 공허했다. 운동화가 바닥을 떼며 내는 소리는 쓸쓸하게만 들렸다. 하늘은 탁구대 옆에 놓여있던 벤치에 걸터앉았다. 그러자 빛을 잃은 경기장 속 탁구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왠지 자기 자신과 매우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꿈을 이룰 수 있다며 그리 믿고 살아왔다. 하지만, 꿈이라는 것은 자꾸만 헬륨을 가득 담은 풍선처럼 서서히 손에서 멀어져 가기만 할 뿐이었다. 그녀는 어느새 운동화 끈을 묶기가 싫은 날이 많아졌다. 막막한 미래는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고, 가슴속 부담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그렇다고 모든 걸 내려놓기엔 지금까지의 시간들이 아까웠다. 훈련장 냄새, 땀에 젖은 유니폼, 한 점 한 점 쌓아 올린 순간들. 그 모든 것이 아직은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지금 당장 이 길을 끊어버린다면, 그녀 자신의 삶은 마치 지금 이 불 꺼진 체육관처럼 공허해질 것만 같았다. 자그마치 10년 이상을 그려왔던 그림이 다시 백지장 상태로 돌아간다는 것. 하늘은 그게 가장 무서웠다.
하아...
그러다가도 하늘은 무의식적으로 오늘의 경기 내용을 다시 한번 머릿속으로 짚어보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습관이 되어 버렸다. 여전히 가슴속 한편에선 경기를 뛰고 있었고, 심장은 미세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때 팔을 조금만 더 뻗었더라면... 그때 서브 실수만 하지 않았더라면... 발을 좀 더 빨리 뻗었더라면... 머릿속을 떠도는 후회의 필름 속에서, 대회를 잘 마무리하지 못한 사실이 이제야 더욱 아프게 다가왔다.
덜그럭- 덜그럭-
그때 체육관 안 어딘가, 덜그럭 거리는 소리가 어둠을 가르며 그녀의 귀에 스며들었다. 하늘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소리는 창문 쪽에서 나는 듯했다. 그녀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가 나는 방향을 따라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처음에는 바람이 스쳐 지나가며 내는 소리려니 했다. 그러나 그 소리는 갈수록 점점 또렷해졌고, 바람이 불어 만든 소리라기엔 어딘가 수상쩍었다.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보아하니 체육관 끝자락 쪽, 그곳에 나있는 창문 하나만이 요란스레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밖에서 다급히 문을 열어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았다. 하늘은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다시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녀가 앞으로 다가서는 순간, 마치 범인은 하늘을 의식한 듯 흔들림이 뚝 멈췄다. 그때 하늘은 직감했다. 이건 분명히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흔들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소리를 죽이며 창문 앞으로 더욱 가까이 다가섰다. 하지만 창 밖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은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곤 조심스레 창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유리창에 손끝이 닿으려던 그 순간...
"으악!"
하늘은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움찔했다. 뒷걸음치던 발이 허공을 디뎌버렸고 곧장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그 때문에 바닥에 엉덩이를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땅에 제대로 찧었고, 그 충격이 허리를 타고 등에까지 찌릿하게 퍼졌다. 그러나 통증을 느낄 새도 없었다. 어둠 속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번개처럼 튀어나온 것이다.
"끼야아악!!"
또다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어딘가 낯선 기척을 잔뜩 품고 있는 그 고양이는 푸른빛을 띤 초승달 같은 눈동자를 부릅뜨며 하늘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고양이라기엔 대단히 희한한 생김새였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켜 그대로 체육관 출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발이 바닥을 제대로 딛지도 못할 만큼 허겁지겁 내달렸다. 그렇게 들고 온 라켓이며 물병, 운동복이 담긴 가방도 모두 잊은 채 그녀는 온 힘을 다해 체육관 밖으로 뛰쳐나왔다.
하늘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학교 후문 쪽으로 정신없이 뛰쳐나왔다. 하필이면 검은 털을 두른 고양이라 어둠 속에서 두 눈동자만 허공에 휑그러니 떠 있는 것처럼 보여 더 무서웠다. 날카롭게 뜬 녀석의 눈은 마주치자마자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후우... 후우...
하늘은 벽면에 기댄 채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자 갑자기 부끄러움이 확 밀려왔다. 고작 고양이 하나 때문에 온 동네가 시끄럽게 비명을 질러댄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더 이상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하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바지 주머니 속에서 웅- 웅- 하는 진동이 피부를 타고 올라왔다. 휴대폰 진동이었다. 꺼내어 확인해 보니, 엄마에게서 온 부재중 전화가 다섯 통이 넘게 쌓여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간은 어느새 밤 열 시를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하늘은 서둘러 집으로 가기 위해 골목을 빠져나가려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때, 뒷 길목 희미하게 감도는 가로등 빛 아래에 누군가가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이 하늘의 시야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그냥 지나가는 행인이겠거니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는 그곳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할 뿐 미동조차 하질 않았다. 모자 속에 가려진 그의 시야 때문에 확신할 순 없었지만, 하늘은 왠지 그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점차 경계심을 머금고 걷기 시작했다.
거리가 조금 가까워지자 하늘은 걸음을 도중에 멈추었다. 어쩐지 그의 차림새가 익숙하게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곧 하늘은 그가 이 길목에서 이따금씩 나타나곤 하는 소문의 그 노숙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늘은 주로 정문 쪽만 드나들었지 후문 골목길은 사실 거의 지나친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에 대한 이야기도 언제나 소문으로만 들었을 뿐 직접 마주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들은 바와 같이 그의 외형은 확실히 독특했다. 헝클어진 백발은 마치 새벽 서리가 내려앉은 듯 은빛으로 반짝이고 있었고, 옷차림 또한 여느 노숙자와는 달랐다. 그리고 밤중에 흰 불빛 아래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은 평범한 사람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마치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닌 듯 어딘가 기이한 분위기를 물씬 풍겨왔다.
하늘은 한창 학교에서 떠돌고 있는 괴상한 소문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녀는 운동부 생활 탓에 그동안 또래 친구들과의 교류가 거의 없다시피 했기에, 언뜻 들려오는 단편적인 소문으로만 그를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딱 하나는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밤중에 절대로 그를 마주치지 말 것.'
하지만 하늘은 소문이건 뭐건 간에 일단 몸이 너무 지쳐있었다. 그리고 길을 돌아가기엔 시간이 너무 늦어 버렸다. 지금은 집에 빨리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결국 그녀는 그를 못 본 척하고 지나가기를 택했다.
'뭐, 그냥 소문일 뿐이니까... 설마 무슨 일 생기겠어?'
이제 그와의 거리가 단 몇 걸음도 채 남지 않았을 때였다. 등골을 타고 차갑게 스며든 전율이 하늘의 온몸을 순식간에 닭살 돋게 만들었다. 저도 모르게 그와 눈이 마주치고 만 것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빛내는 가로등 불빛을 뚫고 나올 만큼 선명하게 비친 그의 맑고도 깊은 푸른 눈. 하늘은 걸음을 멈추고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그 눈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불현듯 아까 보았던 고양이가 떠올랐다. 왠지 둘의 눈빛이 굉장히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그는 가로등 기둥에서 천천히 몸을 떼어냈다. 그러자 흐물거리듯 부드러운 동작으로 하늘이 서 있는 쪽으로 몸을 틀었다. 주변은 공기가 멎은 듯 정적에 휩싸였다. 그는 곧 서서히 그녀에게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늘은 뒷걸음도 못 칠만큼 몸이 완전히 굳어버렸다.
그러자 어두운 그림자 속, 수염으로 뒤덮인 얼굴 한가운데엔 희미한 미소가 일렁였다. 그리고 인사를 건네듯 오른팔을 반쯤 들어 올리고서,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얼굴에 걱정이 한가득이네."
"네...?" 하늘은 의도치 않게 되물었다.
어느새 그는 외투 주머니에 두 손을 꽂은 채 그녀 앞에 다가가 서 있었다. 확실히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한시도 눈을 떼려야 뗄 수 없는, 사람의 시선을 단번에 집중시켜 버리는 그는 어딘가 신비로운 힘이 깃들어 있었다. 하늘은 다리에 힘이 풀려 금방이라도 주저앉아버릴 것만 같았다. 그는 별로 개의치 않은 듯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갔다.
"걱정 마. 난 사람 해치는 그런 나쁜 인간 아니야. 그저 키치들을 도와줄 뿐이지."
그는 주머니 속에서 손을 꺼내 팔짱을 끼었다. 그리고 잠시 하늘의 행색을 천천히 눈길로 더듬었다.
"너 여기 탁구부 선수지? 대단한걸. 그래도 아무나 못 들어가는 곳인데."
"어..."
"그나저나 오늘은 대회가 있었던 모양이군."
하늘이 대답하기도 전에 그가 먼저 말을 덧붙였다. 그는 무언가 알고 있는 듯한 말투였다. 하늘은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는 걸 가까스로 붙들어 맸다. 도망치고 싶어도 몸은 너무 지쳐있었고, 생각은 제멋대로 굴러가는 바람에 말문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키치는 탁구선수가 꿈인가?"
그러고 보니, 그는 계속해서 처음 듣는 낯선 말로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그때 휑한 바람이 그들 사이를 놓고 지나가자 그는 고개를 위로 바짝 올려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이 듬성듬성 떠 있는 바다 속에서 달은 모습을 일부 감추고 있었다.
"아쉽게도 오늘은 시간이 많이 늦었네. 내일도 훈련하러 학교에 오지? 끝나고 저기 학교 뒷산에 있는 공원으로 와."
"제... 제가 그곳엘 왜 가야 되는 거죠? 그리고 내일 훈련한다는 건 또 어떻게 아세요?"
"너네 감독님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던데?"
하늘은 순간 당황했지만 그렇지 않은 척 대꾸를 이어갔다.
"저한테 무슨 짓을 할 계획이죠?"
"무슨 짓을 하긴. 네가 도와달라고 소리치고 있잖아?"
"네?"
그때 그가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늘은 움찔하며 두 눈을 꼭 감았다.
"무... 무슨 짓이에..!"
따악-!
그는 하늘을 향해 팔을 뻗고선 손가락을 세게 튕겼다. 그 순간, 울리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스며들어 있던 그림자가 물결처럼 일렁였다. 그 어둠은 소리 없이 벽을 타고 올라가더니 가로등 꼭대기에 이르러 별빛처럼 반짝였다. 그러자 곧 하늘에서 유성우가 쏟아지듯 하늘의 주위 곳곳에 흘러내렸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조차도 잊어버릴 만큼 환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부드러운 최면에 하늘은 넋을 잃고 말았다. 그녀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선 꿈결처럼 아른거리는 세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사람은 꿈을 꾸고 깨지만 키치는 꿈을 잊지."
하늘은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내일 한 번 와 봐. 그곳엔 아직 깨지 않은 꿈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