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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봉

그저 꾸준히 이 악물고 버티며

by 사색가 연두


한적한 방 하나에 놓인 철봉. 나는 거기서 매일 매달리고 버틴다. 정말 이 악물고 온몸으로. 어릴 땐 그런 순간이 철봉에 매달릴 때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꼭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그래야 할 때가 온다. 어쩌면 매 순간 매달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살아가는 모든 순간을 이 악물고 버티며 지낼 수만은 없다. 인간은 언제라도 지칠 때가 오기 마련이다. 누구는 인생이 사실 별것 없다고 가르친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세상에 놓인 의미 같은 건 없으며, 결국엔 모든 순간들이 다 죽음을 향해 간다. 나는 그런 찰나를 살아가는 생명체일 뿐이다. 그렇지만 현재 나에겐 삶이란 것이 그렇게 가볍게 느껴지지 만은 않는다.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무거운 짐을 지고서 애처롭게 철봉에 매달리며 아등바등거리고 있는 모습과 같다.


내가 처음 턱걸이를 시도했을 땐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그 당시에 나는 턱걸이를 단 3개밖에 하질 못했다. 그래도 그때로부터 약 7년이 지난 지금은 꽤 많이 늘었다. 어디 가서 나 턱걸이 좀 한다고 해도 될 정도로. 그런데 그동안 운동을 해 오면서 느낀 건, 턱걸이 횟수를 늘리는 방법은 딱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냥 꾸준히 해나가는 거.' 물론 중간에 쉬면서 비어있는 시간도 있었지만 괜찮다. 언제든 다시 봉을 잡으면 되는 거였다. 그렇게 잡고 땅기며 온몸을 자극시키는 일을 7년 간 반복했다. 그 결과, 나는 어느새 손에 굳은살도 좀 베였고 과거에 비해 꽤 괜찮은 몸을 얻었다.


삶도 마찬가지다. 자기 계발? 성공하는 방법? 나는 그런 편법 따윈 모른다. 다만 한 가지, 그냥 매달리고 버티는 거. 그렇게 매일 온몸이 부서지는 듯한 일을 반복해 단단해지고 강해지는 것. 어찌 보면 무식한 방법으로 보일 수 있겠다. 일을 하는 것에 있어서 효율적인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도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정말 '꾸준함'만큼 어렵고 강력한 무기는 없다. 애초에 요령이란 것도 꾸준함에서 나온 결과로 터득하게 되는 것이며, 효율도 거기서부터 따라오기 마련이다. 뭐든 꾸준히 해 봐야 아는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요령을 찾는다는 것은 걷기도 전에 뛰는 법부터 배우려고 하는 것과 같다.


턱걸이를 처음 시도했을 땐, 등근육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몰랐다. 친구가 "등에 힘을 줘!"라고 말을 해도, 나는 도대체가 등에 힘을 어떻게 주라는 건지 그 자극점 자체를 못 찾았기 때문이다. 평생 등근육이란 걸 사용해 본 적이 없으니 당연하다. 그렇게 초창기엔 턱걸이를 요령 없이 팔힘으로만 당겼다. 당근 비효율적인 방법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운동을 하고 난 다음날엔 팔을 제대로 들지도 못할 정도로 알이 배기곤 했다. 하지만 꾸준히 턱걸이를 해 나가다 보니, 어느새 양쪽 광배근에 어떻게 자극을 줘야 하는지 슬슬 몸에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턱걸이 개수도 점점 늘어갔다. 결과적으로 지금은 일반적인 턱걸이 자세뿐만 아니라 다양한 변형자세까지도 구사할 줄 알게 되었다. 처음엔 등에 힘도 못줬던 멸치 같은 몸을 가진 놈이, 이제는 봉에 매달려 부위 별 근육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을 만큼 '성장'한 것이다.


삶은 '성공'이 아닌, '성장'의 과정이다. 그리고 성장이란 건 꾸준한 과정에서부터 이뤄낼 수 있다. 어떤 일이든 상관없이, 누구는 냉소적으로 그래봐야 의미 없다 말하는 일들도, 매일매일 반복하다 보면 당신은 어느새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되어있을 것이다. 철봉에 매달려 애처롭게 버티고 있는 모습은 어찌 보면 형편없이 짠하게만 보인다. 하지만 막상 봉에 매달리며 버티고 있는 그 사람은 다른 이들이 자신을 보는 그 하찮은 시선들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그저 그 순간 온 힘을 다해 매달리는 것에만 매몰되어 있는 상태이다. 이런 과정이 하루하루 쌓여, 한 달 뒤 그리고 일 년 뒤쯤엔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게 돼 있을까? 꾸준함의 결과는 상상 그 이상을 전해준다.


세상은 그렇다. 절대 우리를 온실 속으로 초대하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더라도 반복하다 보면 지칠 때가 오고, 지루할 때가 오며, 도리어 그냥 때려치우고 싶을 때도 온다. 가만 보면 인간의 의지는 허상인가 싶을 정도로 나약하다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의지는 복잡한 개념이 아니다. 매우 '단순'하다. 나의 물러터진 뇌 속을 해킹하고 개조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나의 육체(몸)를 그에 맞는 환경에 던져놓으면 정신은 따라오게 되어있다. 별생각 없이, 일단 잡고 당겨보자. 그렇게 한 번 시도해 보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활력은 그렇게 불어넣는 거다.


나는 아직도 매번 철봉 앞에 설 때마다 두렵다. 당길 때에 그 고통스러움을 알기에. 마땅히 해야 할 때에도 쉬고 싶다는 유혹의 그 달콤함을 알기에. 하지만 이내 그런 생각이 든다 싶으면 일단 봉 위에 손을 얹어 본다. 그런 다음 아무 생각 없이 뇌를 비운다. 꽉 쥐고, 힘을 넣고, 당긴다. 양 날개뼈에 자극이 온다. 고통스럽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살고 있구나라는 쾌감도 뒤따라 온다.


이를 꽉 깨물고 온몸으로 버티며



들숨엔 활력을, 날숨엔 노래를 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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