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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

마음을 담아 채우는

by 사색가 연두


"언제 한 번 밥 한 끼 해요!"


사람들끼리 흔히 형식상 주고받는 말. 우리는 이것을 '빈말'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아무리 비어있는 말처럼 들린다 해도, 그 이면엔 항상 숨겨져 있는 뜻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 '빈말'이란 건 없다. 저 말을 던진 사람이 정말 밥 한 끼 같이 먹고 싶어 던진 말이었을 수도, 아니면 굳이 먹고 싶진 않은데 그냥 예의 상 하는 말이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린 굳이 그걸 해석하지 않을 뿐이다. 감으로 대충 알 수 있기도 하고, 아니면 알 필요가 없을 뿐이기에.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 빈 그릇을 놓고 생각해 보자. 우린 빈 그릇을 볼 때, 때론 그 그릇에 음식이 담겨 있는 상상을 하곤 한다. 말도 이와 같다. 빈 말처럼 보여도 사실 우리 마음속엔 무의식 적으로 뜻이 담긴다는 의미다. 이렇듯 우리는 비어있는 공간에 어떠한 물건을 상상 속으로 채워 넣는 버릇이 있다. "사랑해."라는 말의 의미. 이것이 정말 온 진심을 다한 따뜻함에서 나온 말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말에 조금이라도 냉기와 귀찮음이 섞인다면, 연인사이엔 이를 귀신같이 알아챌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래서 나는 속에 없는 말을 잘하지 못한다. 나만 진심이면 또 괜히 언짢아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대방만 진심일 경우, 괜히 미안해지기 때문이다.


빈 공간은 이렇게 어떤 결과에 대한 가능성을 나타내어 준다. 무엇인가를 채우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그 공간은 비어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득 찬 그릇은 더 이상 다른 음식을 담아낼 수 없지만, 비어있는 그릇은 언제든 새로운 음식을 채워 넣을 준비가 되어있다. 그리고 그 비어있는 공간을 어떻게, 무엇으로 채울 지에 대해서는 본인의 몫이다. 여기서 '정성이 담긴 음식'이라는 표현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 때 단순히 재료를 손질하고 그릇을 채우는 것만이 아닌, 전하려는 마음까지 함께 그릇을 채운다. 그리고 그 결과로 사랑하는 이들은 당신이 만들어준 음식을 맛있게 먹어준다. (여기서 요리를 잘하고, 못 하고는 따지지 않기로 했다.)


인간의 생각은 드넓은 우주와 같다. 그런데 우주에는 비어있는 공간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머릿 속도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공간이 여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동시에 언제든지 빈 그릇을 채워 넣을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빈 그릇을 채우는 과정에서 음식의 의미를 더 깊고 풍요롭게 만들어 나가게 된다. 이렇듯 우린 언제든지 그 공간에다 긍정을 채워 넣을 능력이 있으며, 그것이 곧 나 자신을 살아가도록, 삶이 지속되도록 해주는 힘이 되어 준다. 또한 그 힘을 나 아닌 타인에게도 전해줄 수 있다. 여기서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실 인간이 서로 주고받는 말엔 겉과 속이 다를지언정 진정으로 '비어있는' 말 같은 건 없다.


하지만 내가 과연 모든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포용해 낼 수 있을까? 글쎄, 나는 아무래도 아직 예수와 부처의 마음을 갖기란 벅차게만 느껴진다. 그렇기에 사랑과 애정 같은 감정뿐만 아니라 원망과 싫증과 같은 감정도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분명히 알고 있는 한 가지는, 누군가를 싫어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내겐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도 누군가를 싫어하고 원망해 본 경험이 적지 않다. 살아가다 보면, 학교에서든 회사에서든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분명히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들을 두고 굳이 내 이런 부정적인 마음을 비춰본 적은 없다. 쓰레기를 던지며 싸운다고 좋을 게 뭐가 있나? 살면서 굳이 주먹을 내밀지 말아야 할 싸움도 있는 법이다. 학창 시절이라면 모를까, 성인이 되어서 주먹다짐을 하긴 좀 그렇지 않은가.


다른 사람을 미워해봐야 나만 힘들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어선 아무 소용없다. 물론 정말 당신에게 큰 죄를 저지른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도저히 좋은 감정을 담아 음식을 내놓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인간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한 복수는 또 다른 재앙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만약 자신이 정말 누군가 때문에 괴롭다면,


주위를 둘러보자.


당신을 혹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단 한 명이라도 괜찮다.


인간의 유한한 삶이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음식을 채우기도 모자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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