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여행에서 얻은 감기
이번 여행은 인도네시아다.
인구 3억이 되는 젊은 나라.
2050년엔 세계 4위 경제대국이 된다는 자원 많은 나라.
지금은 복작대는 사람들과 오토바이 외엔 볼 게 없다지만 인도네시아 인이 다되었을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날 반가움에 너무 행복하다.
행복도 잠시, 에어컨을 세게 틀고 잔 때문인지 목이 가서 목소리는 쇳소리가 되고
지난번 어깨부상이 다시 도져 이틀째부터는 골프채도 못 잡고 애만 태운다.
부족함 없을 것 같던 이번 여행에 몸이 부대끼니 시간 보내기도 힘이 든다.
그나마 친구들 덕에 미슐랭 음식과 와인을 마시는 호사는 누린다.
돌아오는 비행기 7시간 동안 안쪽에 앉아 몸을 꼬고 견딘 때문인지 감기가 심해져서 숨쉬기도 가쁘고 온몸이 쑤신다.
목이 심하게 따갑다.
편도는 붓고, 후두는 결절이 생겼는지 목소리가 나지 않는다.
몇 마디 할라치면 작은 쇳소리만 나고 힘이 들어 뒷목이 땅긴다.
콧물 도 난다. 막을 새도 없이 주르르 흐른다.
남이 볼까 창피스럽다.
갑자기 가래가 끓는다.
어디서 그리 많은 양이 만들어지는지 수시로 캑캑거린다.
가래가 시작되니 그렇지 않아도 걱정이던 기침이 시작된다.
처음엔 간간이 그러다 매우 잦아진다.
이젠 기침을 할 때마다 갈비뼈가 으스러진다.
하도 기침을 해대서 뼈에 금이 갔나 보다.
가슴을 감싸보지만 그렇다고 고통이 덜어지는 것도 아니다.
기침할 때마다 돌아올 고통이 겁이 난다.
기침을 하면 목은 시원해야 하는데 기도에는 아직도 이물질이 걸려 있다.
거담제를 먹어도 차도가 없다.
숨을 쉴 때마다 쌕쌕 소리가 나는 걸 보면 단단히 잘못되었나 보다.
어쩌다 식도를 타고 넘어갈 땐, 으! 찝찝하다.
체온을 재보지만 특별히 이상은 없다. 그래도 오한이 난다.
온몸에 힘이 빠지고 몽롱하다.
약기운인지 감기 때문인지 몸이 휘어진다.
벌써 일주일 짼데 쉽사리 물러날 생각이 없나 보다.
한밤중 기침 때문에 깨다 자다를 반복한다.
아침에 일어나도 개운치 않다.
식은땀에 온몸이 축축하다.
일어나 씻고 밥 먹고 나니 벌써 피로감이 몰려오고 얼굴은 초췌하다.
식구들도 있고 전염되면 면이 안 선다 싶어 혹시 하는 생각에 검사해 보지만 코로나는 아니다.
그나마 다행이다.
코로나 땐 마스크 덕에 감기 한번 안 걸리더니 면역력이 많이 떨어졌나 보다.
이 틈에 며칠 푹 쉬어야겠다.
제2화 치과 치료 중
스케일링을 하러 치과에 갔다가 치주염이라는 얘기를 듣고 걱정이 된다.
스케일링을 시작한 이유가 왼쪽 어금니 때문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놈이 문제다.
겉으론 멀쩡해 보이는데 안으로 곪기 시작한 모양이다.
사실 아프지도 않아 X-ray를 찍기 전까지는 믿을 수 없었다.
하긴 입 몸 뼈가 내려앉아 흔들거렸었는데 함 선생이 잘 보살핀 덕에 오래 견디긴 했다.
오늘이 급하게 잡은 치료 날이다.
의자에 앉아 마취를 하고 얼마간 기다리니 입술과 혀가 얼얼해 온다.
입을 벌리게 하더니 이내 어금니에 구멍 뚫는 드릴 소리가 들린다.
“위이잉” 소리에 소름 돋는다.
그런데도 가림 천으로 얼굴을 가려서인지 눈꺼풀이 무겁다.
눈은 감기고 입은 자꾸 다물어진다.
함선생과 간호사가 연신 “입 벌리세요.”를 외친다.
그때마다 잠이 깨다 들다를 반복한다.
함 선생이 팔꿈치로 밀치면서 “입 벌리세요.”라고 소리를 지른다.
졸면서도 나름 입을 크게 벌려 턱관절이 아파 오는데도 계속 더 벌리란다.
잠은 계속 쏟아진다.
꽤 시간이 지났나 보다 끝났는지 일어나란다.
난 안 졸은 척 서둘러 일어나 사방을 살폈는데 함 선생과 간호사는 입을 안 벌려 화가 났는지 얼굴도 안 보고 자리를 떴다.
요새 왜 이렇게 잠이 쏟아지는지?
제3화 수술하던 날
입원 당일, 편한 복장을 하고 앞단추가 있는 상의도 한 벌 준비했다. 수술 후 어깨가 자유롭지 못해 일반 티셔츠를 입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평소 다니던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하려면 1년을 넘게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수소문 끝에 찾은 병원이고, 재수가 좋게 빈자리가 있다고 해서 따질 것도 없이 급하게 잡은 입원 날짜다. 물론 진단하고 처방을 내리는 의사 선생님이 신뢰가 갔고 자가 힘줄을 이어 붙여야 수술 후 어깨 쓰는 운동을 할 수 있다는 말이 설득력이 있었다.
병실 간호사는 몇 번이고 들어와 수술에 필요한 준비를 일러준다. 링거용 삽관, 혈전 방지 스타킹 착용, 이유는 모르지만 수술 전 노 팬티 안내 등등. 전신마취를 하니 밥도 굶고 물도 마시지 말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수술 전날 잘 자두어야 하는데 마음이 어수선해서인지 그러질 못한다.
깨어보니 마취가 풀리지 않아 정신이 혼미한데도 통증은 뼈를 깎는다. 다리를 오므리고 배를 말아 통증을 이겨보려 하지만 신음소리가 절로 나온다. 울음 섞인 말로 고통을 호소하지만 간호사는 익숙한지 냉랭한 명령조로 뭐라 소리만 친다. 무슨 말인지 들리지도 않지만 그런 태도가 얄밉도록 밉다. 전신마취에다 무통주사까지 꽂고 있는데도 통증은 사라지지 않는다. 3대 통증이라는 결석도 겪어 봤지만 아픈 거에 길들여지지 않는다. 이런 수술은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다.
수술방에 들어갈 때는 멀쩡하게 들어갔는데 나올 때는 만신창이가 다 되었다. 이 고통이 한숨 자고 일어나서 사라지면 좋으련만 언제쯤 없어질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누워있기도 앉아있기도 어려워 침대 머리를 비스듬히 세워본다. 침대보가 미끄러워서인지 스르르 아래로 밀려 내려간다. 안간힘을 다해 이리 뒤뚱 저리 뒤뚱 상체를 끌어올리면 보호대가 바닥에 닿고 어깨를 압박해 고통스럽다.
그렇게 반나절은 지났는지 처음 같은 고통은 조금 잦아든다. 대신 마취가 조금씩 풀리고 수술한 쪽 뺨과 목덜미가 기분 나쁘게 얼얼하고 움직일 때마다 다른 고통이 찾아온다. 전신마취를 하고 난 후여서 인지 마취 가스를 뽑아내지 않으면 폐렴이 올 수도 있으니 심호흡을 하라고 간호사는 계속 다그친다. 들숨 날숨을 쉴 때마다 어깨가 들썩여 고통스럽다.
밤새 한숨도 못 잤다. 진통제를 계속 맞고 먹고 해도 아파서 깨고 불편해서 깬다. 아침 7시 30분이 되니 의사 선생님이 회진을 돈다. 많이 다치고 오래되어 수술이 어려웠지만 할 수 있는데 까지는 다 했고 잘 되었다고 하신다. 수술이며 진료를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매일 계속하는 걸 보면서 의사를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의사들의 사명감이 존경스럽다.
오늘이 퇴원하는 날이다. 전날 입원하고 수술하고 다음날 퇴원하는 것이 요즘 추세인 모양이다. 수술 부위가 커서 통증이 심할 테니 하루 더 있어도 된다고 했지만 불편한 걸 참지 못하고 퇴원을 결심한다. 무통주사도 빼고 진통주사제도 없지만 먹는 진통제로 견뎌보기로 한다.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