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간만 되면 소리 없이 나타나는 그 남자. 자그마한 키에 동실동실. 그는 펭귄처럼 걷는다. 쇼핑백을 들고 백화점을 활보하는 그는 적어도 나보다 서 너 살 정도는 많아 보이는 어른이었다. "영철아. 영철아."어린아이 부르듯 백화점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불러재꼈다. 영철이는 모든 백화점을 다 돌아다닌다고 했다. 떡진 머리에 손등은 덕지덕지 때가 누룽지처럼 얹혀있었고 옷은 왜 그리 껴입는지 겹겹이 지저분했다. 그가 지나가면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실실 웃어대며 이 매장 저 매장 기웃거리는 영철이가 백화점의 골칫덩이가 아니고 언니들의 재밋거리라는 게 나는 놀라웠다.
"영철아, 오늘은 어디 어디 갔다 왔어?"
"영철아, 그 옷은 누가 줬어?"
영철이는 박카스라도 한 병 받으면 먹지 않고 쇼핑백에 잽싸게 넣었다. 누구에게 가져다주려는 건지... 부족해도 고객이고, 지저분해도 고객이다. 그런 고객을 동네 강아지 부르듯 이름을 불러대는 게 나는 불편했다. 장난치듯 실실 농담이나 건네며 큭큭 거리며 재미있어하는 것도 눈에 거슬렸다. 아무리 작고 한가한 백화점이라도 백화점 간판을 달았다면 어느 정도의 격을 스스로 지켜내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학교에서 배웠거늘. 더 놀라운 것은 규율을 담당하는 사무실 관리자도 "영철아 "하고 똑같이 부른다는 것이다.
일개 아르바이트생인 나는 영철 씨가 영철이가 되어도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무시하는 사람도, 심부름을 시키려고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혐오하거나 멀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영철 씨는 낯선 아르바이트생인 내 앞에 멈춰 섰다. 아무 말 없이 나만 보고 있는 영철 씨. 매장 언니들도 영철 씨와 똑같이 아무 말 없이 웃음을 참으며 지켜보고만 있었다. 당황스러웠다. 도대체 어쩌라는 건지.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고 영철 씨는 인사 한번 잘 받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가던 길을 계속해서 갔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내 인사를 받아야 지나가는 사람처럼 내 앞에서 자꾸 멈춰 섰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매장 언니들은 영철이라 부르라 했지만 난 그게 더 불편했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아픈 내 언니도 밖에 나가면 영철 씨와 별반 다를 것 같지 않아서 자꾸 마음이 쓰였다. 어찌해서 지금의 영철이가 됐는지는 모르지만 그에게도 분명 좋은 시절이 있었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좀 상했다. 어찌할 수 없어 그저 곁에서 보고 있었을지도 모를 그의 가족을 막연하게 떠올리니 남일 같지 않았다. 그동안 겪어온 세월도 앞으로 다가올 시간도 쉽지 않음을 알기에 함부로 대하고 싶지 않았다.
싫은 건 분명한데 한편으로는 나라서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여자 옷인지 남자 옷인지 알 수 없는 이상한 코트를 입고 뒤뚱뒤뚱 내게 걸어온다. 들고 오던 쇼핑백을 오늘은 가슴에 안고 엄청 기분 좋은지 연신 싱글거렸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인사를 받은 영철 씨는 갑자기 쪼그리고 앉아 쇼핑백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구겨진 하얀 봉투, 누가 봐도 붕어빵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안고 돌아다녔는지 식어터진 붕어빵은 축 늘어진 채 소다 냄새만 풍겼다. 누룽지 같은 손등을 아래로 숨기고 엄지로 지그시 눌러 붙든 붕어빵. 손톱 끝엔 까만 때가 단단히 끼어있고 입술은 하얀 각질이 그득했다. 비위가 약한 나는 속이 메슥거리기 시작했는데 애써 미소로 감췄다.
"먹어."
"괜찮아요.... 매장에서 먹으면 혼나요...."
맙소사! 우려하던 일은 왜 꼭 일어나는 걸까? 영철 씨는 말이 안 들리는 사람처럼 자꾸 붕어를 들이밀었다. 허리에 힘을 바짝 주고 몸을 뒤로 재꼈는데 붕어가 자꾸 다가왔다. 여차하면 내 입에 쑤셔 넣을 것만 같았다. 겁먹은 나는 부리나케 손으로 낚아챘다. 움찔하는 영철 씨가 느껴져 미안했지만 나름 최선이었다.
"이따가 먹을게요."
"지금 먹어. 맛있어. 먹어. 먹어."
막무가내인 영철 씨를 보며 또다시 아픈 언니가 떠올랐다. 이러다간 영철 씨가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숨을 참고 붕어를 한입 베물었다. 마음만큼 내 비위도 강했으면 좋았을 것을. 현실은 심하게 약한 내 비위. 속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받아놓고 버릴 맘이었는데 영철 씨가 보고 있어 삼키고 말았다. 영철 씨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직진해서 걸어갔고, 붕어빵 사건은 백화점 1 층을 삽시간에 휩쓸고 말았다. 영철이가 새로 온 알바를 좋아한다고. 영철이가 먹을 것을 나눠줬다고.
26년이 지난 지금도 좋아하는 붕어빵을 먹다가 가끔씩 내 엄지손톱을 본다. 꾀죄죄한 엄지손톱이 내 손톱 위에 올려지면 지금도 속이 더부룩 해지는 것만 같다. 붕어빵 사건 이후 매장 언니들은 더 신이 났었다. 새로운 재밋거리를 만난 것처럼 나와 영철 씨를 한데 묶어버렸다. 그땐 그 모든 것이 싫었다. 재미있어 떠드는 언니들도, 걱정하며 충고하는 언니들도, 눈치 없이 자꾸 서있는 영철 씨도, 어쩔 줄 몰라하던 어린 나도. 그때부터 영철 씨를 일부러 멀리했다. 건성으로 인사하고 때론 모르는 척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그리고 알바는 그렇게 끝이 났다. 어리둥절하던 영철 씨의 표정이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땐 몰랐는데 영철 씨는 그냥 그렇게 서있었던 것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크게 변한 것도 이상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니었다. 잘 웃어주는 낯선 얼굴에 붕어빵 하나 쥐여준 건데 백화점 사람들이 재미 삼아 찧고 까불다가 이런 사달을 내고 만 것이다. 한술 더 떠서 나는 슬슬 피하고 차갑게 대하고. 나를 보면 가까이 오지 못하고 멀리서 우두커니 서 있다 가는 영철 씨를 보면서 얼마나 내 머리를 쥐어박았던지... 미안했다. 축 처진 뒷모습이 식어터진 붕어빵 같던 영철 씨. 지금도 대전에 있는 백화점을 배회하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만나는 사람들이 나보다는 더 따뜻한 사람이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