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붕세권이다. 찬바람이 불면 영락없이 문을 여는 붕어빵집. 작년에는 어린 여자아이가 붕어빵을 구웠는데, 올해는 연세가 지긋하신 할머니가 굽기 시작했다. 붕어빵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추위가 코끝 언저리까지 왔다는 신호다. 지나갈 때마다 쉴 새 없이 고소한 냄새를 뿜어대는데, 어찌 그냥 지나칠 수가 있단 말인가. 붕어 몇 마리는 무조건 데려와야 직성이 풀렸다. 하지만 오늘은 양손에 짐이 한가득해서 침만 꼴깍 삼키다 그냥 오고 말았다. 저녁때가 다 되어 가는데 자꾸만 바삭한 붕어빵이 아른거린다.
그때 아들 녀석이 붕어빵 냄새와 함께 들어왔다. 흰 봉지를 내게 건네며
“♡♡ 씨, 내가 식지 않게 가슴팍에 넣고 왔어. 한번 잡숴봐.”
간질거리는 아들의 익살은 언제나 날 웃게 한다. 몽글거리는 팥 앙금을 입속에 넣으니 진짜 겨울이 온 것 같다. 아까운 가을이 내게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서운하지 않은 건 다 붕어빵 때문이다. 내 사랑을 가득 받고 있는 우리 동네 붕어는 아쉽지만 못생겼다. 할머니는 매번 되직한 팥을 덩어리 채 뚝 떼어 넣고 밀가루반죽을 붓는다. 그러니 배만 불뚝할 수밖에. 오래전 내가 근무하던 한의원 앞에도 배만 불뚝한 붕어빵이 있었다.
“어디서 왔데?”
“대전에서 왔어요.”
“외국사람 아니고 국산이여?”
처음 보는 사람도 말을 거는 곳이 시골이다. 시시콜콜한 것까지 묻는 바람에 가끔 난감할 때도 있지만 작은 동네에 낯선 사람의 출현은 먹잇감이자 심심풀이 땅콩이었다.
“애가 몇이여?”
“아들만 둘이에요”
“아구야. 시집은 빨리 갔나 보네. 뭣이 그리 좋았을까.”
할머니들은 이런 게 재미있나보다. 별것도 아닌데 서로 눈짓을 하면서 소녀처럼 웃었고 놀리듯 매번 확인하셨다.
“국산이라 했지?”
까무잡잡한 피부 탓에 눈만 뜨면 보이는 타국인과 혼동하시는 것 같았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 믿었지만 그건 내 오산이었다. 볼 때마다 매번 똑같이 물어보셨고 아마도 재미 삼아 일부러 되묻고 되물어가며 웃으시는 것 같았다. 아파서 매일 같이 오는 한의원에서 조그맣고 새까만 젊은 여자가 매번 처음처럼 또박 또박 같은 대답을 하는 게 재미있으셨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르신들은 한의원에서 바지런히 일하는 나를 무척이나 예뻐해 주셨다. 사탕도 몰래 쥐어주며 혼자 먹으라고 눈을 깜빡거리기도 하셨고, 검정 봉지에 이것저것 담아서 슬쩍 데스크에 올려놓기도 했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유독 붕어빵을 많이 사가지고 오셨는데, 붕어의 배가 모두 불룩해서 붕어도 아파서 병원에 온게 아니냐며 농담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한 입 베어 물고 싶도록 달큼한 냄새를 풍기는 붕어빵. 바삭한 붕어도 있었지만 뜨거운 채 봉지를 꼭 쥐고 오는 바람에 축축 늘어진 붕어도 있었다. 바삭함과 쫀득함으로 전혀 다른 붕어빵 같았지만 내겐 모두 보약만큼 힘이 나는 음식이었다. 대전으로 다시 이사 나오는 순간까지 어르신들은 웃으시며 내게 말했다.
“외국 사람이 말도 참 잘 혀. 대전 가서도 말 잘허고.”
슈크림이 들어있는 노란 붕어 한 마리와 단팥이 들어있는 까만 붕어를 단숨에 해치웠다. 다 먹고도 아쉬워 봉지에 떨어진 부스러기를 손가락으로 찍어본다. 아들과 함께 온 붕어빵. 오늘을 시작으로 얼마나 많은 붕어가 우리 집에 오게 될지 내심 기대가 크다. 작년에도 어린 친구가 추운데 밖에서 붕어를 굽는다고 아들 녀석은 자주 사왔었다. 올해는 할머니가 붕어를 구우니 우리가 더 자주 사먹자고 우리 현준 씨는 말한다. 아들의 바람처럼 할머니가 오늘만이라도 조기 퇴근하길 바라며 붕어빵집으로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