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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꽃 Nov 21. 2023

정  받고 고생은 따따블로

정에 죽는 여자

절임배추 두 박스 김장은 묵은지 하나 없이  심하게 먹어치우는 너무나 깔끔한 양이었다. 그래서 올해는 과감하게  한 박스 더. 

12월 둘째 주를 김장하는 날로 정했다.

헌데...

남편의 지인이 배추를 뽑아가란다. 처음엔 거절했다.

그냥 가져오는 게 맘이 더 불편했다.

그리고 절여서 김장을 할 자신이 없었다.


혼자 김장을 한 게 겨우 두 번. 이번이 세 번다, 여태껏 시골에 모여 첫날은 배추를 나르고 둘째 날은 헹구고 버무린 것 밖에 해보질 않았다. 믿기지 않겠지만 20년 동안의 내 보직은 새벽부터 해가 떨어질 때까지 기계처럼 배추만 버무리기.

칠 형제모이니 부모님까지 여덟 집. 거기다가 시집간 조카들까지  하다 보면...

처음엔 김치냉장고 김치통 4개였는데 하나씩 늘어나 어느샌가 집집마다 10개 넘게 가져오기 시작했다.

4개만 고수한 내게 통을 더 가져오라 해서 6개까지 늘어났다.  난 이런 욕심들이 슬슬 짜증 나기 시작했고.

사람이 많아지니 말은 수없이 많아지고

날짜 조율도 어려워지고.

오는 사람은 불만이 생기고, 못 오는 사람은 눈치가 보이고

일 년에 한 번쯤이야 기분 좋게 일하던 김장이 어느새 전쟁터가 되고 말았다.


90년대 음악을 틀고 서두르지 않고 천전히.

절임배추로 하는 김장은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았었다.

그런데 결국 호의를 반복해서 거절할 수가 없어 배추와 쪽파를 싣고 왔다.  다듬고 자르고 시간 맞춰 소금에 절이고.

새벽부터 일어나 헹궜는데 속이 그대로 살아있다.

유튜브에  나오는 대로 했는데.,.어찌된건지. 거기다가 배추도 포기가 작은데... 암튼 망할 망할이다,

다시 소금을 치고 기다리면 됐을 것을 그냥 후딱 해치우고 싶어 다시는 못 건널 머나먼 강을 건넜다.

이틀 동안 할 일이왜 이리  많은지.  

생각보다 절여 놓으니 많다.

여섯 개의 통을 채웠는데 절인 배추가 남았다. 작은 통 세 개에 백김치를 담고 총각김치 한통을 담고.

깨끗한 배춧잎을 데쳐서 감자탕용을 만들고 국거리. 무침용도 각각 지퍼백에 담았다.

정말 이틀 동안 쉼 없이 일했다. 주말을 그대로 반납하고

알아 눕기 직전이다.

다시는 누가 배추 가져가라면  다시는 절대 물러서지 않으리라.

정으로 나누려는 마음을 알기에 좀 고생하지 싶었는데

이건이건 예상보다 심하게 곡소리를 만들었다.

고마움에 점심사고 한해묵은 천일염 20 kg 가져다 드렸는데도  마음이 편 칠 않다. 저녁이라도 한번 더 사야 할 것 같은데..,

이렇게 정해지지 않은 계산법은 늘 어렵다.


몸이 힘든 만큼 거절하지 못하고 가져온 내 탓을 해댔지만

그득한 김치를 보면서 순간 부자가 된듯했다.

백김치 한통은 매운 거 못 먹는 친정엄마에게 보내고

또 한통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언니네 보낸다 생각하니 벌써부터 뿌듯하다.


일이 많아진 탓에 겁부터 먹고

기분 좋게 인사를 못했던건 아닌지.

덕분에 아주 푸짐한 김장이었다고 다시 인사드려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백김치 좀 나눠드려야겠다.


혹시  내년에 또 배추를 준다 하면  절임배추를 예약했다고 거짓말을 하련다.

이렇게 쉬운 것을 순간 둘러대는 걸 잘 못하는 나는

버벅거리내 머리만 쥐어 뜯었다.

무리 생각해도 멍청이.  그래도 정은 가득. 그득그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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