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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침대옆버스 Aug 09. 2023

사부작

요새 뭐 하고 지내냐는 질문에 대한 사회 초년생의 하루(2021)

1.

어느새 눈을 뜨고 있다. 뒤척이며 핸드폰 시간을 확인한다. 9시 4분. 만족스럽진 않지만 8시에 깬 지난주에 비하면 선방이다. 약속 없는 주말에는 11시까지 늘어지게 자야 하거늘, 잠만보인 내가 출근 리듬에 익숙해지다니. 억울하지만 아직 주말이니 너그럽게 넘어가도록 하자.

주중은 회사, 토요일은 약속을 핑계로 보존해 온 방 모양새가 눈에 들어온다. 빨래가방 위로 한껏 솟은 옷더미, 헹구기만 하고 겹쳐둔 식기들, 방바닥은 머리카락에 먼지까지 폴폴댄다. 오늘 안 하면 다음 주까지 이 상태다. 위기의식에 우선 창문을 열었다.


2.

팀장님께서 자리로 가까이 오신다. 내 이름이 불리고서야 인기척을 느꼈다는 듯 바라본다. 요는 타 부서에 자료 요청하기. 처음 듣는 박사님 성함을 검색해 내선번호를 파악한다. 한 번의 자료 회신으로 끝날 일이 아니어서 상세한 협조 요청이 필요하다.

메일에 소속, 목적, 요청 내용, 회신 양식, 기한을 담는다. 망설임 끝에 한 문장을 추가한다. '유선으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보낸 메일함에서 다시 내용을 보며 종이에 끄적인다. 두어 번 되뇐 후에야 수화기를 들었다.


3.

마음만 먹으면 바로 잘 수 있다. 사무실 나올 때만 해도 밥 생각이 없었는데, 막상 집에 도착하니 배고프다. 먹고 바로 잘 거면 그냥 자는 게 소화 걱정 없지 않나. 저녁 먹으면 양치도 다시 해야 하는데. 어차피 씻으러 화장실은 가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러, 간단히 차려 먹는다.

먹고 나니 바로 눕기에는 활동량이 찔리고, 찌뿌둥한 어깨도 마음에 걸려 자리에서 일어난다. 어깨를 주무르다 팔도 한번 만져본다. 요새 팔운동은 안 했네. 긴 유튜브 영상을 찾아 틀어놓고 1.5kg 아령 두 개를 각 손에 쥐었다.


4.

곧 A의 생일이네. 핸드폰 일정을 확인하다 다음 달로 넘어간다. 대학 내내 하루 전후로라도 꼭 생일을 함께 했던 친구인데, 작년에는 코로나19로 택배선물만 부쳤다. 생일이 한참 지나고 만나긴 했지만, 올해까지 그러고 싶지는 않다.

누군가에겐 반가움의 추임새일 '밥 한번 먹자.'에 나는 진심이다. 자주 만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지킬 수 있는 약속만 잡고 싶다. 요일을 살펴보니 올해 그녀의 생일은 일요일이다. 업무 타임라인을 곱씹고, 월요일 휴가를 염두에 둔다. 이제 선택은 A의 몫. 김칫국일지도 모르는데 잔뜩 사부작거리며 카톡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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