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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침대옆버스 Aug 09. 2023

보초

때로는 소설도 써볼 생각입니다2(2022)

 민하가 버스 출발하기 4분 전 헐레벌떡 뛰어가는 걸 바라보며, 몸의 열기가 서서히 가라앉는 걸 느낀다. 밤에는 제법 쌀쌀한데 오후 햇볕은 여전히 뜨겁다. 오히려 여름보다 더욱 덥게 느껴지는 건, 에어컨을 자동 옵션으로 설정해두지 않아서일 거다. 15시 40분 버스를 타기 위해 15시에 회사 계단을 펄쩍펄쩍 내려오던 민하를 뒷눈질할 때부터 각오는 했다.


 그래도 푸르락누르락한 내 속이 뻔히 보이면서도 휴대폰부터 냅다 꽂아버릴 줄이야! 민하 너도 지금 이마에 땀 맺혔는데? 너 새로 생긴 앞머리 쓰다듬을 시간은 있고 에어컨 돌릴 생각은 없구나. 그래 그럴 수 있지. 추석 연휴인데 버스 놓치면 곤란할 거야.


 민하와 나는 꽤나 오랫동안 만났지만, 직접 말을 튼 건 작년 11월부터였다. 그리고 12월이 되기 하루 전, 민하가 거주하는 대전에 내려와 함께 살게 됐다. 이전 직장 선배 자식과 함께 여생을 살게 될 줄 낸들 알았을까.


 유난히 고속도로를 내리쬐는 뙤약볕이 강렬하다. 민하도 위기를 느꼈는지 운전석 창문과 뒤편 우측 좌석의 창을 조금씩 열었다. 하지만 이미 역부족이다. 민하의 갤럭시S노트20이 과열로 Tmap을 자동중료했다.


 민하가 당황한다. 일단 충전기에서 폰을 빼고 바지에 문질러본다. 열을 식히려는 걸까. 그러고 왼손으로 위태롭고 간절하게 여러 차례 Tmap을 눌러보지만, 여전히 과열 상태라는 알림이 뜬다. 추석연휴가 아니었으면 평소대로 무료도로를 이용했을지라, 고속도로를 통해 세종버스터미널로 가는 길은 아직 익숙치 않다. 짇가 간절해진 길치 민하, 이제야 에어컨을 최대로 틀고 거기에 휴대폰을 올려둔다.


 여기서부터는 나 역시 안심했다. 사실 아니다. 결과롡거으로 지금에서야 할 수 있는 말이다. 생각보다 차가 막혔고, 마지막에 살짝 길을 잘못 들뻔 했으니, 그래도 이 친구가 무사히 성남으로 떠날 수 있게 된 지금은 확실하게 마음 놓고 자랑할 수 있다.


 도로교통법 2조 26호, 초보운전자는 "처음 운전면허를 받은 날부터 2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이다. 2021년 1월 운전면허장 실기에 임하기 전 버스에 치일까봐 무섭다고 울먹였던 민허는 의외로 한 번에 면허증을 획득했다. 공식적으로 초보지만, 호락호락한 초보는 아닐 즈음의 시간이 흘렀다. 어제 동기를 태우고 초보 중에서는 제일 무서운 초보는 뒤에서 볼 때 '보초'라고 쓰여있는 경우라고 농담까지 한 걸 보면.(물론 나에게는 여전히 다이소에서 산 POP체 초보운전 문구 스티커가 붙어있다.)


 불안하다기엔 차분하고, 믿음직스럽다기엔 예쌍치 못한 순간에 대책 없이 용감해 걱정인 민하. 민하 앞엣는 절대 하지 않을 자랑을 늘어놓았다. 우리 서로 연휴 잘 보내고 보자. '보초' 서는 기분으로 기다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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