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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침대옆버스 Aug 24. 2023

나 물나물

나물탐방 4. 매생이


 한동안 왼쪽 아래잇몸이 땡땡해져 휴대폰 손전등으로 비춰보니, 삼각모양의 조그만 치아가 솟아있다. 나 아직 사랑니 덜 뽑았구나. 대형병원에서 매복형 사랑니를 발치할 때 마취 덕분인지 무난했던 기억이 있다. 별 두려움 없이 바로 치과 예약을 잡았는데 이게 웬걸. 이번에는 마취가 풀릴 즈음인 두 시간이 지나도록 피가 계속 났다. 솜뭉치 물고 있을 때 말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가. 다음 주 실밥 풀기 전까지 엇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싶어 죽집에 방문했다. 고소한 흑임자죽, 고소함과 꼬독함이 반복되는 전복죽, 한동안 SNS에서 유행했던 낙지김치죽까지. 여태 골랐던 메뉴지만, 이번만큼은 사랑니 뽑은 자리에 이물질이 들어가거나 착색되지 말아야 한다. 잘게 갈려있어 부드러우면서도 포만감을 줄만한 게 무엇일까. 고민 끝에 전혀 생각지 못했던 '매생이굴죽'을 골랐다.


 평소 해조류는 찾아먹는 편이 아닌데, 대표 격인 미역의 식감을 좋아하지 않아서다. 어릴 적 생미역을 초장에 찍어 먹다가 특유의 미끌거림에 목구멍으로 쑥 넘어가 한참을 켈록거렸다. 물을 여러 잔 마셔 넘긴 후에도 한참 동안 목구멍에 비릿함이 머물렀다. 그나마 미역국은 끓여서 조금 더 부드럽다. 미역들이 무지막지하게 겹쳐있거나 군데군데 심지 박힌 줄기 부분은 여전히 꺼려지지만...... 운 좋게 선호하는 해조류도 발견했다. 바로 파래와 매생이다. 파래는 어릴 때 엄마께서 가느다란 무와 함께 상큼하게 버무린 무침을 맛본 덕이다. 배부르다가도 파래무침 한 젓가락 하고 나면 입 안이 개운해지면서 다시 첫 숟갈 뜰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매생이는 성인이 돼서 접했다. 이름만 들었을 때는 내가 좋아하지 않을 거라 짐작했는데, 막상 사진을 보니 파래처럼 얇은 실 형태로 돼있어 크게 미끌거리지 않을 것 같았다. 실제로 매생이국은 해산물 특유의 짭조름함과 시원함을 걸쭉하게 형성해 별미였고, 얼른 식길 바라는 마음에 숟가락을 계속 채운 채로 후후 불어가며 맛있게 먹었더랬다.


 매생이는 '생생한 이끼를 바로 뜯는다'라는 의미를 담은 순우리말이라고 한다. 육지에서는 잎과 줄기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고 낮은 높이로 오밀조밀한 모양새인데, 매생이는 30cm까지 꽤나 길게 자란다. 바닷물에 몸을 맡기고 너풀거리는 해조류 군집을 상상해 본다. 김이든 미역이든 양식용으로 바다 표면이나 육지에 걸려있는 모습을 주로 보곤 했다. 바닷속에서는 어떤 모습일까. 어딘가에 뿌리를 두고 달려있는 것일 텐데, 산에서 나물 채집하는 것과 비슷하겠지?


 집에 돌아오자마자 뜨거운 매생이죽을 냉동실에 넣었다. 빠르게 한숨 식히고 먹기 위함이다. 조심스럽게 발치 반대쪽 입안에 넣어본다. 적당히 따뜻한 매생이들이 밥알들과 함께 매끈하게 흐른다. 죽에 가미한 참기름 때문인지 고소하고 달다. 30cm까지 자란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게 얇고 작게 분리될 수 있다. 이런 매생이라면 치아에 끼는 게 아니라 스며드는 게 아닐까.


 나물 하나하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게 아쉬워 주 1회 나물 찾기를 도전해 봤는데, 끝날 무렵 나물의 범주가 어디까지인지 모호해진다. 당장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몇 가지 정의를 종합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야생의 식물(채소와 구분하는 이유)

2. 1. 에서 정의한 재료를 볶거나 데치거나 무치는 조리 양식 그 자체

이 기준대로라면 당장 이름에 나물이 들어간 '콩나물'의 정체성부터 의아해진다. 산에서 채집하지 않더라도 나물을 획득하는 방법은 매우 다양해졌다. 한국 고유의 조리 양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하기에는 퓨전식당에서 고사리파스타를 먹어본 적이 있다. 이럴 수가, 이래서 논문 작성 시 '정의'부터 시작하는 게 중요한 걸까. 바다에서 무럭무럭 자유롭게 자라나는 매생이가 '물나물' 같다고 혼자 생각하고 이번 글을 쓴 것부터가 문제일 수도 있다.


 나물에 대해 나름대로 나불거리고자, 신중하게 식재료를 택하고 사전조사하고 맛보는 4주가 금방 지나갔다. 앞으로도 매주 반복할 자신은 없어도, 가끔 시도해 볼 것 같다. 호박잎, 쑥, 쑥갓, 매생이를 다시 맛볼 때의 나는 이전보다 훨씬 풍성한 한 끼를 누릴 것 같다. 일상이 어딘가 단조로운데 완전히 새로운 도전은 부담스러운 분이라면, 자신 있게 권해드린다! 마침 해조류 안에서도 다시마, 미역, 톳은 '갈조류'이고, 김, 우뭇가사리는 '홍조류', 파래, 매생이는 '녹조류'로 나뉜다는 글을 읽었다. 다음에는 물 나물을 알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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