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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침대옆버스 Aug 11. 2023

3%의 힘

나물탐방 2. 쑥(떡)

 언제부턴가 본인 혹은 누군가의 식성을 극단적으로 강조하고 싶을 때 '00입맛'이라 표현하는 듯하다. 돈가스, 탕후루 등 맵지 않고 달아 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음식을 선호한다면 '초딩(초등학생) 입맛', 마늘이나 홍어처럼 토속적인 향신료와 발효음식이 거뜬하다면 '아재(아저씨)입맛', 윗세대가 어릴 적 간식으로 즐겼을 법한 식혜와 팥류를 즐긴다면 '할매(할머니)입맛'이라 부르는 식이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미각이 둔화된다고 하니 생애주기에 따라 입맛이 달라질 순 있겠으나, 같은 연령대라고 천편일률적이라 단언할 수는 없다. 물에 씻지 않고도 김치 잘 먹는 어린이, 국밥보다 파스타가 주식인 아저씨, 엽기떡볶이를 좋아하는 할머니도 존재할 터다. 실제로 최근 2030 세대가 전통 식재료에 관심을 가지는 추세여서 약과 매출이 크게 올랐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어쩐지 편의점과 카페에서 인절미, 흑임자, 쑥을 활용한 제품이 확실히 늘었다. 이러한 현상을 '할매니얼(할머니+밀레니얼)'이라고 부른다고 하니, 특정 나이와 성별 집단에 따른 고정관념을 지우고 오히려 보다 넓은 의미로 변모하는듯해 재미있다.


 운 좋게도 나는 크게 가리는 음식이 없다. 그 덕에 초딩, 아재, 할매 그 외 다양한 범주를 넘나들며 메뉴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만에 하나 내 미뢰에 문제가 생겨 한 가지 입맛에만 반응하게 된다면, 할머니 입맛이길 바란다. 매일 먹을 걸 생각하면 질리지 않아야 하고, 함께 식사하는 이들도 즐길 수 있도록 진입장벽이 낮아야 하기 때문이다. 할머니 입맛이라 하면 보리밥, 된장찌개, 강냉이, 유과 등 식사류와 간식류가 고루 떠오른다. 설령 할머니 식단에 실망감을 느끼는 이가 있더라도, 옆에서 독려하기 수월할 것 같다. 우리나라 식재료로 만들어서인지 유독 한글로 세밀하게 표현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어서다. 이를테면 '음 이 참기름 냄새 정말 꼬숩다', '이 얼갈이된장국은 정말 구수해', '쑥떡은 기름 안 두르고 프라이팬에 구우면 바삭한데 안은 말랑해서 씹을수록 향긋함과 쌉쌀함이 배로 올라와'라고 구구절절 말한다면, 조금은 마음이 동하지 않을까?

 

 <일주일에 한번 나물 먹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아 난감하던 중, 한때 자주 쓰인 배달의 민족 광고문구 "00도 우리 민족이었어"가 머리를 스쳤다. 그래, 쑥도 나물 민족이었어. 쑥떡이라면 요새 저녁마다 야식으로 냉동실에서 야금야금 꺼내먹고 있다. 날이 더워서 불을 쓰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입맛이 사라진 건 아니다. 심심한 입을 달랠 요량으로 무엇을 먹을까 고민한 끝에 주로 배부름보다는 간편함을 택한다. 냉동실에서 각각 작은 봉지에 담긴 떡 3종(왕찹쌀떡, 카스테라쑥앙금인절미, 콩고물쑥떡)을 꺼내 10분가량 녹이면 적당하게 차가워 아이스크림 마냥 깨물어 먹기 좋다. 며칠 전에는 얼려뒀던 다른 쑥가래떡을 쪄 먹기도 했는데, 크다 보니 입안 가득 머금을 수 있었다. 우물거릴수록 촉촉한 가래떡 사이사이에 숨어있던 쑥향이 코로 들어왔다. 봉지떡에 비해 은은한 녹색 빛깔이라 쑥맛이 약할 거라 생각했는데, 기대 이상인 걸? 만족감에 언뜻 성분표를 봤는데 이게 웬걸. 쑥가루 3%(국산), 냉동쑥 0.7%(베트남산)였다. 놀란 마음에 봉지떡 성분표도 살펴보니 콩고물쑥떡(냉동쑥 3.3%, 쑥가루 1.1%)과 카스테라쑥앙금인절미(냉동쑥 5.6%, 쑥가루 3.1%)둘 다 한자리 수에 불과했다. 가공식품인 걸 감안하더라도 생각보다 너무 낮은 숫자였다. 과자 새우깡에는 생새우가 8.5% 들어간다는데 그보다 적은 비중인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쑥을 먹고 있다는 행복감을 크게 느낄 수 있다니 가성비에 감탄하는 동시에, 성분표를 보기 전까지 밤마다 쑥떡으로 채소 영양분까지 섭취하는 거라 합리화했던 게 민망했다.


 할머니께서 직접 쑥을 캐다 만들어주셨던 쑥떡이야말로 '진또배기'라 생각하며 그리워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쑥떡 만드시는 과정을 직접 본 것은 아니어서 막상 쑥 함량은 시중 제품과 비슷할 수도 있겠다. 3%에 불과한 비중에도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발휘하는 쑥이라니, 그 자체로 먹으면 어떤 맛일까 궁금해졌다. 봄철에 한창 쑥 원형이 살아있는 떡 '쑥버무리'도 팔던데. 그때는 얼기설기 흰색이 섞여있는 게 기존에 알던 쑥떡보다 맛이 덜 진할 것 같아 구매하지 않았다. 이제 오해를 풀었으니 다시 쑥버무리를 만날 기회를 호시탐탐 노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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