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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침대옆버스 Aug 09. 2023

된장잎 만들기

나물 탐방 1. 호박잎

 '발효'산나물밥이라더니 제철은 아니었으려나. 집 근처 로컬푸드 직거래센터에 가봐도 문경에서 맛본 나물들은 통 찾을 수 없었다. 시장까지 갈 여유는 없던 터라, 오래전에 맛보았던 '호박잎'을 대신 집었다.


 동화 <신데렐라> 속 마차의 원형이나 할로윈 소품으로는 왠지 주황색 호박 열매가 어울린다. 그에 비해 껍질이 얇고 길쭉한 연두색 애호박은 볶음이나 전 형태로 한식 밥상에 오름 직하다. 원산지에 따라 호박 색상이 다른 건가 궁금해져 찾아보니, 서양에서도 외관은 애호박과 비슷하되 과육이 비교적 단단한 '주키니호박'이란 품종이 있었다. 한편, 서양종 호박으로 분류되는 '단호박(밤호박)'의 경우 수프, 샐러드 외에도 우리나라에서 죽이나 찜, 심지어 고구마와 함께 다이어트 간편식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는 터. 동서양 기준으로 호박 색깔이 다르지도 않거니와, 사시사철 시설 재배가 가능한 오늘날에는 호박의 출신지가 크게 중요하진 않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럼에도 땅콩호박, 늙은호박, 색동호박, 국수호박, 꽃호박(관상용) 등 미처 몰랐던 호박의 이름과 생김새를 알게 된 건 꽤나 흥미로웠다. 내가 구매한 호박잎은 어디에 달려 있었으려나. 비닐 포장지에 접혀있던 걸 꺼내보니 큼지막하다. 흔히 접하는 깻잎과 상추를 3장, 개중 어떤 잎은 5장을 이었을 때 만들어지는 크기다. 잎 가장자리가 뚜렷하게 여러 갈래로 나눠지지는 않는다. 트럼프 카드 중 스페이드(spade)와 클로버(clover)를 겹친 상태로 테두리를 따면 비슷한 모양일 것 같다. 중앙의 두꺼운 맥부터 곁으로 따라가는 맥까지 뻗쳐있는 게 그 자체로 나무 같아 보이기도 했다.


 진녹색 호박잎을 씻으면서 의외로 부드러운 솜털이 느껴져, 무지막지한 크기와 달리 질기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먹는 만큼 더 맛있게 먹고 싶어 인터넷 손질법을 따랐다. 나뭇잎에서 2cm가량 떨어진 잎자루 줄기 부분을 반으로 꺾어 이파리 방향으로 쭉 잡아당기면 꺼슬꺼슬한 껍질이 벗겨진다. 질긴 섬유소를 제거하기 위한 조치라고 하는데 처음 하다 보니 중간에 잎맥 끝에 도달하지 못하고 구멍이 나기 십상이었다.

 

 고백컨데 호박잎 요리를 많이 먹어보진 못했다. 기억상 많아도 한 두 번이다. 할머니께서 농사를 지을 당시 호박잎을 주시면, 엄마께서 그것을 뚝배기에 담아 자작한 된장찌개처럼 끓였다. 처음 봤을 땐 두부가 없어 실망했는데, 부모님 따라 된장국물에 절여진 호박잎을 밥 위에 올리고 그대로 쌈처럼 한입 하니 아쉬운 마음은 싹 사라졌다. 두툼한 호박잎이 머금은 된장국물이 입안에 은은하게 퍼지고, 우물거릴수록 호박잎 특유의 향긋함이 올라와 정말 만족스러웠다.

 

 추억의 맛으로만 간직하던 이 요리를 위해 자취 처음으로 호박잎과 된장을 샀다. 된장 차이여서인지 어릴 때 먹은 것보다 살짝 달큰한 듯하지만, 입안 가득 된장국물이 퍼지는 만족감은 여전했다! 호박 종류가 다양한 만큼 세계적으로도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여러 호박잎 요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된장 외 발사믹소스를 곁들인 호박잎샐러드, 토마토소스를 곁들인 호박잎파스타, 크림소스 어쩌면 메이플 시럽까지. 수분감을 머금었을 때 향긋함과 입에 꽉 차는 식감이 훌륭한 호박잎은 어떤 소스에도 어울릴 만하다. 그럼에도 나에게 호박잎은 오래도록 된장잎으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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