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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침대옆버스 Aug 09. 2023

스마트폰이 없더라도

나물을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처음으로 경상북도 문경시에서 여름휴가를 났다. 사람이 북적이는 바다 명소보다는, 비교적 한적한 산골짜기에서 널브러지고 싶어 알아본 지역이었다. 날아가던 새도 쉬어간다는 문경새재의 고도라면 태백만큼은 아니어도 꽤 시원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7월 말 문경은 후덥지근함을 넘어 더위로 끓었다. 태양을 조명 삼아 흰 구름, 파란 하늘 그리고 거대 브로콜리 마냥 입체감이 뚜렷한 나무 한그루 한그루가 모여 솟은 산맥까지 모두가 돋보였다. 걸어 다닐 때마다 눈부심 속 땀이 줄줄 흐르는데도 영 싫지만은 않았다. 사방을 둘러싼 산에서 전해지는 올곧은 활력에 자극받아, 지치다가도 괜히 한 발자국 더 내디뎠다. 그리고 폭염임에도 폭포와 계곡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은 시리도록 차가워 주변에 냉기가 형성되는 게 신기하고 고마웠다.


 먼발치서 시각적으로 영험한 기운을 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문경 산은 나에게 친히 '내려와 줬다.' 식당 <송내촌산나물밥>에서 주문한 '발효산나물밥'과 '산나물전'으로 말이다. (이제는 산나물도 스마트팜이나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할 수 있으려나? 그것 역시 풍경일 때보다는 한층 가까워졌다는 점에서 영 틀린 표현은 아닐 것이다.)


 메뉴판에 따르면 '발효산나물밥'은 참취, 부지갱이, 엄나무순, 곤드레로 구성됐다. 메뉴판에 적혀있지 않았지만 '산나물전'도 그와 비슷한 색상이었다. 식당 직원분께서 함께 나온 다른 나물 반찬들도 차례대로 읊어주셨는데 생소하다 보니 금세 잊었다. 이후 한 젓가락씩 먹을 때마다 각 나물이 지닌 향과 맛이 확연히 달라 놀랐다. 이들을 여태 나물로 퉁쳐 불러왔다니.


 그날 유독 더워서였을까. 대학교 강의 중 교수님께서 아프리카에 대해 말씀하신 내용이 떠올랐다. 우리는 아프리카를 개별 국가가 아닌 대륙 한 덩어리로만 바라본다고. 사실 그 안에는 무수히 다른 문화와 지리적 특징이 있고, 미디어를 통해 접한 아프리카 모습은 과거의 것이거나 현재라도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여태 나물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은 아프리카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평소 채소류를 좋아해 나물을 즐거이 섭취하곤 했지만, 그들의 고유성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할머니께서 쑥을 캐 쑥떡을 만들어주시면 콩고물 묻혀 먹을 생각에 신이 났지, 어디서 캐고 식물 그 자체로 어떻게 생겼는지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나마 쑥은 할머니라는 연상 지점이 있다. 당귀, 가시오갈피, 뽕잎을 우물거릴 때마다 정말 맛있는데 어떻게 묘사해야 할지, 무엇을 떠올려야 할지 몰라 조금은 답답했다.


 나는 나물도 좋고, 언젠가 아프리카에도 가보고 싶은 사람인데. 사진, 음원, 글, 장소, 걸음수 등 모든 것을 휴대폰에 기록하는 사회지만 어쩌면 내가 나물을 직접 캐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는 스마트폰을 집어 정체를 확인할 여유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스마트폰이 없더라도 나물을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직은 기기에 의존해 그날 만난 나물들의 이름을 되새겨본다. 대프리카 문경에서 만난 나물 반찬 하나하나를 조금씩 탐구해 보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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