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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침대옆버스 Aug 09. 2023

술 마시고 집 가는 길

경기도 통학러의 술자리(~2019)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다르다.


급한 일을 막상 처리하고는 나 몰라라, 소위 ‘태세 전환’하는 경우를 비꼬는 말로 쓰인다. 극진히 공감하는 말이다. 특히나 술 마시고 집으로 갈 때.


나오면 항상 어둡다. 낮에 팝콘처럼 활짝 핀 벚꽃도, 푸름을 넘어 파랗게 빛났던 이파리도. 바닥을 울긋불긋 물들인 낙엽도, 반짝임에 홀려 미끄러지지 않게 신경을 곤두서야 하는 얼음덩어리도. 모두 어둠에 잠겨 홀연히 사라진다.


나오면 항상 춥다. 그런데 체감상 그 정도는 나름의 항상성을 지닌다. 여름은 한낮에 엄청 더웠기 때문에 밤에는 얇은 카디건만으로 부족하다. 물론 겨울이 더 추운데, 술김에 감각이 아둔해지고 애초에 술자리를 고려해 롱패딩으로 무장했던 터. 코끝은 추울지언정 볼에선 열이 난다.


나오면 항상 뛰게 된다. 계절을 분간할 수 없는 몽롱함에 지하철역까지는 그저 빠른 걸음을 취한다. 첫 번째 교통수단에 안착하면 왕복 3시간 통학생은 차분한 척 광역버스 배차시간을 확인한다. 그마저도 힘겨울 때는 휘청거리며 기대 있다가 을지로입구역 개찰구를 나오는 순간부터 무작정 달린다. 여름에는 샌들의 타다닥 소리. 겨울에는 단추 채운 롱패딩에 좁아진 보폭과 패딩 스치는 소리. 두 칸씩 겅중겅중 계단을 오를 때까지 한가한 역사 안을 오래도록 울린다.


버스에 타면 조금씩 선명해진다. 따뜻하지만 조만간 답답해질 히터 때문인지. 소름 돋는 시원함에 놀라 좌석 위 에어컨을 꺼서인지. 잠깐의 뜀박질로 쿵쾅대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술이 달아나는 여운을 느낀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같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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