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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침대옆버스 Aug 10. 2024

죽도는 붓을 휘두르듯, 즐겁게

검도 1회 차: 발동작,  중단-상단-머리치기-손목치기를 배우다

 당신이 첫 수업을 위해 검도장에 들어갔을 때 커다란 기합 소리로 두 선수가 검을 부닥치며 겨루고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당연히 도장에서 자주 볼법한 풍경이겠으나, '오후 7시 수업에는 아무도 없으니 처음에 혼자 배우기 좋다'는 얘길 들었던 나는 속수무책으로 놀랐다. 문을 열자마자 본능적으로 경기장과 반대편 구석으로 직진했다. 숨어든 후에야 여러 차례 내 이름을 부르는 관장님 목소리가 들렸다. '속 빈 강정의 길'과 이어지는 건가 싶게도 내가 찾아간 곳은 화장실이었다.

 멋쩍지만 웃지는 못하겠는 심정으로 관장님께 다가갔다.
 "저분은 대학교 검도 전공생이에요. 곧 대회를 앞두고 있어서 다른 사범과 이 시간에 연습하는 거예요."  
 두 사람 모두 투구를 쓰고 있어 성별과 나이를 짐작하긴 어려웠다. 다만, 비교적 체구가 작은 선수가 "머리", "아", 그 외 내 귀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특정 단어'들을 크게 외치며 계속 공격을 시도하려는 것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상대 선수는 공격을 막으며 뒤로 물러서지만 체격 차이 때문인지 결코 힘에 부치지는 않는 것처럼 보였고, 선수의 기합보다 더 큰 소리로 바로 피드백했다.(그 말들 역시 내 귀에는 아직 익숙지 않아 묘사할 수 없다.) 상황을 이해하고 나니 발구름, 타격, 기합소리에는 어느덧 익숙해졌다.  다만, 단호한 사범님의 음성에는 첫 수업 내내 움찔거렸는데, 빠르고 직설적인 피드백이 나에게는 화내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선수가 아니니 저렇게 혹독하게 훈련하지 않는다'는 관장님의 다독임에도 쉬이 긴장이 풀리지 않았다. 어린이들도, 나 같은 초보가 들어오는 이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땀 흘리는 취업 전선일 테니.

검도장 바닥은 직사각형 모양의 황토색 유광 합판이 여러 개 나열된 형태여서인지 어린 시절 초등학교 강당이 연상됐다. 물론 공간 크기는 강당의 3분의 1, 한쪽 벽면에는 대형거울이 달렸고, 양말을 벗을 수 있다는 차이점도 있었다. 에어컨과 대형선풍기로 한껏 시원해진 마루를 맨바닥으로 밟는 촉감이 마음에 들었다. 앞으로 검도수업 전 알아서 수행할 몸풀기 운동을 따라한 후, 검도의 발 동작부터 배웠다. 왼발 뒤꿈치를 살짝 든 채, 왼발가락과 오른발 뒤꿈치가 서로 평행선에 놓이는 것이 기본자세다. 그리고 가고자 하는 방향의 발부터 먼저 움직인다. 이때, 발바닥 앞부분이 보이지 않도록 바닥면을 스치듯이 이동해야 한다. 다섯 살 터울의 남동생이 7살 무렵 짧게 검도를 배운 적이 있었다. 당시 집에서 한쪽 발만 계속 먼저 앞을 디디게끔 폴짝폴짝 돌아다니곤 했는데, 이제 보니 수업에서의 여운이었나 보다. 아기 캥거루 같던 동생 어릴 적 모습이 떠올라 웃음 짓다가, 새삼 막연히 궁금해했던 검도라는 세계에 '내돈내산'으로 '퇴근 후' 입성한 스스로가 대견했다.  

 발동작이 어느 정도 익숙해진 이후에는 죽도를 들고 순서대로 '중단', '상단', '머리 치기', '손목 치기' 자세를 익혔다. 불과 몇 분 전까지 검도를 하는 나에 감개무량해했는데, 관장님의 자세 설명을 들을수록 자신감이 사라졌다.
 "중단 자세는 손목은 내 배꼽보다 약간 아래에서 시작해, 상대가 나와 신장이 같다는 전제 하에서 그 사람의 명치를 겨누면 됩니다."
 "상단은 죽도를 머리 위로 높이 드는 자세입니다. 이후 상대의 머리를 치는 방향으로 죽도를 뻗으면 머리치기이고 손목을 치는 방향, 그러니까 상단과 머리치기에 비해 거의 지면과 수평으로 죽도를 겨누면 손목치기입니다."
 위에 대화는 일부일뿐, 실제로는 각 동작을 취할 때마다 신경 써야 하는 손목 각도, 팔 위치, 왼쪽 손목에 힘을 줘야 하는 순간 등을 상세하게 짚어주셨다. 처음 취해보는 자세에 생각보다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아서 긴장했던 것은 맞다. 그러나 그보다 나를 얼게 만든 건 '결국 모든 자세가 상대를 잘 공격하기 위함'이란 당연한 사실 때문이었다! 내가 상대의 손목, 머리, 명치를 겨눌 수 있을까. 러닝, 요가, 필라테스 등 혼자 하는 운동 대신 누군가와 함께 하는 운동을 꿈꾼 것이었다. 태권도, 유도, 주짓수에 비해 검도는 호구를 쓰고 검을 이용하므로 상대와 접촉지점이 적고 그만큼 안전할 거라 생각했다.(여기서부터 나는 '맞는' 상대에 이입했지, '공격하는' 나 자신을 그려보지 않았다는 게 드러난다.) 이러다 전에 잠깐 배웠던 복싱과 비슷한 수순을 밟는 게 아닐까. 체력 증진을 목적으로 시작했던 복싱은 준비운동만으로도 뻘뻘 땀나게 해 건강에는 분명 도움 되겠다 싶었으나, 샌드백을 치는 동안 스트레스가 해소된다는 감정을 그다지 느끼지 못해 그만두고 말았더랬다.

 검도와의 지속 가능성이 걱정되긴 하나, 배운 자세는 지켜야 되니 옅은 고민으로 동작을 반복하던 중이었다. 대학생 선수와의 경기를 마친 '호통 사범님'이 호구를 벗고 내 옆으로 다가왔다.   
 "지금 자세가 너무 얼어있어. 첫날이라고 들었는데, 아까 무서워했던 거 아닌가 몰라. 검도는 아름다운 무술이에요. 검이 아니라 붓을 휘두른다는 느낌으로 한번 해보세요. 그렇지, 잘하시네. 모든 동작은 힘을 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해요. 즐기면서 하세요."
호구 썼을 때 풍긴 분위기와 너무나도 다른 푸근한 인상으로 깨달음을 주고 가신 사부, 아니 사범님이셨다.  힘 빼기야말로 내가 늘 바라는, 그러지만 잘하지 못하는 행동이다. 태생적으로 경험적으로 긴장을 많이 하다 보니 어깨와 목 근육이 많이 뭉친 편이다. 검도라면 유연함이나 순발력이 비교적 덜 필요하고, 수양의 느낌이라 오히려 딱딱 선이 올곧아야 한다고 착각했다. 습관을 조금씩 덜어낼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상단 자세를 취하다 "머리"라는 기합과 함께 머리치기 동작으로 넘어갔다. 칭찬 덕분인지 거울에 비치는 게 제법 그럴싸 해 보인다. 오늘 연습한 동작을 익히는 데 집중하기로 마음을 다잡는다. 한참 뒤 호구를 쓴 누군가가 내 앞에 선다면 그때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보자. 검이 아닌 붓을 휘두른다는 상상은 꽤나 즐거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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