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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침대옆버스 Aug 24. 2024

계단 오르기

검도 6회 차: 연격을 배우고 타격대와 마주하다

 휴가를 다녀오고 나니, 그간 밀린 업무들을 처리하느라 도장 방문을 미뤘다. 그렇게 야근하던 어느 날 관장님께 전화가 왔다. 화들짝 놀라 평소와 달리 사무실 공간 밖으로 나가기도 전에 즉시 통화 버튼을 눌렀다. 깍듯이 "내일은 꼭 가겠습니다"라 답했고 다음날 15분 일찍 도착했다. 혼몸풀기 동작을 마칠 무렵 관장님이 들어오셨고 자연스레 인사를 나눴다. 방문이 뜸했던 수강생으로서 그나마 덜 민망한 조우였다.


 관장님께서 이 글을 읽을 리 없으니 조금 더 솔직해지자. 사무실로 복귀했음에도 검도장에 들른 적 없던 3일이란 시간에는 내 의지도 서려 있었다.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이미 오후 7시를 넘겼을 도 있었지만, 지금 바로 회사에서 나면 수업 들을 수 있는 때도 있었다. 모니터 우측 하단 시각을 보고도 의자에서 등을 떼지 않고 다시 작업파일로 눈을 돌렸다. 내 마음이 호수라면, 그곳에 '이왕 집중했을 때 마저 해치우자'는 일 욕심은 한 트럭이요, '쉬는 동안 여태 배운 동작들을 잊어버렸을까' 싶은 초보의 두려움은 열린 댐 수문처럼 콸콸 쏟아지는 중이었다. 


 이제 관장님도 오셨겠다, 1동작치기부터 3동작치기까지 차례대로 선보여야 했다. 잔뜩 교정해야 할걸 각오한 채 죽도를 휘둘렀다. 손목치기가 끝날 무렵, 내가 들은 첫 피드백은 의외였다.

"앞으로도 오래 쉬다 나와야겠는데요? 실력이 더 늘었어요."

감사합니다라고 반응했지속으로는 안 믿었다. 이대로면 영영 다시 나오지 않을까봐 지레 하는 응원일 것이다. 조마조마하며 동작을 이어가는데, 허리치기에서도 칭찬을 받으니 어리둥절했다. 휴가 떠나기 직전에야 감을 잡았던 동작이었는데, 정말로 몸에 익은 걸까? 그렇다고 말하기엔 새로운 유형의 동작으로 넘어갈 때마다 '이 동작은 어떻게 하는 거였더라' 잠깐 떠올리는 시간이 필요했다. 실제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봐도, 어딘지 모르게 자세가 자연스러다. 도복 입은 내 모습이 멋있다고 상향해 바라보는 걸 감안하더라도! 왜일까, 뭐가 달라진 걸까 추측하던 중 차이알아챘다.


 검도 다녀온 날이면 계속해서 근육통에 시달렸다. 특히 죽도를 계속해서 리고 내리쳐야 하는 양팔과, 발바닥을 지면과 떨어뜨린 상태로 계속 이동해야 하는 왼쪽 하체 부위가 아팠다. 검도보다 땀을 더 흘렸을 등산이나 달리기와 비교해도 유독 후유증이 남아 뿌듯함 보다는 이게 맞나 싶은 의문이 들었다. (검도 수업 역시 땀을 흘리나, 도장 냉방시설이 마련돼 있어 다른 야외활동에 비해서는 땀에 흠뻑 젖 않는다. 흠뻑 젖는 구간이 있더라도 열기가 식 송골송골 맺히는 정도로 바뀐다. 아직까지는.) 그러던 중 실제 대화인지 SNS인지 출처 모를 어딘가에서 접한 문장이 떠올랐다. "몸치는 언제 힘을 빼야 할지 몰라서 계속 몸에 힘을 주고 있다." 수긍했다. 운동이든 춤이든 기승전결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동작 익히기에 급급하면 앞뒤 맥락을 고려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강-강-강-강' 혹은 '약-약-약-약'에 머무른다. 안 그래도 사범님께서 죽도를 머리 위로 들 때 팔 힘이 아니라 어깨 힘을 이용해 들어 올린다는 느낌을 받아야 한다고 하셨다. 팔만 아픈 걸 보면, 어깨와 등근육 힘을 사용하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사실을 알면서도 힘을 빼지 못했던 이전과의 차이점은, 자포자기 태도서 나온 것 같다. '이 동작은 이래야 해'라는 확신이 없어 흐지부지하게 자세를 바꾸던 중 엉겁결에 팔 대신 어깨에 힘이 들어간 것이다! 수업이 끝난 후 이 일화를 애인에게 약간의 자랑 섞어 공유했다. 수강생을 놓칠까 걱정하는 CEO로서의 칭찬이 아닐까 생각한다는 나의 음모론에 탕하게 웃니, 실제로 쉬고 나서 실력이 오르는 경우도 있다는 희망적인 가설을 제시했다. 입한 노력이 항상 바로 결실로 나타나진 않는다고. 선 그래프가 이상적이지만, 현실에서는 계단식으로 성장한다고. 저녁 먹으러 가는 길에 들은 그 말이 뭉클하게 다가온 건, 이날 새로 배운 동작들에서는 엄청나게 뚝딱거렸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타격대를 두고 연습했다. 상반신만 있는 마네킹에 호구와 가슴보호대(갑옷)가 덧씌워진 형태였는데, 실제로 사람과 겨루기 전에 이 타격대를 공격하면서 거리감을 익혀야 한다고 하셨다. 가 어느 정도 거리에서 출발해야 한 번에 상대 부위를 내리칠 수 있는지 계속해서 연습하는 것이다. 한 발자국 내디뎌 죽도를 목표지점에 닿게 한다는 뜻에서 '일족일검'의 거리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연격 배웠다. 타격대와 달리 실제 사람은 계속해서 움직인다. 상대와 합을 맞춰 연습할 때 이 연격 동작을 반복한다고 한다. 연격 1세트 구성은 다음과 같다.


1. 한 발 내디딘 후 "머리"라 기합을 넣으며 머리치기 동작을 한다. 공격하며 자연스레 두어 걸음 나아간다. 이후 좌우머리치기하며 네 걸음 전진하고, 좌우머리치기하며 다섯 걸음 후진한다. 계속해서 상대 머리 부위로 죽도를 뻗었던 것과 달리, 상대 목을 겨눈 '중단' 자세로 두 걸음 더 뒷걸음친다.


2. 1번과 동일한 동작을 반복하되 기합은 생략한다.


3. 한 걸음 앞으로 나선 후 "머리"라 기합을 외치며 머리치기 자세를 유지한 채 빠른 걸음으로 상대의 출발지점까지 도달한다.


이 1세트를 5회 하는 것이 앞으로 도장에 가면 반복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타격대를 칠 때는 팔이 발보다 느린 게 문제였고, 연격에서는 마지막 3번 자세에서 발이 바닥을 스치듯 더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게 어려웠다. 자꾸 깡총 걸음으로 뛰게 되고 상대 출발지점에 도달하기도 전에 팔이 아래로 내려가는 경향이 있었다.


 결국 내가 기억하고 다음 수업 전 읽어보려고 적는다. 뒤로 늦출수록 새로운 신체활동을 배울 용기가 사라질 것 같아 검도에 도전했다. 휴가 다녀온 이후 한껏 소심해져 재방문을 미루는 이번 일화에서 눈치챘겠지만, 나는 이미 몸을 쓰는 운동에 자신이 없는 내성적인 사람이다. 칭찬은 예외적으로 얻어걸린 것만 같고, 아직 정확하게 감이 오지 않는다. 그런데 그 무지가 제법 흥미롭다. 본래 내가 못하는 분야를 배운다는 건 시작하긴 어려워도 '될 대로 돼라'와 '이게 되네'를 반복하는 묘미가 있다. 지금은 매 회차가 그 어려운 '시작'에 해당한다는 게 위기요소긴 하다. 언젠가 나를 실제로 아는 사람이 이 글을 읽는다면 "요새는 검도 어떻게 돼가고 있어?"라고 먼저 물어봐주면 좋겠다. 그때의 내가 "몇 번째 계단쯤에 있어"라고 웃으며 말하기를, 계단에 걸터앉을지언정 아예 내려오진 않길 과거가 될 현재에서 응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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