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검체,하겠다
검도 4,5회 차: 3동작치기, 2동작치기, 1동작치기, 빠른머리치기 등
이번 주는 월요일부터 필히 검도를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지난주 마지막 수업에서 잔뜩 기가 죽었던 지라, 월요일부터 가지 않을 핑계를 대면 한 주 내내 이어질 것 같았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심정으로 주차 후 터덜터덜 도장 방향으로 걸어가는 길, 날씨가 덥고 습해서인지 이상하리만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분명 수업 초반까지만 해도 재밌었다. 이제 준비운동 이후에도 자율적으로 연습할 몇몇 동작을 익혔다. 처음 배웠던 '중단', '상단', '머리치기', '손목치기', '허리치기' 각 자세를 이어서 하나의 기술로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죽도를 머리 위로 든 후(1. 상단) "머리"라 외치며 상대 머리 방향으로 죽도 끝을 겨눈 다음(2. 머리치기),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기(3. 중단) 위해서는 도합 세 가지 동작을 취해야 한다. 따라서 기술 이름도 '3동작 머리치기'다. 3동작 머리치기, 3동작 손목치기, 3동작 허리치기를 각 10회씩 반복한 이후에는 2동작치기로 넘어간다. 쉽게 말해 3동작치기에서의 1, 2번 자세를 분절 없이 빠르게 수행해 두 동작처럼 보이도록 하면 된다. 그리고 1동작 치기는 3번이 없어지고 1,2번을 계속 반복하는 셈이다. 상대를 공격하며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던 발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순간에도 죽도를 휘둘러야 한다. 게다가 1동작치기에서는 머리, 손목, 허리 외에 좌우머리치기가 추가된다. 머리 정면을 조준하던 기존 머리치기와 달리, 좌우머리치기는 죽도 끝자락이 상대의 귀 윗부분 어쩌면 양쪽 두개골에 닿는다는 생각으로 사선으로 기울인 채 아래로 내려와야 한다. 몸은 앞뒤로 이동하는데, 죽도는 좌우를 겨냥하다 보니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비틀거렸다.
여기까지 기본 동작만 연습해도 벌써 100회다. 관장님께서 틈틈 자세를 교정해 주시므로 어쩌면 10회가량 더 수행했을지도 모른다. 같은 동작을 반복할 뿐인데 점점 고려해야 하는, 그리고 실제로 내가 반영할 수 있는 요소가 늘어난다는 게 참으로 신기하다. 특히 허리치기는 처음에 좀처럼 감을 잡기 어려웠다. 앞발을 대각선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상대의 허리를 공격하는 것이라 배웠는데 관장님께서는 어째 항상 내 예상보다 훨씬 높이 죽도가 올라가게끔 바로 잡아주셨다. 그리고 내 오른팔이 지나치게 쫙 펴져서 정작 왼쪽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을 지적하셨다. 일대일 수업의 장점이자 단점은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는 것이다. 여럿이 수강 중이라면 나도 관장님도 지금 나의 잘못된 자세를 잠깐 모른 체할 수 있을 텐데, 둘밖에 없다 보니 개선되기 전까지 계속 현 단계에 머무르게 된다. 눈치는 보이는데 죽도 위치와 오른팔 힘 빼기가 동시에 되지 않아 고전하던 중,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봤다. 관장님이 고쳐주신 자세는 공통적으로 거울 속 검 끝이 내 왼편 어깨 끝자락에 닿아있었다. 그래, 차 기능시험 볼 때 주차 공식 외우듯 요령을 부려 다음 단계로 나아가자. 그런데 거울 속 모습에 맞춰 동작을 취하다 보니 오른팔의 굽힘이 어느 정도 자연스러워졌다. 왼팔에 힘을 넣을 수 있었고, 관장님께서 교정해 주시는 지점은 상대 허리를 타격한 이후 검이 위쪽으로 올라간 상태여서라는 원리도 알아차렸다. 뒷걸음질 치다 얻어걸린 것이라도 끊임없는 반복 끝에 스스로 체득했다는 점에서 성취감을 맛봤다.
그러나 수업 중반부에 배운 빠른머리치기부터 심장 박동이 예사롭지 않아 졌다. 빠른 머리치기에서 팔은 1동작치기와 동일한데 발재간이 추가된 형태다. 앞으로 머리치기를 할 때 오른발에 이어 왼발도 따라 폴짝 뛰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다음 죽도를 머리 위로 올리면서, 왼발 먼저 깡총 그다음 오른발 깡총하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제야 떠오르는 나의 과거,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 '덩 기덕 쿵 더러러러' 장단으로 장구를 친 적이 있다. '더러러러' 소리가 나려면 오른손에 쥔 채가 북면에 맞닿은 이후 파생하는 진동을 활용해야 한다. 그 소리가 잘 나서 뿌듯했는데 노래를 함께 부르며 그 장단을 쳐보려 하니 '더러' 혹은 '덕'처럼 어색한 소리로 변모했다. 그 이후 학급 단체 춤 연습, 회식 중 직장 상사의 질문에 대답하며 고기를 잘라야 할 때마다 버벅거리는 나를 보며 받아들였다. 그래, 내 몸을 잘 가누는 편은 아니구나. 두 동작 결합은 쉽지 않다. 쿵.
이어서 발 구르기 동작을 배웠다.
"예전에 검도는 기검체가 함께 하는 무술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어요. 기합과 검(현 단계에서는 검 대신 죽도를 이용한다)을 여태 익혔다면, 마지막 몸은 발구르기로 표현돼요. 단순히 검을 뻗으면서 기합을 지르는 것이 아니고, 이 발 구르기도 그 순간에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
설명과 함께 시범을 보이는 관장님께서는 그야말로 기검체를 발산했다. 목소리와 발소리, 심지어 검이 앞으로 큰 호를 그리며 슉 내는 소리까지 모두 동시에 우렁찼다. 그에 비해 내 소리는 아무리 세게 내려쳐도 빈약했다. 하찮은 발구름에 쭈뼛거리는 걸 느껴서인지 관장님께서 노하우를 전수해 주셨다. 발바닥이 앞사람에게 보일 정도로 위로 올리기보다는, 살짝 들어도 괜찮으니 지면과 수평으로 들어 올려 팍 떨어뜨려야 마찰음이 세다는 것이다. 수영장에서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몸과 닿는 마찰면을 최대화하는 것이 오히려 검도에서는 권장사항이라니 이상했다. 방법은 들었으나, 물따귀 맞을 때처럼 아플까 무서워 계속 살살했던 것도 같다. 한 걸음 내딛는 동시에 검을 휘두른다고 하여 '일족일검'이라 부르는 동작이다. 검에 기운을 불어넣는다는 생각으로 발도 입도 때맞춰 일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검의 속도가 느려 엇갈린다. 이러다간 상대에게 어디 공격할지 알려주고 공격하겠어. 윽 이제 이 자세를 배운 이상, 쿵 할 때마다 관장님께서 더 꼼꼼히 조언하시겠지. 부담감에 상심한 마음으로 발을 소심하게 굴러본다. 쿵. 쿵.
가속도가 붙은 듯 빠르게 다음 진도로 넘어갔다. 어릴 적 동생이 집에서 종종 하곤 했던, "머리"라 외치며 한 방향으로 뛰어가는 것. 이는 여태 배운 것들의 총집합체였다. 빠른머리치기 9회 반복 후 발구름과 "머리" 외침을 동시에 하며 앞으로 뛰쳐나가는 동작이었기 때문이다. 실력에 비해 기준이 높아져서일까. 내가 못한다는 사실을 아는데도, 다시 한번 그 동작을 반복해야 하니 고역이었다. 관장님께서는 그저 아무 말 없이 지켜볼 때도, 동작 이후 피드백을 주실 때도 있었는데, 혼내려는 의도가 전혀 없으나 자꾸 위축됐다. 어린이나 청소년이라면 이러한 동작을 쉽게 흡수했겠지. 도달 지점에 닿기 전에 "머리"라 외치는 목소리가 줄어들고 죽도를 든 팔도 스르륵 내려버리는 내가 싫었다. 다음에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다가도 시작하는 발구름 소리가 약하거나, 빠른머리치기 때 발스텝이 엉키면 부끄럼이 밀려왔다. 스스로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에는 나이가 들었고, 미진함에서 나오는 민망함을 허허실실 너스레로 승화하기에는 아직 어렸다. '기와 검'까지는 어느 정도 배운 '체'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합쳐보니 아니었다. 그러나 심장이 더 빠르게 뛰기 시작한 건 그다음에 벌어진 일 때문이었다. 쿵. 쿵. 쿵.
일명 '호통 사범님'께서 먼발치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시더니, 대학생 선수 분께 "언니 좀 알려드려"라고 제안했다. 선수 준비하는 사람의 시간을 빼앗아도 되나. 내가 오늘 수업 시간에 개선이 없으면 무한정 길어지는 것 아니야? 수업 전 먹었던 고로케의 기름짐이 갑자기 느껴졌다. 진짜 기검체 하다 '체'하겠네.
몸치, 여기서 뭉치ㄴ다. 결국 그날 한껏 긴장한 상태로 선수분의 코칭을 들었던지라 주말 내내 근육통을 앓았다. 그리고 다시 이 일이 반복될 거란 불안감에 심장이 쿵쾅대는 상태로 월요일 도장 출근을 찍었으나, 다행히 돌아오는 길은 그보다 나아졌다. 여전히 뚝딱대면서도 지난주 말했던 것들이 몸에 아주 조금씩 잡히는 느낌이었다. 결국 관건은, 오른팔에 지나치게 힘주지 않는 것. 왼 손목 힘으로 조율할 수 있어야 온몸이 굳지 않은 채로 운동할 수 있다. 매번 힘을 주지 않고 정말 필요한 순간에 집약적으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그러나 이것을 해내야만 '기검체'가 한 번에 이뤄질 수 있다. 기검체, 하다. 기검체, 해낼 것이다. 이번주는 이걸 목표로 한 번 더 수업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