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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크네 Feb 26. 2024

잠을 내 편으로 만드는 법

어느 시기부터 잠드는 일이 노력이 필요한 과제가 되었다. 10대까지만 해도 잠은 자동으로 처리되는 몸의 일이었다. 눈을 감고 있다 보면 알아서 의식의 스위치가 내려가고 꿈나라로 날아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찌 그리 쉬울 수 있나 의아하다. 그때라고 마냥 마음이 편안하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다.


잠자는 일이 까다로운 수동 작업이 된 건 어른이 된 후부터다. 전조등 불빛이 스쳤다 사라지는 검은 천장을 올려다보며 끙끙거리는 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구체적인 계획 없이 대학을 졸업했고, 우여곡절 끝에 진로를 정하고서도 그 일이 안정적이지 않았다. 상념이 많을 수밖에 없는 시기였다.


푹 쉬지 않으면 다음날에 지장이 생기므로 얼른 잠들어야 했다. 눈을 감고 걱정을 멈추어보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자야 한다는 생각이 강할수록 오히려 잘 수가 없었다. 잠에 들라 치면 갑자기 어망에 걸린 물고기처럼 현실로 끌어올려졌다. 짜증이 솟구쳤다. 나는 스스로와 무수히 다퉜다. 불면과 엎치락뒤치락 몸싸움을 하다 보면 머리가 아프고 졸음이 달아났다. 피곤하면서도 잠은 오지 않는 불쾌한 상태로 누워 있노라면 어느새 천정에 푸른 새벽빛이 물들곤 헸다.


잠에 대해 연구하게 된 건 2년 전부터다. 당시 내원하던 신경정신과의 담당 선생님을 통해 ‘수면위생’을 알게 되었다. 잠을 관리하는 전략으로, 수면을 방해하는 요인을 제거하고 환경을 쾌적하게 하는 매뉴얼이다. 내용은 대부분 상식적이다. 침대에서 스마트폰을 하지 않을 것, 카페인 섭취를 자제할 것, 정해진 시간에 잠들고 깨어날 것, 독서와 음악 감상으로 신경을 안정시킬 것 등.


빤한 내용에 실망하긴 했지만 당시 수면의 질이 심각하게 나빴던 터라 목록을 꽤 열심히 실천했다. 그리고 상당한 도움을 얻었다. 쉽게 잠을 잘 수 있게 된 건 아니다. 여전히 수면유도제가 없으면 잘 수가 없었다. 내가 얻은 건 잠은 공짜로 얻어지지 않는다는 깨달음이었다.


건강이나 능력을 유지하는 데에 노력이 필요하듯 수면 또한 노력을 통해 누릴 수 있는 것이다. 20대에는 하루에 네 시간만 자고 세끼를 붉닭볶음면으로 때워도 건강할 수 있다. 재능을 타고났다면 별 노력 없이 한 분야에서 천재적인 두각을 나타낼 수도 있다. 하지만 타고났다고 해서 유지까지 거저 되는 건 아니다. 젊다고 방만하게 생활하면 30대쯤부터 온갖 병으로 대가를 치르게 되고, 재능만 믿고 노력을 게을리하면 어느새 그 분야에서 밀려나 있다. 수면도 마찬가지다. 잠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텃밭을 가꾸듯 노력과 관리로 질 좋게 유지해야 탈 없이 누릴 수 있다.


수면위생을 통해 잠이 얼마나 컨디션과 환경에 큰 영향을 받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몸과 마음을 면밀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관찰결과는 이러하다. 나는 생각보다 훨씬 카페인에 민감했다. 저녁에 후식으로 먹은 초콜릿 한 조각으로 새벽 4시까지 잠이 들지 못할 정도다. 또, 나는 감정적으로 예민한 사람이었다. 불쾌한 기분은 물론이고 지나치게 들뜨는 감정도 수면을 방해했다. 그리고 하루에 한 번 이상 밖에 나가지 않으면 머리가 아프고 침통한 기분이 되어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하루에 한 번은 반드시 산책을 해야 한다.


알아낸 정보를 통해 일상을 관리해 나갔다. 오후 3시부터 카페인 금지. 저녁 6시부터 자극적인 콘텐츠나 스트레스받는 업무 금지. 하루 한 번 이상 산책.


자아, 이것으로 나는 잠을 내 편으로 만들었을까? 그럴 리가. 잠은 얻기 힘든 인재라 삼고초려도 안 먹힌다.


여전히 뒤척이며 밤 시간을 낭비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왜일까. 나는 스스로를 곰곰이 관찰했다. 밤. 깜깜한 거실(나는 거실에 소파베드를 두고 잔다). 따뜻한 실내공기. 딱 알맞게 푹신하고 냄새가 좋은 이부자리. 스마트폰으로 신경을 혹사하는 대신 지루한 사회심리학 책으로 스스로를 고문한 터라 정신이 몽롱하다. 잠을 잘 수 있는 완벽한 상태다. 그런데 내 정신은 여전히 말똥말똥하다. 왜?


눈을 감은 채 스스로를 관찰해 보았다. 곧 이유를 알게 되었다. 놀랍게도 눈을 감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머릿속에서 연속상영회가 시작되었다. 흥미롭게 읽었던 소설책이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배우들로 영화화되어 눈앞에 춤을 추더니 뒤이어 얼마 전에 보았던 캐럴라인 냅의 인상적인 에세이를 친구에게 추천하며 마음이 통하는 깊은 대화를 나누는 상상이 펼쳐졌다. 별안간 얼마 전 마트 전단지에서 보았던 마늘 1kg에 6900원 세일이 정확히 며칠인지 맞히는 퀴즈쇼가 방영되었고, 퀴즈쇼가 끝나자 냉장고에 보름이나 묵혀둔 양파에서 한 뼘 만한 싹이 자라나는 공포영화가 시작되었다. 망상이 뇌를 지배한 것이다.


평소 나는 생각이 많은 편이다. 걱정거리가 없으면 만들어서 하고, 쥐어짜보아도 걱정할 문제가 안 보이면(그러니까 삶이 잘 굴러가고 있으면) 온갖 허무맹랑한 상상들로 의식의 공백을 채운다. 눈을 뜨고 있는 낮에도 종종 개꿈 같은 생각에 빠지곤 하는데 밤이면 어련할까.


고개를 저으며 영상을 치워보려 했다. ‘저리 꺼져. 나는 자야 해. 내일 일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활개 치는 생각들은 유튜브 영상보다도 정지시키기 어려웠다. 유튜브라면 화면을 끄고 스마트폰을 한구석에 던져버리면 그만이지만 의식은 살아있는 한 잠들지 않는다(수면 중에도 의식은 자기 나름대로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평소라면 다른 일에 집중하며 잡생각을 털어낼 수 있지만 지금 나는 자려고 누워있다. 집중할 거리가 없다.


당장 영상을 끄고 자라고 고함을 치고 싶었다. 하지만 스스로와 싸우면 있던 잠도 달아나버린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다.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며칠간 고민한 끝에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다. 설득과 집중이었다. 밤이 오면 나는 나에게 이렇게 설득했다.     


‘생각하는 것보다 잠자는 게 더 재미있어. 생각하는 것보다 잠자는 게 더 유익해.’     


마음이 납득을 하는 것 같았다. 잠을 자야 한다는 집착으로 몸이 긴장되는 걸 방지하기 위한 설득을 이어간다.     


‘네가 잠을 자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어. 너는 잠을 잘 수 있는 능력이 없어. 네가 잠을 자려고 할수록 잠은 달아날 거야. 잠은 손님이야. 네가 문을 열어두고 얌전히 있으면 잠은 직접 찾아와서 너를 데려갈 거야. 손님은 언제 너를 방문할까? 네가 몸에 힘을 풀고 신경을 호흡에 집중할 때야.’     


집중이 중요하다. 잡생각을 떨치는 유일한 방법은 무언가에 집중하는 것이다. 몸에 힘을 풀고 호흡에 집중하는 순간 영화상영이 끝났다. 마음속에 잠을 잘 수 없으면 어쩌나 하는(불면증 환자들이 흔히 느끼는) 두려움이 퍼지지만 신경 쓰지 않고 호흡에 온 의식을 기울였다.


나는 곧 잠에 빠졌다.


그 후 설득과 집중은 나에게 중요한 수면 매뉴얼이 되었다. 일시적이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계속 효과가 있다. 그렇다고 매일 밤을 푹 자는 건 아니다. 이따금 머릿속 상영회가 너무나 흥미진진해 새벽까지 멀거니 영상을 보기도 하고, 뭣모르고 성분이 강한 녹차 롤케이크를 집어먹는 바람에 밤을 새기도 한다.(문제의 롤케이크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궁금하다면 이 글을 읽어보시길. https://brunch.co.kr/@a4a25b5ee4e7465/3 ) 그래도 더 이상 스스로를 불면증 환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수면문제가 인생에 큰 스트레스도 아니다.


통제할 수 있게 된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찾아냈다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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