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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젠스넷 Oct 16. 2024

유독 힘든 날이 있다.

난(놈 키우는)중 일기

2024.10.16 구름에 낌


오늘 아침 일이다. 아니 방금 전에 치른 전쟁과 같은 일이다.

사실 이 전쟁은 내 머릿속과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일어났을 뿐일 지도 모른다.


각자가 가진 상황은 심플했지만,

나에겐 그렇지 못했다.

각기 다른 세 녀석을 키우다 보니 난 항시 동시에 세 가지 상황과 마주한다.


6시 50분부터 7시 반까지 아이들은 TV를 보고 간다.

아이들이 학교 가기 전에 긴장감이나 부담감을 조금 덜어주고 싶어서 허락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거다.


그리고 7시 반부터 학교 갈 준비를 한다.

여기서부터 탈이 나는 경우다.


첫째가 갑자기 미술작품 중에 하나를 프린트해가야 한다며, 학급 공지 내용을 나에게 카톡으로 전달했다. 그리고는 샤워하러 들어간다.


딱 드는 생각.

' 어떤 작품???'

순간 짜증이 올라왔다.

당일 아침에 얘기한 것도 짜증 나는데, 내가 되물어야 하는 등 일거리가 생기는 게 더 별로였다.


난 노트북을 켜고 프린터기를 켠다.


분주하기 시작했다.

둘째는 아침에 읽었던 신문 중에 한 기사를 나에게 이야기한다.


" 엄마, 엄마, 엄마엄마아~, 왜 중국이 비빔밥을 자기 네 거라 주장하시는지 아세요?"

평소에도 티키타카를 잘했었던지라, 이런 것들은 둘째에겐 일상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내가 대답할 여력이 없었다.


질문을 받음과 동시에, 막내가 티셔츠를 입다 말고 갑자기 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건조기에서 나온 티셔츠에 어제 묻은 김치국물 한 방물이 안 지워졌단다.)


"둘째야, 잠깐만~" 대답하고 셋째에게 잔소리가 들어간다.

둘째는 삐져서 방으로 들어간다.

평소라면 감정 읽기 등을 해줬을 텐데  그럴 시간이 없었다.

셋째와 기싸움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평소에 FM 같은 둘째, 혼자서 척척 잘하는 둘째가

8시 13분이 딱 되자마자

신발을 신고 "막내야, 학교 가자."라고 외친다.


티셔츠로 인해 울고 불고 해서 시간을 못 맞춘 막내가 또 운다.

둘째 형의 말이 압박으로 다가왔다고 느낀 듯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사실.)


둘째는 15분까지 기다리고 늦을 거 같으면 나 먼저 갈게.라고 말한다.

셋째가 갑자기 새로 사준 양말이 불편하다며 또 운다.


나는 미술작품이 뭔지 물어보고 프린트해 주는데,  프린트가 갑자기 먹통이 되고, 종이 트레이 설정이 잘못돼서 오류 뜨고, 이미지 사이즈가 안 맞아 다시 인쇄 설정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펑!

내 머릿속에 이성이 터진 소리


둘째에게 먼저 가라고 소리쳤다.

셋째에겐 "이래서 내가 너 양치 빨리하라고 한 거야. 니 비적 거리다가 형이 시간 되어 간다고 하면, 울고불고 난리 치니까!"

목청이 높아지니, 갑자기 따끔하게 목기침에 난다.


후다닥 막내의 가방, 겉옷을 현관 앞에 두고 빠르게 입고 갈 수 있게 준비한다.

그리고 창문을 열어 둘째에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이야기한다.(우리 집은 2층이다)


그 와중에도 멋내기용 안경을 찾아 쓰는 막내.

" 형 밑에서 기다리잖앗!! 빨리 나가라고오!!"


눈물에 안경에 발길이 도통 문밖까지 안 넘어간다.


분노 게이지가 꼭대기를 찍기 직전.

큰애가 클라이맥스를 장식한다.


" 엄마 이 종이 어디다가 버려요??"

프린트된 미술작품 테두리를 자른 종이조각을 들고 바로 코앞 쓰레기통 앞에서 저런 질문을 하는 첫째


"야!! 넌 종이 쪼가리를 들고 이걸 어디에 버리냐고 묻는 게... "목이 아파서 말문이 막혔다.

침 한번 삼키고는 그간 일들을 쏟아 뱉는다.


"다 먹은 플라스틱 음료통은 비닐봉지 버리는 곳에 넣어놓질 않나.. 모르겠으면 그냥 다 쓰레기통에 버려!!!!

왜 생각을 안 해. 생각을!!

언제까지 내가 알려줘야 하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온다.

'삐~~~'

귀에서 이명이 들리기 시작한다.



잘 커주는 것만으로도

잘 따라와 주는 것만으로도

별 탈없이 하루를 보내주는 것만으로도

항상 감사한다.


엄마이기전에 나 자신을 먼저 생각해 본다.

'힘들다.'


오롯이 내 입장만 생각하련다.

'힘들다.'


그리곤 생각한다.

'내가 애들을 잘못 가르치고 있나..'

'애들 습관을 잘못 잡아줬나..'

'.....'


감정은 온전히 나 자신을 마주하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엄마임을 마주한다.





최근 우울증으로 무기력과 싸우는 중이다.

갱년기 인가 싶기도 하다.

방법을 모르겠다.

운동하려고 노력하고, 글 쓰려고 노력하고,  책 읽으려고 노력하고, 좋아하는 영어공부하려고 노력하는데, 하나만 제대로 하기엔 나의 하루는 너무 짧다.

불면증까지 와서 더 그런가 싶다.

이럴 땐 나이 먹고 몸상태가 예전과 다르다는 점이 서글퍼진다.


이래서 나이를 먹으면 눈물이 많아지는 걸까.




오늘은 엄마도 힘들다는 걸 피력할 생각이다.

희생하는 엄마는 싫다.

그렇다고 방관하진 않겠다만, 적어도 엄마도 사람이라는 거는 알려줘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그래서 난 오늘 엄마가 아니라 나로서 힘들다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해볼 생각이다.

그리고 아침에 화 낸거 대해서 사과할 것이다.

아들이 요청한 작품은 반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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