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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만복 Jun 13. 2024

여러분 같은 서민들

하나

20대 후반에는 지금 다니는 직장이 아닌, 충남 당진에 있는 화력발전소에서 근무했었다. 첫 출근날, 인사담당자로부터 내가 배치될 팀의 팀원들을 소개 받았는데 상당히 특이한 인상을 가진 ‘창수’라는 사람이 있었다. 헐렁한 티셔츠에 화려한 금목걸이, 큰 키, 껄렁하고 불만 많아 보이는 표정, 시끄러울 정도로 큰 목소리, 한눈에 봐도 나랑은 결이 다른 사람이라는 걸 직감했다.      


창수형은 자전거 타는걸 좋아했다. 회사의 통근버스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포춘쿠키가 연상되는 라이더 복장을 입고 자전거로 30km를 달려 출근을 한다. 우리팀에 젊은 사람이 많지 않았던 터라, 창수형은 나에게 자전거 통근을 같이하자고 했다. 약간의 고민을 했지만, 체력에 자신 있었던 나는 자전거 통근을 같이 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10만원대 하이브리드 자전거로 통근을 시도했다. 30km정도의 거리를 하이브리드 자전거로 가보니 90분이 걸렸다. 자전거가 무겁고 잘 안나가서 새로운 로드자전거를 구매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수형꺼는 얼만지 물어보았다. 5백만원짜리란다. 그 정도 가격의 자전거를 구입 하기엔 부담스러워서 100만원짜리 로드자전거를 새로 구입하고, 같이 자전거 통근을 이어갔다.

    


창수형과 조금씩 가까워 지면서 가정사나 집안환경에 대한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창수: 우리 어머니는 골프장 운영하셔   

  

만복: 스크린 골프장이요? 예전에 스크린 골프장에서 알바 해봤었는데 그거 차릴려면 돈 많이 들겠던데요. 집 잘 사시나봐요.  

   

창수 : 아니 스크린 골프장 말고 골프 필드.     

 

만복 : ???     



창수형네 집안은 상상 이상으로 부자였다. 창수형은 당시 34살 나이에 본인 소유의 건물이 있었고, 본인 결혼식에는 ‘축의금은 정중히 사양합니다’를 시행했다. 전 여친에게는 이별 선물로 핑크색 벤츠차량을 선물했다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당진에 있는 유일한 핑크색 벤츠가 그 차량이었다. 그렇다고 겉으로 보기에 사치스러워 보이는 사람은 아니었다. 퇴근 후에 직원들이랑 치킨에 소맥을 마시는 소소한 일상을 좋아했고, 폰 게임과 자전거 타는걸 좋아했다. 그의 차량은 구형 카렌스 였다.


창수형은 팀원들 앞에서 “여러분 같은 서민들은 잘 모르겠지만” 이라는 말을 자주 썼다. 위트가 있고 말주변이 좋은 사람이었기에 듣는 사람 기분 나쁘지 않게, 유머스러운 분위기로 이런 말을 종종 했다. 발전소 근무 이후로 서민이 무엇인지, 어떤 사람이 서민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서민이 아닌 사람은 서민과 무엇이 다를까. 겉으로 봐서는 일상생활에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보통의 직장인과는 달리 창수형에게는 선택권이 있었다. 회사에 매여있지 않아도 되는 선택권. 창수형에게 회사는 보조수단 이었다. 가족들의 생계비는 월급과 무관하게 기존 자산과 타 수입으로 해결이 가능했다. 사를 그만두더라도 창수형의 부인과 세명의 자녀들의 생활환경에 아무런 영향이 없는 상태였다. 다시 말해, 가족들의 삶의 질을 해치지 않으면서 가족들과 같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의 양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다. 비싼 자전거는 부럽지 않았지만, 시간을 어떻게 쓸지에 대한 선택권이 있다는 것은 부러웠다.

     

서민계층에 있으면 내 시간을 나를 위해 쓰지 못하는 상황이 쉽게 발생한다. 취업준비할 당시에 돈이 없어서 휴대폰 요금이 2개월 밀렸었다. 통신요금을 포함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취업준비에 전력을 다해야 될 중요한 시기를 시급 6천원의 알바와 맞바꿔야 했다. 부모님도 힘들게 생활하시는 걸 알기에 도움받을 수도 없었다. 내 상황이 힘들다 보니 부유하지 않은 부모를 원망하는 지경에도 이르렀다. 불쾌한 경험이었다. 생계에 위협을 받는 불안한 마음으로 원치 않는 일을 해야되는 상황. 이런 상황에 다시는 노출되기 싫다. 그리고 힘든 환경을 주변인 탓으로 돌리는 나를 마주하기 싫다. 그래서 결론으로, 서민형 노동으로부터 서서히 벗어 나기로 결정했다. 국가에서 장려하는 서민형 방법들을 조합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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