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저녁 8시만 되면 마음이 급해진다. 딸의 성장호르몬 주사를 놓기 위해서다. 그런데 딸은 느긋하다. 잠자기 전에 책상정리를 하고 학습기를 켜고 공부를 시작한다.
딸이 9시 전에 자면 좋은데 내가 서두르지 않으면 10시는 금방이다. 속이 탄다.
딸은 성장호르몬 주사를 일주일에 6번 맞고 있다. 7살 때 딸의 키는 1%였다. 백 명 중 1등이었다. 그보다 작은 사람은 없었다는 뜻이다.
미숙아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호르몬의 문제도 없었다. 유전적 요인을 굳이 따지자면 아빠가 키가 작은 편이라는 것이었다.
남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두면 초등학교 생활 못한다면서 병적인 원인을 검사해 보라고 말했다. 대학병원에 예약하는데도 한참 걸렸다. 어릴 때 키는 학업성적보다 더 우위에 있었다.
성장호르몬자극검사를 하기 위해 입원했다. 다행히 남편이 연차를 내고 옆에서 잘 살폈다. 이상은 없는데 키가 너무 작아 '달리분류되지 않는 단신'으로 진단되었다.
담당의사 선생님께서도 키가 작은 편이었는데 키가 작은 것은 학교생활에서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작으면 무시당하고 자존감이 떨어진다고 했다.
비용이 어마 무시해서 관두려고 했는데 실비청구가 되어 일단 하게 되었다. 한 달에 주사약만 해도 60만 원씩 드는데 보험청구로 실제로는 한 달에 6만 원 들었다.
주사를 맞으면 160cm 이상은 큰다고 했는데 몇 년이 지나고 나서 의사 선생님께서 주사는 도울뿐이라고 말을 바꾸셨다. 운동과 식습관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거의 부작용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1년 뒤 키는 조금씩 컸는데 뼈 나이가 평균 나이보다 한 살 빨라졌다고 했다. 주사 처음 당시는 뼈 나이는 한 살 늦다고 했는데...
초3이 되었을 때 성조숙증 검사를 하고 또 주사를 맞으라고 권해서 못하겠다고 했다. 2주 뒤에 상담에서는 정상범위라서 성조숙증 주사는 안 맞아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이건 약 장사도 아니고 뭔가? 암튼 다행이다'하며 안도했다.
코로나 시기에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대부분의 환자는 성장호르몬 처방 환자들이었다. 코로나전염위험보다 키 작은 게 더 무서운 거였다.
의사선생님께서 일주일에 3번 이상 줄넘기 천 개 하고 단 것은 절대 먹지 마라고 했는데 딸은 지키지 않는다. 올해가 마지막 기회인 것처럼 말씀하셔서 조급해진다. 150cm 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12월 현재 145cm이고 백분위로 20퍼센트 정도 된다.
여전히 식사를 잘 안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불안하고 답답해서 딸이랑 부딪친다.
5년 이상 맞고 있는데 빨리 끝내고 싶은 것은 당사자가 아닌 엄마인 나. 이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한 것은 보험보상청구 후 담당직원의 전화였다. 정상범위미만이 아니면 더 지원 못하겠다고 통보했다. 키를 말해주니 정상범위라 더 이상 보상이 어렵다고 해서 이제 그만하겠다고 했다. 의사선생님께서 이런 저런 불안을 줘서 병원 가기도 싫었다. 여전히 문전성시겠지만...
나는 호르몬의 문제로 약도 먹고 애쓰고 있는데 딸의 호르몬의 문제가 아닌 의지의 문제가 더 크다.
이번 호르몬문제의 승자는 나!
애 닳는 것도 나!
주사약도 없는데 제발 일찍 자줬으면 좋겠다
성장 호르몬(growth hormone; 옛 용어 생장 호르몬)은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펩타이드 호르몬이다. 성장 호르몬은 인간의 몸 성장을 촉진하며 그 외의 물질대사 조절 기능도 지닌다. 자극호르몬과 비자극호르몬의 성질을 동시에 가지며, 시상하부 호르몬에 의해 분비가 조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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