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떡볶이도 맛있어요!
명랑함을 머금은 아이의 말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울 아빠는 지금까지 떡볶이에 뭔 짓을 한 거지? 떡볶이에 마늘이며 각종 채소 다 집어넣어 뭔 맛인지 모르겠어요.”
딸아이가 맞장구치며 “울 아빠도 그래. 유튜브 보고 아침햇살 음료를 넣고 떡볶이를 만드셨어. 처음에는 맛있긴 했는데 그 담에는 뭘 넣으셨는지 맛이 이상했어. 내가 레시피 보고 만든 게 더 나았어.” 하며 깔깔대고 웃었다.
그 말을 듣고 “아빠는 요리 솜씨가 좋은 편이지. 피자에 소금빵도 만들고 잘해.”하고 난생처음으로 남편 칭찬을 했다.
딸은 으스대며 “울 아빠는 따라쟁이야. 내가 쿠키, 소금빵 만드는 것 보고 소금빵, 피자 따라 만든 거야. 내가 더 잘해”하고 뻐기듯이 말했다.
아이들은 각자 아빠의 이야기를 소스를 찍어 먹듯 쉽게 말했다.
그러다가 한 아이가 “어떡해. 떡볶이 소스가 바지에 떨어졌어. 엄마한테 혼나겠다. 안 지워지면 집에 가서 분리수거통에 버려야겠어.”하고 말했다. 옆에 있는 물티슈로 닦는 것을 본 딸이 “뭐 어때? 난 하얀 바지야. 급식실에 카레 먹다 여기 두 군데 흘렸어.”하고 자랑하듯 노란 자국이 뚜렷이 드러난 바지를 자랑했다. 나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았다.
“oo인 우리 집 대장이야. 어쩌다 보니 oo이가 우리 집 대장이 되었어. 엄마, 아빠가 싸우다가 딸 눈치 보다가 이렇게 되어버렸네.”하고 푸념 섞인 소리를 했다.
“울 집은 엄마예요. 그다음이 저예요. 엄마, 아빠도 잘 싸워요. 모른척해요. 새벽에 싸우시더라고요. 그냥 자요. 말 안 한 지도 몇 달 되었어요.”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새침데기처럼 보이는 아이의 말에 나는 뜨끔했다. 아이들은 다 알고 있었다. 그저 모른 척 싸움이 가라앉기를 화해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화장실에 가서 클렌징폼을 가져와서 친구 아이의 바지에 거품을 떨어뜨려 줬다. 물티슈로 닦았더니 말끔하게 지워졌다. 분홍색 바지라 다행이었다.
딸의 바지는 자국이 선명한데 아이는 지울 생각도 없이 “난 그냥 입고 갈래. 수영장에 가는데 신경 쓸 일이 없어.” 하고 말했다.
‘딸아. 너는 엄마가 안 보이니. 나는 네 바지를 어떻게 할지 고민된다. 락스로 빨까? 베이킹소다로 씻을까? 입자마자 그렇게 만드냐?’ 하며 살짝 노려보았다.
명랑한 아이가 “만두도 먹어도 돼요?” 하며 만두를 하나 떡볶이 소스에 찍어 먹고 새침한 아이는 “음료수 더 주실 수 있어요?”하고 말했다.
아이들은 딸아이 방에 가서 크리스마스 분위기 나는 전등을 켜고 치즈볼에 팝콘을 챙겨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어지러워진 테이블을 보며 침착하게 치우기 시작했다. 깨끗한 것, 조심성이 필요한 것, 지저분한 것 순으로 싱크대로 옮겼다.
우리 집의 순위도 이렇게 정해진 것일까? 가장 만만한 것이 남편이 되어버렸다. 아빠가 되어버렸다. 회사 일이 우선이고 집에 와서는 혼자만의 세계로 빠지는 남편에게 잔소리로 쏘아붙여야 겨우 아빠 구실을 해주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순위가 밀려났다.
가족관계에서 서열이 필요한 것일까? 하지만 점점 큰소리 내고 대장 노릇을 하는 딸을 보니 뭔가 잘못된 것 같다.
나는 “00 해요.”하고 말하면 딸은 “응, 알았어.”하고 대꾸하니 기분이 상한다.
‘더 늦기 전에 바로 잡을 수 있을까? 집안의 질서를 잡아야지’하고 설거지를 했다.
공교롭게도 고무장갑 검지 부분이 찢어져서 조금씩 장갑 사이로 물이 들어왔다. 일단 설거지 끝내고 장갑부터 바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