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지인 Jun 04. 2024

진상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그대 안의 진상

갑자기 구체적으로 어떤 음식이 먹고 싶단 욕구에 사로잡히면, 그것은 혈당의 문제라고 하던데


아침에 눈을 뜨면 먹고 싶은 게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그래서 그런가 싶기도 합니다만,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알아’ 라며 건강문제는 애써 외면한 채, 도넛을 먹겠단 일념 하나로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납니다



이른 시간인 것 같아 검색해 보니, 도넛가게 오픈시간은 7시라고 네이버플레이스에 나와있으니,

술 사러 가는 주정뱅이마냥 잔뜩 신이 나서 도넛가게로 갑니다.


하지만 창가자리에서 여유롭게 커피&도넛을 즐기며, 뉴요커 흉내를 내려던 저의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분명히 네이버 플레이스에도, 가게문 앞에도 오픈시간은 7시라고 적혀 있었으나

알바생은 9시부터 오픈이라고 했고

이에 지금은 9시가 넘었다고 했더니

오픈준비로 9시 반에나 구매가 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주변을 떠돌며 시간을 때우다 9시 반에 맞춰왔으나, 오픈준비는 끝나지도 않았고 모든 테이블에 도넛트레이를 죄다 펼쳐놓은 바람에, 그 어느 자리에도 앉을 수가 없어, 어쩔수 없이 테이크 아웃해서

마치 센트럴파크에 앉아있는 느낌적인 느낌으로

아파트 단지 내 벤치에 앉아 도넛을 집어 들었는데,


종이봉투 안에 도넛을 담아주면서 냅킨 한 장 챙겨주지 않아, 맨손으로 도넛을 잡아 초코글레이즈가 손에 잔뜩 묻자,

순간 짜증이 확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스스로 그 짜증에 함몰되어

이 프랜차이즈는 도대체 알바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거야 서부터 시작해서

오픈준비는 오픈전에 해야지 말이야

단전에서 화가 치미는 것을 꾹 누르고

최대한 이성적인 척 영수증 리뷰에 지금 쓴 내용을 고대로 쓰려고 했으나

저에겐 또 그런 에너지는 없는지라

이렇게 브런치에다 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화내지 말고, 단거 먹어요



저에게는 정확히 내 안의 진상이 고개를 쳐드는 3번의 포인트가 있었으나

그냥 일반손님으로 남았습니다.


카페를 운영하다 보니 아는 만큼 보이게 되는,

남의 업장에서의 서비스가 기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은데

타인에게는 더 엄격하고 날카롭게 잣대를 들이대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나는 손님한테 절대 이렇게 안 하는데 말이야 하는 심보 말입니다.


그래서 도리어 그 어느 누구보다 진상이 될 가능성이 다분한 저인지라

항상 ’진상은 자신이 진상인 줄 모른다 ‘는 말을 맘에 새기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누구나 진상이 될 가능성을 안고 살아갑니다

누구나 내 안에 진상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게 어떤 계기로 인해 발현될 뿐입니다.


아이들이 한창 손이 많이 가는 영아 시절,

기껏 목욕을 시켜놓자마자, 바로 똥을 푸짐하게 싸버리는 순간,

‘우리 아가, 너무 시원하겠네’ 하는 나와

‘역시 인간은 태어나면서 악마로군’ 성악설을 수긍하는 나는 같은 사람입니다.


단지 내가 그 순간,

공복상태인가 아닌가 가

중요할 뿐입니다.


몸과 맘이 여유로워야

어떤 상황이든 유연한 대처가 가능합니다.


그래서 카페를 운영하면서도 항상 그런 정신적, 육체적 공복상태가 아니어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국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종이봉투에 쿠키를 한꺼번에 때려 넣으면

물론 편합니다.

하지만 하나하나 개별포장하고 쿠키박스에 넣어드리고, 선물포장이면 리본도 묶어드리면 내가 보기에도 너무나 이쁘고 뿌듯합니다.


더군다나 자기가 먹어보고 너무 맛있어서 주변분에게 선물로 드린다는 데 그 자체가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세상에 선물할게 천지삐까리인데 말이죠.


혹시라도 오픈전에 오픈준비를 마치지 못해 손님이 대기하는 상황이 되었다면

그건 손님의 시간을 홀대한 카페의 책임입니다.

그 카페에 가는 걸음걸음을 홀대한 카페의 책임입니다.


그럼에도 기분이 나빠서 돌아가시지 않으셨다면

커피를 한잔 내어드리면서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하다고 하면 됩니다.


그럴 땐 커피 한잔 3800원의 매출을 따지지 말고

커피 한잔의 원가를 생각하면 됩니다.


나는 비록 원가로 드린 거지만

오히려 손님은 3800원 혹은 그 이상의 가치로 기억할 것입니다.

도리어 본인이 감사하다고 하시면서 말입니다.




무슨 복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전에 57000원 카드결제를 하지 않고 그냥 손님을 보낸 적이 있었는데

그 사실 자체를 아예 모르고 있었지만,

한 달이 지나 먼저 카드결제가 안되었다는 사실을 먼저 알려주시고, 바로 입금을 해주신 것도

손님이셨습니다.


기껏 이곳까지 오셨는데 찾는 디저트가 없어서

제가 죄송해서 작은 디저트 서비스를 드리면

그냥 가는 손님보다 오히려 고마워서 남아있는 쿠키를 다 구입하시는 분들도 부지기수입니다.

제가 그냥 가시라고 해도 말입니다.


잔돈이 없어서 현금결제 하시는 분께 백 원 단위는 안 받고 드리면

끄끝네 몇백 원이라도 꼭 입금하시는 분들도

아니면 돈을 더해서 하나를 더 구입하시는 분들도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사이버세상에서는 온통 진상손님들 얘기만 가득합니다.

카페사장마다의 경험도 천차만별이고

진상손님도 많겠지만

저에게는 상전 같은 손님도 많습니다.


자신의 지인들에게

우리 카페에서의 경험을 공유하고

우리 카페의 디저트를 선물하고, 입소문내주는

그런 상전으로 모시고 싶은 분들 말입니다.




카페크기가 작다고 맘까지 작아져선 안됩니다

장사가 안 될수록 더더욱 인색하지 않아야 합니다.


일회용 포크, 포장봉투 하나에 인색함을 드러내고

서비스 하나에 인색함을 드러내고

손님들의 볼멘소리, 사소한 컴플레인에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인색하다면

스스로 손님(=그대) 안의 진상과의 만남을 자초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진상손님을 만날 확률도 높아지지만

두려운 건 사실 진상손님이 아닙니다.

아무 말 없이 다음부터는 절대로 그곳에 안 가는 그런 손님이 훨씬 더 많기 때문입니다.



다 나에게 돌아옵니다.

절대 남는 게 없는 장사가 아닙니다.

베풂과 여유도 나에게 돌아오고

반대로 인색함도 고대로 나에게 돌아옵니다.


나 또한 사장이자 손님입니다

오히려 카페에서만 사장이지 더 많은 곳에서 손님으로 위치합니다.


그런 맘으로 나 자신에게 잘해준다고 생각하고

손님에게 잘 대해드린다면

우리 카페엔 상전손님들만 오시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다. 그 사람의 과거 현재 미래, 그 사람의 일생이 오는 것이다 -‘방문객’ 정현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