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지인 Jun 18. 2024

오늘도 손해 좀 보았습니다

카페의 품격

때 이른 한여름 날씨에

거리에는 오가는 인적이 드뭅니다.


날씨 때문에 손님이 많지 않습니다만

사실 날씨 때문은 아닙니다.


태풍이 와도 잘 되는 날은 또 잘 됩니다.

결코 날씨 때문에 장사가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장사가 안 되는 날일 뿐입니다.

그걸 알면서도 또 날씨 탓을 해봅니다.



그렇게 여느 날과 다름없이 날씨 탓을 하던 어느 날,

곧 만삭을 앞둔 단골손님이 오셔서 육아휴직을 앞두고 마지막 출근일에 동료들에게 줄 스콘 25개를 주문하셨습니다. 머릿속 계산기가 저절로 작동됩니다.

2500*25=62500


계산을 하시면서 배달을 요청하셔서 저는 잠깐 주춤했습니다.

저는 1인카페라 배달을 하면 매장을 비워야 하기 때문에 좀처럼 배달을 하지 않습니다.

배달을 원하시면 배달앱 주문을 권장드립니다.


이미 결제는 완료한 상태입니다.

배달장소까지는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지만

배달비를 따로 받은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손님은 곧 출산을 앞둔 만삭의 임산부입니다


Q1.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할아버지 한분께서 카페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길을 가던 도중 배가 아파서 들어오신 것입니다.

화장실을 찾으십니다.


아니, 카페 화장실이 공중화장실은 아니잖아요.

솔직히 평소처럼 친절하게 화장실을 안내해 드릴 맘이 생기지 않습니다.


Q2.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해야 하는,

물어보면 안 되는 질문입니다.



문제는 머리와 가슴이 따로 노는

곤란하고 불편한 내 마음입니다.

솔직히 아무렇지 않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손해 본 듯한 기분이, 영 불편하고 찜찜합니다.


그런데 이런

아무렇지, 않지가, 않은 순간이 수없이 반복됩니다.

내공이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커피와 디저트보다

이런 순간들이 더 어렵게 느껴집니다.

수없이 반복되는 상황이지만 매번 어렵습니다

 

기꺼이가 쉽지 않은,

손해라고 생각하는 그 옹졸한 맘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습니다.




결과 1.


만삭의 임산부를 두 번 걸음 하게 하지 않고,

배달비를 따로 요구하지 않고,

그동안의 방문에 감사드리며

단골로서의 예우를 해 드린다고 생각하며

기분 좋게 배달을 해 드렸고

굳이 그러한 것을 1도 생색내지 않음으로써

우리 카페 고객서비스의 품격을 높인 것 같아

제 자신은 더 뿌듯해졌습니다.


아마도 출산 이후 한참 지나, 몇 계절이 더 흐른 후에야 카페에 오실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가끔씩 오래 보는 사이로 또 한 분을 얻었을 것이라 생각하며, 저는 그 행복감으로 오늘 또 기운차게 카페일을 이어나갑니다.



결과 2.


화장실을 이용하시고 후련한 상태로 다소 겸연쩍어하시는 할아버지께

조심히 들어가시라고 인사를 하며 보내드린 후

화장실을 들어간 저는

할아버지께서 변기물을

안내리고 나가신 것을 보고 말았습니다!

외마디 비명이 흘러나왔습니다.


변기청소도 청소지만,

이후에도 며칠 동안 PTSD처럼

변기 속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나이를 먹고,

분뇨조절에 장애를 겪기 마련입니다.

(분노조절이 아닌 것이 어딘가요)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 역시 집안에서 볼일을 보고 물을 내리지 않고 변기뚜껑을 닫아, 후에 화장실에 들어온 남편이 설마 그것이 내 것이라고는 절대 생각지 못하고,

‘우리 집에 도둑이 왔다 갔어!‘ 라며 경악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굳이 나이를 운운하지 않더라도, 길 가던 도중 뱃속에 폭풍이 몰아쳐서 식은땀을 흘리며 화장실을 찾아 헤매던 경험 또한 누구나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발견한 카페는 너무나 반가울 것입니다

그게 우리 카페일 수도 있으며

그렇게 카페의 손님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무상서비스

고객의 가치

고급스러운 고객응대는 굉장히 거창한 게 아닙니다.

자잘한 이해관계 앞에서 내가 먼저 밑지고 들어갈 수 있는 여유입니다.  


돈과 노력이 더 들더라도 작은 쿠키 하나 더 이쁘게 포장하고 리본을 묶어드리는 것이고 예쁜 디저트박스에 넣어드리며 그것을 받으시는 분의 기분까지 생각하는 것입니다.

손님으로부터 ‘그렇게 해서 남는 것도 없으시겠어요’ 란 말을 들을지언정 말입니다.



모든 서비스는 말 그대로 서비스여야 합니다.

가급적 조건을 붙이지 않고, 피치 못할 경우를 제외하고선 무상으로 제공되어야 합니다.

그 서비스 비용이 커피 한잔, 쿠키 하나의 가격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손님이 지불한 가격 그 이상의 재화와 서비스를 얻고 나오셨을 때

비로소 다시 재방문할 이유가 생기는 것입니다.  


사소한 요구에도 성심성의껏 잘 대접해 드려서

우리 카페에 들어오는 손님들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우리 카페를 높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점점 장사하기 녹록지 않은 세상 속에서 작은 가게들에게는 이것이 매우 힘들 수 있습니다.  

당장은 손해라고, 남는 게 없는 것 마냥 느껴질 테니까요.

하지만 남습니다. 손님들은 기억할 것입니다.

그런 가게는 분명 흔치 않으니까요.


수백만 원 마케팅비용 지출보다

이런 것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더 큰 힘을 발휘할 것입니다.


타 가게와 나의 가게를 구분 짓는 차별되는 요소가 되기도 하며,

폭염에 불경기에 휴가철에도 우리 카페에는 손님이 있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손해 봐도 괜찮아

그것도 습관이고, 훈련입니다.  


저도 아직 멀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늘 연습 중입니다.


카페에서도

삶 속에서도 말입니다.

이전 12화 #카페맛집 이 되는 비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