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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본질은 무엇일까? 1편

'문법은 당신의 머릿속에 산다'

by 정진

언어의 본질은 무엇일까? 언어에 대한 여러 질문을 하기 전 먼저 그 대상인 언어를 잘 정의하는 것이 전반적인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언어를 명확히 정의하기는 어렵다. 이를 반영하듯 다양한 학파와 학자가 언어에 대해 지금까지도 논쟁하고 있다. 그래도 최소한 언어가 가진 보편적, 핵심적인 특성은 존재한다. 이러한 특성을 어느 정도 파악하면 앞으로 제시될 언어 현상과 언어학적 접근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 규칙성과 무한성


언어는 인간이 가진 여러 인지체계 중 하나이다. 언어는 정신적으로 작동하며 언어 이외에도 시각, 청각, 운동 등의 다른 인지체계가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그런데 언어가 인간의 인지체계라면 동물이나 식물에겐 언어가 없다는 말일까? 일단은 그렇다.


인간 언어만의 핵심은 규칙성과 무한성이라 말 할 수 있다. 규칙성을 먼저 살펴보자. 사람들은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문법에 맞는 문장을 만들어내고 문법적, 비문법적 문장을 판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어 모국어 화자는 '나는 사과를 좋아해'라는 문장을 쉽게 만들어 낼 수 있고 '*나를 사과를 좋아한다'가 문법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문법성의 대비는 언어가 무작위적으로 작동하는게 아니라 일정한 규칙 아래에서 움직인다는 점을 보여준다. 당연히 한국어 뿐 아니라 영어, 일본어, 힌디어, 이로퀴아어 등 모든 종류의 모국어 화자는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 즉, 인간의 언어적 직관은 규칙성을 기반에 두고 있다.


무한성도 규칙성과 깊은 관계가 있다. 방금 인간 언어는 무작위가 아닌 나름의 질서, 규칙에 기반하여 작동한다고 했다. 그런데 동시에 이러한 언어의 규칙, 즉 문법은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던 새로운 조합을 가진 문장을 거의 무한히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무한성, 혹은 창조성(creativity)이다. 다음 예문을 보자.


조 바이든은 치즈라면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사줘서 정말 억지로 먹었다.


혹시 살면서 이 문장을 본 적이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내가 방금, 되도록 황당하게 지어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i)이 글을 쓰는 나는 이 문장을 쉽게 만들어 낼 수 있었고, ii) 예문을 읽는 독자는 이 문장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언어는 규칙을 통해 창조적 언어 사용과 이해를 허락한다.


언어의 무한성에 관련된 속성으로 재귀성(recursivity)을 빼놓을 수 없다. 재귀성을 간단하게 말하면 '다시 돌아오는 특성' 이라 말할 수 있다. 인간 언어의 문법은 무한히 반복되는 문장을 생성할 수 있는 규칙인 재귀적 규칙을 포함하며 '내가 철수를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희에게 그대로 말했다고는 안했다고도 말 하기는 어렵다지만..' 처럼 길어지는 문장은 그 인지적 부담으로 인해 적절하지는 않겠지만 그 원리상 문제 없이 생성 가능하다. 이런 규칙을 통해 인간은 이론상 무한한 길이의 문장을 생성할 수 있다. 이런 재귀성은 한국어는 물론 모든 자연 언어에서 관찰된다. 가령 영어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가능하다.


She likes John who is my little brother whose girlfriend is Jenny that...


다만 주의할 점은 여기서 '창조성'이라는 단어가 규칙이 새로운 표현을 허락한다는 다소 형식적인 의미로 쓰였다는 것이다. 이 글은 창조성이나 창의성에 대한 감각적, 문학적, 비유적 의미가 아닌 문법적 특성에 주목하고 있다. 이는 밑에서 동물의 언어에 대해 논의하는 부분과 중요하게 연결된다.


고래도 무한성을 띠는 문법을 공유할까?

2. 동물의 언어?


동물들은 나름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꿀벌은 꿀의 위치를 나타내기 위한 수단으로 춤을 사용한다. 꿀벌은 현존하지 않는 대상에 대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가령 '서쪽 1km 거리에 아카시아 꿀이 있어' 같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이들의 춤은 무작위적이지 않고 인간의 언어처럼 작은 단위를 조합해서, 또 동작과 그 정도를 잘 조절해서 꿀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인데 이정도면 인간의 언어와 충분히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언어학에서는 보통 꿀벌의 '언어'를 인간의 언어와 같은 것으로 보지 않는다. 비록 꿀벌의 춤이 어떤 정보를 체계적으로 전달할 수 있더라도 재귀성에 기반한 창조적 무한성을 보이지 않는다면 인간 언어의 핵심적 특질을 결여한 것이다. 이는 결코 작은 차이가 아니다. 인간이 언어를 통해 행성 단위의 대규모 협력, 세대를 넘어선 지식 전달 및 기록, 문학적 표현이 가능한 이유는 인간이 이전에 없던 표현을 생산해 낼 수 있고 이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래는 어떨까? 최근 미국 연구팀 CETI(Cetacean Translation Initiative)가 향유고래가 인간처럼 개별적 소리 단위인 코다를 조합해 커뮤니케이션에 사용한다고 분석했다. 이를 음소로 이해한다면 한국어에서 'ㄱ', 'ㅗ', 'ㅁ'은 각각 의미가 없으나 이를 잘 합치면 '곰'이 되는 식으로 하위의 단위를 조합해 의미를 만드는 특성이 인간 언어와 비슷하다. 하지만 이러한 특성은 역시 무한성으로 이어지는 문법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꿀벌의 춤과 그 정교성의 정도를 제외한다면 원리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또한 진화적으로 볼 때, (적어도 생성문법에서는) 인간조차 7-10만여년 전 이전엔 완전한 언어능력을 가지지 못했다고 본다는 점을 고려하면 진화 계통상 아주 오래전에 분리되었을 고래가 인간과 같은 인식 체계를 가지고 있을 것이란 가정은 다소 의심스럽다 (Berwick & Chomsky 2016). 물론 수렴진화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서로 다른 지점에서 서로 다른 종이 문법을 획득했을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증거가 부족하다.


무엇보다 강아지나 고양이, 고래나 꿀벌의 '언어'를 전제하는 것은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언어학자들이 인간의 언어가 인간의 본유적 속성, 능력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 우월주의적 시선에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저 언어가 타 동물과 다른 인지체계라는 것 뿐이다. 꿀벌이 날개를 가지고 향유고래가 거대한 덩치를 지니듯 언어의 유무를 그저 생물학적인 차이로 이해한다면 쉽게 납득할 수 있다. 촘스키(Noam Chomsky)는 이를 두고 인간 언어기관이 요구하는 첫 번째 조건이 바로 유전적 자질(genetic endowment)이라고 설명한다. 다시말해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려면 생물학적으로 인간이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물론 역사적으로 언어 능력에 기반한 인간 우월주의적 시선이 없었다곤 할 수 없으나 그게 언어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다. 일례로 '개족보'라고 하는 모욕은 언어의 유무와 상관없는 동물의 행동적 특징에 기반하고 있다. 무엇보다 인간만 언어를 가진다는 사실이 꼭 인간이 우월하다는 주장으로 이어질 논리적 이유는 없다. 우리는 개의 민감한 후각도, 고양이의 밝은 야간 시야도 가지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열등한 종이라고 말 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를 염두에 두면 일단 언어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언어는 인간의 보편적 인지 체계 중 하나이며 한국어, 영어, 뱅골어, 일본어 등의 개별 언어로 나타난다.
2. 인간 언어는 규칙성에 기반한 무한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언어의 창조적 사용을 가능하게 한다.


참고문헌


Berwick RC and Chomsky N (2016) Why Only us. Cambridge, MA: MIT Press.


Project CETI. (2024). Project CETI: A new approach to understanding cetaceans. https://www.projectceti.org/?gad_source=1&gclid=CjwKCAiAjp-7BhBZEiwAmh9rBWIo2z0oMldKhmW6Ma55OyZnzVdGLLPWaLBv1CMl6f_Z4zIZQCmx_hoC3a0QAvD_B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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