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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는 왜 배울까?

by 정진

우리나라에서 영어공부는 언제나 큰 이슈다. 학교에서 영어는 당연히 정규 과목이고 학창시절 영어학원 한 번 다니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 성인이 되어서도 토익이니 오픽, 비즈니스 회화 학원이나 유료 에듀테크 어플까지 영어는 우리 삶을 쉽게 떠나주지 않는다. 심지어 백화점이나 지역 행정복지센터 문화교실에서는 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영어 강좌가 열리기도 한다.


영어가 그렇게 중요할까? 답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영어가 재미있거나 업무상 꼭 필요한 사람의 경우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모든 사람이 안되는 영어에 고통받을 필요는 없다. 또한 한국에서 사회적으로 영어가 행사하는 영향력이 바람직한 것인지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영어는 여전히 유용하다. 여기에는 적어도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영어는 사용자가 가장 많은 언어이다. Ethnologue에 따르면 전세계 영어 사용자는 약 15억명으로 2위인 중국어 보통화보다 대략 4억명 더 많은 화자 수를 자랑한다. 물론 이 조사 결과는 제 2 언어 사용자도 포함한 것이기 때문에 영어 화자 15억명이 모두 원어민(native speaker)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떻게 보면 영어의 세계 공용어(lingua franca)적 성격을 보여주는 일면으로 영어를 구사할 수 있으면 영어 원어민은 물론 제3 언어 사용자와도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런 상황을 두고 Crystal (2003)은 "외국 도시에서 호텔이나 레스토랑에 가면, 직원들은 늘 영어를 알아들을 것이고, 식당엔 반드시 영어 메뉴가 있을 것이다 (Whenever you enter a hotel or restaurant in a foreign city, they will understand English, and there will be an English menu)" 라고 말했다.


사용자가 많다는 말은 영어로 작성된 자료의 양이 많다는 의미이다. W3Techs의 조사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인터넷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언어는 영어로 무려 전체의 49.3%를 차지했다. 2위가 6%를 차지하는 스페인어, 3위가 5.6%를 차지하는 독일어임을 감안하면 영어로 접근 가능한 자료의 양이 방대함을 알 수 있다. 언어의 엄청난 다양함을 고려하면 한국어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언어에 들지만 인터넷 사용량 기준으로 보면 0.8%를 차지할 뿐이다. 따라서 영어를 구사하고 이해할 수 있다면 다양한 사람과 자료,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이 확대된다. 물론 번역가의 번역을 보거나 번역기를 활용할 수 있겠지만 정말 중요한 자료도 번역이 되어 있지 않을 가능성이 있고 번역기는 오역의 가능성을 차치하고서라도 원문의 다의성을 특정한 번역으로 고정시킨다는 면에서 목표 언어를 직접 할 줄 아는 것과 비교할 수 없다.


다음은 영어가 외국어라는 사실에서 오는 이점이 있다.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그게 꼭 실용적이지 않더라도, 상당한 장점을 가진다. 독일의 시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는 "외국어를 모르는 자는 모국어에 대해서도 모른다(Wer fremde Sprachen nicht kennt, weiß nichts von seiner eigenen)"고 말한 바 있다. 내가 괴테의 의도를 다 알수야 없겠지만 이 말에는 상당히 동의한다.


언어는 어느정도 세계를 보는 특정한 관점을 반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어 '커피'가 지난 백여년간 한국어 내에서 점점 세분화되어 간 것을 생각해보자. 커피가 단순히 '커피'이던 시대의 한국어와 스페셜티 커피, 에스프레소 바리에이션, 베트남식 커피 등 카페 문화가 들어온 후 '카푸치노'나 '샤케라토', '아인슈패너' 등으로 세분화된 버전의 한국어는 커피에 대한 관점에 변화를 겪었을 것이다. 한 언어 내의 변화가 그렇다면 아예 외국어인 영어가 담고 있는 관점을 체험, 흡수할 수 있다면 그만큼 더 넓고 다양한 관점을 함양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호칭어나 존대, 존경 표현, 주소나 소속 표기 등에서 이것이 잘 드러난다. 한 예로 소속을 표기하는 방법을 생각해보자. 가령 누군가가 한국어로 '오성전자 DS부문 수석 마케터 김영한' 이라고 자신의 소속을 소개해 놓았다고 생각해보자. 이 소개를 영어로 바꾸려면 단순히 단어만 영어로 바꾸는게 아니라 배열 순서를 바꿔야 한다. 한국어는 큰 단위에서 가장 작은 단위인 개인, 즉 '오성전자' 에서 '김영한'으로 순서가 배열된다. 하지만 영어에서는 보통 개인의 이름으로 시작하는 소개를 적는다. 비록 이런 현상이 엄밀하게 '언어적'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영어를 잘 공부하면 이처럼 나와 다른, 그러나 상당히 많은 사람이 채택한 세계관을 체험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영어가 사회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여기서 중요하다는 말은 상당히 현실적인 의미이다. 영어는 일종의 면허처럼 많은 기회의 문을 열어주고 반대로 문턱이 되기도 한다. 영어는 언제나 학교에서 주요 과목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입사나 입학 시험에 빠지지 않는다. 또한 사내에서, 대학에서, 유튜브에서, 시민사회에서 정성적으로 배분되는 기회를 맡게 되는 하나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영어를 전공하거나 업무상 활용하지 않더라도 피할 수 없는 상대 중 하나가 영어인 샘이다. 그렇다면 그때마다 영어 시험, 특정한 요구를 해쳐나가기 위해 애쓰는 것 보다는 영어 자체를 잘 이해하고 익혀두어 필요한 상황에 쉽게 적용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이다. 영어를 잘 배워두면 각종 장애물을 잘 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영어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회에서 이를 다방면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참고문헌


What Are the Top 200 Most Spoken Languages? (2024). Ethnologue. http://www.ethnologue.com/guides/ethnologue200


David, C. (2003). English as a Global Language (2nd ed.). Cambridge University Press.


Usage Statistics of Content Languages for Websites. (2025, January). W3Techs. http://www.ethnologue.com/guides/ethnologue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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