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법은 당신의 머릿속에 산다''
혹시 앞선 글을 읽으면서 이런 의문이 들지는 않았는가? 언어에 이런 복잡하고 추상적인 체계가 정말 존재할까? 문장의 의미가 진리조건적이며, 음운이 아닌 소리를 사용할 수 없고, 문장이 위계적 구조에 지배를 받는다고? 이론을 몰라도 언어를 잘만 사용하는데? 정말 원리같은게 있기는 할까?
언어학적 원리의 존재를 체감하는데에는 정상적인 문장보다 불가능한 문장에서 발견되는 일관성이 더 직관적인 도움을 주곤 한다. 불가능한 사례를 살펴보면 언어에 일정한 이론적 원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사실 꽤 신기한 경험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언어능력을 대개 '암묵적으로' 가지고 있어서 특별한 계기가 없다면 이를 새삼스래 분석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언어를 이해하는 경험은 암묵적인 능력을 표면으로 끌어올려 다시 발견하고 인식하게 만드는 방식을 취한다.
이런 경험을 선사할 수 있는 좋은 사례중 하나가 부정극어(NPI, negative polarity item) 현상이다. 부정극어란 부정의 맥락에서만 사용될 수 있는 어휘요소를 말하며 한국어의 '전혀', '아무', 영어의 'any'등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다음 예시를 보라.
부정극어 예시
한국어
ㄱ. 이서는 전혀 밥을 먹지 않았다.
ㄴ. *이서는 전혀 밥을 먹었다.
ㄷ. 현우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ㄹ. *현우는 아무도 만났다.
영어
ㄱ. I don't have any work to do.
ㄴ. *I have any work to do.
별표(*)는 비문법적 문장을 표시함
흥미롭게도 양 언어 모두에서 부정극어는 부정적 술어 없이 작동할 수 없다. 이것은 언어가 일종의 연산을 통해 작동한다는 문법모형의 전제를 잘 보여준다. 만약 언어가 문법적 연산 없이 작동하며 그저 사용되는 빈도와 용법에 의해서만 지배받는다면 부정극어가 긍정의 맥락에서 사용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위 예시는 계통적으로 완벽히 독립된 한국어와 영어가 일관적으로 부정극어 현상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 부정극어는 알맞은 환경을 필요로 한다. 부정극어에 허가(License)를 해 줄 요소가 필요한데 이를 두고 부정극어 허가(NPI-Licensing)라고 부른다. 앞에서 다소 두루뭉술하게 부정극어는 '부정의 맥락'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다르게 말하면 부정극어에 허가를 내어줄 요소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위 예시로 돌아가 보면 '이서는 전혀 밥을 먹지 않았다'가 가능한 이유는 '않-' 부정어가 '전혀'에 자격을 부여했기 때문이며 '*이서는 전혀 밥을 먹었다'는 허가를 내어줄 요소가 없어 성립하지 못한다. 영어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I have any work to do'는 'not'등 부정극어 허가가 가능한 요소가 부재해 불가능하다.
사실 부정극어는 단순히 'not'이나 '못-'같은 개별 어휘요소에 의해서만 허가를 받는 것은 아니다. 다음과 예시와 같은 구조가 가능하기 때문에 단순히 부정극어를 허가하는 어휘가 있다는 설명은 충분하지 않다.
부정극어 환경
ㄱ. Did you see any mistakes? (의문문)
ㄴ. If you see any mistakes, let me know. (조건문)
ㄷ. She is faster than any other runner. (비교급)
부정극어 현상을 더 일반화하기 위해서는 집합적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 첫 예문 'Did you see any mistakes?'를 대표로 살펴보자. 이 문장은 집합적 관점에서 볼 때 부정극어 'any'를 허용할 수 있는 특정한 환경을 가지고 있다. 다음 예시를 살펴보자. 특히 'mistake'에 집중하라.
하향 단조적 환경
ㄱ. I didn't find mistakes. (실수를 발견하지 못했어)
ㄴ. I didn't find any mistakes. (어떤 실수도 발견하지 못했어)
ㄷ. I didn't find any musical mistakes. (어떠한 음악적 실수도 발견하지 못했어)
여기서 예문 ㄷ의 의미는 화자가 가능한 여러 실수 중 음악적인 실수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이때 '음악적인 실수'는 논리적으로 예문 ㄱ의 '실수'보다 범위가 작다. '실수'는 음악적인 실수는 물론 사회적인 실수, 도덕적인 실수, 계산 실수 등을 모두 포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문 ㄱ을 말하는 순간 예문 ㄷ과 같은 다른 진술이 함의된다. 따라서 이 환경은 하향 단조적, 단조 감소적이며 부정극어 'any'가 인허된다.
단조성이라는 어려운 개념을 여기서 이해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다만 집합적 관계가 언어가 작동하는 방식을 제한한다는 사실을 관찰하는게 중요하다. 실수와 수학적 실수, 수학적 실수와 기하학적 실수의 하향적 포함관계가 부정극어 'any'를 사용 가능하게 하는 요소라는 점을 포착하면 충분하다. 이처럼 일상적으로 쉽게 사용하는 언어가 수학적, 체계적 원리를 따른다는 것이 흥미롭지 않은가?
한국어도 마찬가지이다. 이번엔 반대로 가능한 환경을 보자. '이서는 전혀 밥을 먹지 않았다'는 'Did you see any mistakes'와 마찬가지로 단조 감소적 환경에 놓여있다. 따라서 '전혀'라는 부정극어가 사용 가능하다.
ㄱ. 이서는 먹지 않았다.
ㄴ. 이서는 전혀 음식을 먹지 않았다.
ㄷ. 이서는 전혀 밥을 먹지 않았다.
ㄹ. *이서는 전혀 밥을 먹었다.
이서가 ㄱ처럼 '먹지 않았다'면 '음식' 또한 먹지 않은 것이며, 음식의 부분집합인 '밥' 또한 마찬가지로 먹지 않았다. 즉, 문장 ㄱ의 진리값은 대상이 되는 집합이 작아지더라도 변하지 않는다. (다만 여기서는 식사 일체를 말하는 의미인 '밥'을 논외로 하자) 그렇기 때문에 '전혀'가 자연스럽게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부정극어 현상은 우리가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언어에 문법적, 체계적, 또 심지어는 수학적 원리가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언어는 본질적으로 창의적이기 때문에 사용 불가능한 사례가 있음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따라서 언어를 지배하는 규칙이나 원리의 존재를 의심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러 사례와 증거를 통해 한없이 자유로워 보이는 언어도 지배적 규칙과 연산의 결과물임을 알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언어가 제한적이며 좁은 한계에 갇혀있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언어는 일정한 운용 원리가 가하는 제한 아래에서도 무한성을 보여주는 놀라운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언어의 운용 원리는 앞서 말했듯 상당부분 무의식적이다. 이 무의식적인 지식이 단조성의 사례처럼 일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언어를 탐구함에 있어 아주 흥미로운 지점이다. 이처럼 언어 현상 뒤에서는 일정한 원리가 발견된다. 이런 원리는 특히 직관적으로 처리할 수 없는 문장을 통해 체감할 수 있다. 한번쯤 모두가 쉽게 사용하지만 '왠지' 이해되지 않고 조합할 수 없는 문장을 찾아보고 스스로 분석해보면 어떨까?
참고문헌
강범모. (2018). 의미론: 국어, 세계, 마음 (1st ed., Vol.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