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 유신디
더블린에 도착해 3일 정도 적응 기간을 가졌다. 첫날은 집에서 짐을 정리하고 둘째날은 근처 마트를 들러보고 셋째날에는 더블린 시내 투어를 하고 나니 어느덧 월요일이 찾아왔다. 떨리는 마음을 이끌고 학원에 도착해 레벨 테스트를 받았다.
내가 배정받은 A1 반은 기존에 수업을 듣던 학생과 나처럼 새롭게 학원에 들어온 학생의 비율이 적당히 반반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나도 새로운 무리에 섞여 들어갈 수 있었는데 재미있는 점은 새로 들어온 학생들 중 내가 유일한 한국인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브라질리인었다. 거기에 나와 모두 8살 이상 차이가 났기 때문에 당시 만20살이었던 나는 그들의 귀여움을 한몸에 받았다.
우리는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학원에서 연계하는 투어를 가거나 평소 가고 싶었던 여행지로 놀러 다녔다. 때론 학원이 끝나고 여유 시간이 생기면 카페로 가서 수다를 떨기도 했는데 그들은 나에게 포르투갈어로 된 단어들을 가르쳐 주곤 했다. 가끔은 내가 브라질 욕을 가르쳐 주고 내가 다시 그들에게 배운 욕을 사용하는 것을 보며 아주 재미있어하곤 했다.
그렇게 정신없는 몇 개월이 흘러 우리는 각자의 방식대로 더블린 생활에 익숙해졌다. 시간이 흐르니 자연스레 누군가는 일을 갖게 되고 또 누군가는 레벨의 변동이 생기며 예전처럼 모두 함께 놀러다닐 수 없게 되었다. 나 또한 그 시기에 짧은 방학기간을 마치고 학원에 돌아오자 새로운 반으로 배정을 받게 되었는데 이때 이후로 그 브라질 친구들과는 한번도 같은 반에 배정을 받지 못하였다.
함께 수업을 들었던 브라질 친구들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새롭게 배정된 반의 12명의 학생중 5명이 한국인이었다. 같은 나라 사람이 5명이나 있으니 강남역에 있는 어학원에 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분명 한국은 아닌데 외국도 아닌 이느낌.
나 홀로 한국인이었던 반에서는 모르는 문장이나 단어가 생길 때 영어를 써가며 선생님이나 친구에게 물어보았는데 더블린에 있는 강남 어학원에 다니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옆자리 한국 청년들에게 ‘이게 한국어로 뭐더라?’라고 묻거나 심지어 쪽지시험을 볼 때 서로 슬쩍 답을 알려주기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 대화가 너무 잘 통하다 보니 학원이 끝나고도 그들과 놀러 다니기 바빴다. 결국 나는 어느새 한국어만 주야장천 쓰고 있었다.
물론 내가 애초에 영어가 잘 되어있는 상태로 더블린에 갔다면 더 많은 현지인 혹은 외국인들과 깊은 관계를 만들고 어울려 다녔겠지만 어림도 없는 영어 실력과 공부에 대한 나태함 덕분에 더블린 살이 초반, 원대한 소망이었던 글로벌 라이프는 자연스럽게 망길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고 보면 함께 어울려 지내던 브라질 친구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 당시 우리 모두 A1레벨 이었음에도 다 같이 놀때마다 그 무리의 유일한 한국인이 나를 배려해 브라질인 끼리 대화를 할 때도 모두 영어를 써주었다. 이 얼마나 고마운 배려란 말인가! 외국인 사이에 혼자 한국인이었던 당시에는 몰랐지만 내가 다수가 되어보니 이것이 엄청난 배려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금도 어쩌다 다수의 한국인과 소수의 외국인 그룹으로 모임을 가질때면 나는 그 친구들이 생각난다.
최근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 합격을 전달받았다. 곧바로 더블린에 살고 있는 그 브라질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다. 더블린으로 돌아가면 꼭 다시 만나자는 이야기가 오갔다. 내가 그들과 헤어진지도 벌써 4년이다. 친구들은 영어 많이 늘었겠지? 변화없는, 어쩌면 퇴보 했을 지도 모를 나의 영어 실력이 걱정되긴 하지만 다시 만나면 그때 챙겨주고 배려해 줘서 고마웠다고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