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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umi 여이진 유신디 Oct 13. 2023

유럽에서 영어학원에 다니면 어떨까?

학원 / imumi

운 좋게도 워홀비자를 얻어 필수는 아니었지만 어학원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나는

3개월짜리 과정을 등록해서 부푼 마음을 안고 학원에 갔다.


하지만 그 당시 나의 영어실력으로 배정된 반은 바로 '비기너 반'

비기너반은 제일 낮은 반으로 아주 기초적인 단계부터 배우는 'Baby' 수준의 반이었다.


처음에는 대략 6-7명으로 시작한 우리 반은 점점 학생수가 늘기 시작했고 15명의 학생들 중 나를 제외한 14명은 모두 브라질리언 친구들로 채워졌다.

그중에서 초반부터 나와 쭉 함께했던 친구들을 몇 명 소개하자면,


1.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우리는 베스트프렌드라며 'tamos juntos'(we are together/다마죠또!) 를 외치던 '썰지오'

2. 맨날 둘이 붙어 다니며 바베큐와 다이시스(더블린 외국인들에게 유명한 클럽)를 외쳐대던 30대 단짝 아저씨들, '파울로'와 '엔쥴루스'

3. 나와 같은 나이임에도 벌써 결혼을 해서 남편과 함께 아일랜드로 온 '브랜다' 

4. 브라질에서는 변호사를 했다는데 여기선 왠지 항상 놀림받는 브랜다의 단짝, '헤이즐리'


가 있었다.

당시 교실수가 부족해서 놀랍게도 교회건물에서 수업을 해야만했다

우리는 친구가 되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비기너 반은 서로 대화를 이끌어나가기엔 아주 커다란 끈기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우리 사이가 좋지 않았냐고?

그건 아니다.


한 번은 한국인친구들과 학원을 마치고 '테스코'라는 마트로 향하는 길에 언제나처럼 1+1으로 붙어있는 파울로와 엔쥴루스를 발견했다.

그들은 나를 발견하곤 반갑게 인사했고 나보고 테스코에 가냐며 묻고는 여느 때처럼 자기들은 한잔하러 간다며 유유히 사라졌다.


뒷날 수업시간에 만나자 그들은 포르투칼어로 반친구들에게 무슨 말을 하더니

"우~주미~~~ 테스코~~"라는 말을 하며..

언젠가부터 내 이름 에는 테스코라는 수식어가 붙어버렸다.


이처럼 비기너반인 우리가 할 수 있는 대화는 짧은 단어들의 조합이 다였다. 처음에는 다들 노력했지만 어느새 쉬는 시간 교실에선 항상 포르투갈어가 들리기 시작했고, 급기야 반친구들이 함께 있는 단체채팅방에서까지 포르투갈어를 쓰기 시작했다. (그렇다 반친구들이라고 해봤자 나 빼고 다 브라질리언 친구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영어학원에 등록했으니 어느 정도 영어공부는 해야 된다는 양심이 있었는지

하루는 파울로가 포르투갈어 좀 그만 쓰라며 단톡방에 문자를 보냈다.

이들의 포르투갈어에 살짝 현타 아닌 현타를 느낀 나도 '어디 너네도 한번 느껴보라'는 심정으로 한국말로 타자를 치며 파울로의 말에 동의했다.

포르투갈어 좀 그만 써!

그다음 날 수업시간에 갑자기 파울로가 나를 부르더니 대뜸 종이를 줬다. 종이에는 또박또박 눌러쓴 한글로 '좋은 아침'이라는 문장이 적혀있었다. 혼자 번역기를 돌려 보고 적었는지 'Right?'으로 추정되는 말이 '알았지?'로 적혀있었다. 처음치고 예쁘게 잘 쓰인 글씨체에 감명받아서 칭찬을 해 줬다.




학원에서 예정했던 3개월이 거의 끝나갈 무렵
더블린에 도착한 지도 3개월이 다돼 가는데 일자리를 못 구했다는 것에 위기의식을 느낀 나는 잡인터뷰(알바면접)를 다니다가 결국 한식당의 파트타임 잡을 얻게 되었고,

하필이면 근무시간이 수업시간과 겹치는 바람에
고작 일주일을 남겨놓고 더 이상 수업에 나갈 수 없게 되었다.

한국에서 '외국인 친구들이 생기면 줘야지!!' 하며 사온 기념품들을 반친구들에게 줘야겠다 생각하고 일하러 가는 길에 잠시 들려 선물을 나눠줬다. 감동받은 친구들은 하나같이 기뻐하며 이번주에 브라질리언바베큐 파티를 할 거니 꼭 오라며 초대를 해줬다.

그들이 수업시간마다

"우~~바베뀨~비어~~"

를 외쳐대며 자부심을 보이던 브라질리언 바베큐는 도대체 어떤 맛일까 궁금하던 나는 룸메이트 S와 함께 그 주 주말에 과자와 음료수를 사들고 파티에 놀러 갔다.

여기서 파티라고 하면,
절대 우리가 미드 속에서 보던 화려한 홈파티를 상상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모두 이곳에서 돈 없는 외국인일 뿐이니까.

학생 중 한 명 그중 무시무시한 인상을 가졌던 엔쥴루스가 살던 집의 뒷마당에서 열린 그 파티에는 마땅한 식탁과 의자도 없어서 협탁 같아 보이는 가구를 식탁대신 사용하여야 했다.

하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먹은 브라질리언 바베큐는 푸짐하고 맛있었다.
친구들은 나에게 고기와 함께 밥과 마늘빵, 그리고 흰색가루를 주었다. 고기는 밀가루와 빵가루 같은 것을 섞은 이 흰색가루에 찍어 먹어야 한단다. 밥에는 토마토, 양파 피망과 함께 아주 매운 고추를 섞어먹어야 했는데 이 밥이 정말 맛있었다.

학원에서 예정했던 3개월이 거의 끝나갈 무렵
더블린에 도착한 지도 3개월이 다돼 가는데 일자리를 못 구했다는 것에 위기의식을 느낀 나는 잡인터뷰(알바면접)를 다니다가 결국 한식당의 파트타임 잡을 얻게 되었고,

하필이면 근무시간이 수업시간과 겹치는 바람에
고작 일주일을 남겨놓고 더 이상 수업에 나갈 수 없게 되었다.

한국에서 '외국인 친구들이 생기면 줘야지!!' 하며 사온 기념품들을 반친구들에게 줘야겠다 생각하고 일하러 가는 길에 잠시 들려 선물을 나눠줬다. 감동받은 친구들은 하나같이 기뻐하며 이번주에 브라질리언바베큐 파티를 할 거니 꼭 오라며 초대를 해줬다.

그들이 수업시간마다

"우~~바베뀨~비어~~"

를 외쳐대며 자부심을 보이던 브라질리언 바베큐는 도대체 어떤 맛일까 궁금하던 나는 룸메이트 S와 함께 그 주 주말에 과자와 음료수를 사들고 파티에 놀러 갔다.

여기서 파티라고 하면,
절대 우리가 미드 속에서 보던 화려한 홈파티를 상상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모두 이곳에서 돈 없는 외국인일 뿐이니까.

학생 중 한 명 그중 무시무시한 인상을 가졌던 엔쥴루스가 살던 집의 뒷마당에서 열린 그 파티에는 마땅한 식탁과 의자도 없어서 협탁 같아 보이는 가구를 식탁대신 사용하여야 했다.

하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먹은 브라질리언 바베큐는 푸짐하고 맛있었다.
친구들은 나에게 고기와 함께 밥과 마늘빵, 그리고 흰색가루를 주었다. 고기는 밀가루와 빵가루 같은 것을 섞은 이 흰색가루에 찍어 먹어야 한단다. 밥에는 토마토, 양파 피망과 함께 아주 매운 고추를 섞어먹어야 했는데 이 밥이 정말 맛있었다.

브라질리언 바베큐!


또한 Brazilian sweets라고 아주 맛있는 초콜릿도 손수 만들어 왔었다.
갈색초콜릿은 Brigradeiro, 흰색은 Beijinho인데 코코넛이 박혀있어 고소하고 맛있었다.


브라질리언 초콜릿






내가 밥을 먹고 있는데 브랜다가 다가왔다.
그녀는 나와 동갑인 23살이었지만 일찍 결혼을 해서 그런지 친구 같다기보다 성숙하고 어른스러운 언니 같았다.
우리는 평소에 말을 많이 한편은 아니었지만, 첫날부터 함께 수업을 들어온 사이였다.


사실 나는 브랜다가 나와 그렇게 친해지고 싶어 하진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 첫날에 동갑인 그녀와 친해지고 싶어서 선뜻 건넨 샌드위치를 괜찮다며 단칼에 사양했기 때문이다.


보통 새 학기에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 주머니 속에 마이쮸를 몇 개씩 준비해 가는 한국인에게 이것은 마치 거절의 의미와 같았다.하지만 그날 브랜다가 갑자기  "I’m happy you came here"이라는 말을 건넸고 다소 무뚝뚝하다고 생각했던 그녀의 입에서 나온 예상치 못한 말에 나는 적잖은 감동을 받았다.


지금은 그날 브랜다가 샌드위치를 거절했던 의미가 정말 단순히 샌드위치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안다.
주는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서 받아주는 한국과는 달리 그들은 정말 원하지 않을 때 굳이 yes라고 말하지 않는 문화를 가졌으니까 말이다.


한국사람들과 학원에 대해서 얘기를 나눌 때 우리 반의 14명이 모두 브라질리언이며 나만이 유일한 한국인이라는 소리를 하면 모두가 반을 옮기라며 영어 배우러 와서 웬 포르투갈어만 듣게 생겼다며 걱정 섞인 말들을 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이 말도 많고 시끄러운, 그렇지만 말은 안 통하는 우리 반 친구들과 함께해서 정말 좋았다.


초상권을 보호한 바베큐파티 사진




아일랜드로 돌아온 이후 한국에서 꾸준히 영어를 사용하며 외국인친구들과 어울려왔기 때문에
더 이상 나는 그 시절 비기너반의 내가 아니다.
아마 아일랜드로 새 삶을 살기 위해 떠나왔던 그들의 영어실력도 그 시절 우리가 함께했을 때와는 달리 많이 성장했을 것이다.


우리가 만약 다시 만난 다면 더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아마도 힘들겠지만,


그 시절의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너희들과 함께해서 정말 재밌었고 밝은 에너지를 가진 너희들에게 나 또한 좋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고, 고마웠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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