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시절 내내 입에 달고 살았다. 서울 서부에서 경기 남부까지 통학하기 힘들었고, 자취에 로망도 가득했다. 하지만 결국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완전히 혼자는 아니지만 어쩌다 자취를 시작했다. 그것도 '아일랜드'라는 낯선 나라에서.
첫 번째 집
은 Dublin 9 지역의 한 주택이었다. 아일랜드에서의 첫 3개월 동안 현지인의 보호 하에 적응하는 기간을 가지기 위해 홈스테이를 했다. 모든 것이 낯설었던 첫날, 홈맘은 나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셨다. WELCOME!
나는 2층에서 머물게 되었다. 방에 발을 디디자마자 웃음이 났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분홍색으로 커튼과 이불이 있었다. 창문으로 아일랜드 거리도 구경할 수 있었다.
직전에 지냈던 세부에서는 3명이서 방을 쓰다 보니 혼자만의 시간이 부족했는데,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침대에 앉아 멍하니 밖을 보기도 하고, 영화를 보고, 숙제도 했다.
점점 친구들이 생기고 아르바이트도 하니 방에 머무는 시간이 줄었다. 하지만 어느새 익숙해진 또 다른 '나의 방'이 집처럼 포근했다. 이 집을 떠나던 날 괜스레 울컥하더라. 건강하게 잘 지내라고, 힘들 때 언제든 찾아오라는 할머니의 말도 내 아일랜드 생활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침구를 가지런히 정리하고, 첫 번째 집을 떠났다.
두 번째 집
홈스테이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아예 새로운 집을 구해야 했다. 아일랜드에서 집 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여러 집을 보러 다녔다. 집주인이 이상하거나 약속을 갑자기 파투내거나 집 상태가 별로인 곳들도 있었다. 발품을 판 끝에 더블린 시내 중심에 있는 중국인 가족이 사는 괜찮은 집을 얻을 수 있었다.
아일랜드의 집세가 꽤 비쌌기에 방을 혼자 쓰기는 어려웠다. 룸메이트가 생겼다. 낯선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게 꽤 불편하고 화장실이 하나여서 다소 불안했다. 하지만 크게 불편하지 않게 지낼 수 있었다. 룸메이트와 하우스메이트, 집주인 모두 생활패턴이 완전히 달랐다. 화장실이나 부엌을 쓰기 위해 기다린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처음 만난 룸메이트와는 어색한 사이였다. 곧 떠날 분이었기에 그런지 한국 돌아갈 준비 하느라 바쁘셨다. 룸메이트가 바뀌고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친해진 룸메이트와는 함께 명절도 보냈다. 같이 추석 음식도 만들고 소맥을 마셨다. 완벽하지 않은 엉망진창인 요리였지만, 그저 그 순간이 행복했다.
세 번째 집
다시 외곽에서 살게 되었다. 작은 플랫이었지만, 매우 조용하고 평화로운 동네였다. 하지만 집은 오히려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같이 사는 하우스메이트가 전부 놀기 좋아해서 그랬다. 거의 매일이 파티였고, 나도 친구들을 불러서 놀 수 있었다.
'스티치'라는 귀엽고 애교 많은 리트리버 강아지가 놀러 온 적도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방식으로도, 그리고 우리끼리도 공동생활을 즐겁게 보냈다.
밖에 돌아다니는 걸 더 좋아하는 나는 아일랜드에서도 집보다는 밖에서 더 많은 생활을 했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만큼 집에 대한 추억이 많지는 않다. 게다가 룸메이트나 하우스메이트들과도 엄청 각별하게 지낸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국의 내 방과는 다른 곳에서 지내는 새로운 경험이 재밌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누릴 수 없는여유로움과 아늑함이 더블린에는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