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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umi 여이진 유신디 Oct 13. 2023

학원에서 공부만 하나요?

학원 / 여이진

아일랜드에 도착한 지 사흘째. 오랜 비행으로 인해 무거워진 몸이 아직 풀리지 않았지만, 바로 학원에 가야 했다. 졸린 눈을 비비며 홈맘이 챙겨주신 시리얼을 아침으로 먹고 하우스메이트와 함께 집을 나섰다. 아직 가는 길을 몰랐기에 매우 막막했는데, 다행히 하우스메이트가 나와 같은 학원을 다녔다. 터키에서 온 C는 더블린에 머문 지 두 달 째라고 했다. 여기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더블린이 어떤 곳인지 도란도란 얘기하다 보니 어느새 학원에 도착했다.


이따 집에서 보자, 인사하자마자 키가 큰 서양인 선생님들이 날 반겼다. 세부에서 3개월이나 외국인과 하루종일 있었으면서, 또 다른 억양을 가진 선생님들의 말이 알아듣기 힘들었다. 그래도 "영어 잘하네~" 라며 격려해 준 선생님들께 참 고마웠다.

교실이 매주 달라졌다

여러 개의 레벨과 여러 개의 수업. 정신은 하나도 없었고 강의실이 어딘지 찾는 것도 힘들었다. 게다가 동양인은 거의 없고 유럽 사람, 남미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새삼 유럽에 와있는 걸 깨닫는다. 안 그래도 낯 가리는 성격인데, 호기심 어린 눈, 혹은 저 잔뜩 겁에 질려있는 동양애는 뭐지라는 눈빛을 보내는 같은 반 친구들에 더더욱 기죽어 있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사교적인 친구들 덕분에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같이 먹고 놀러 가고 마시며 한데 어우러졌다. 영화도 보고 내 로망이었던 홈파티도 갔다.

영화관 간 날 / 홈파티한 날


가장 재밌었던 건 각 나라 음식을 먹는 것이었다. 가져와서 나눠주기도 하고, 직접 식당에 가기도 했다. 터키와 멕시코 친구를 따라 터키 칠면조 케밥을 먹고 멕시코 타코를 먹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불닭볶음면과 비빔면을 나눠준 적이 있다. '비빔면도 맵다'는 친구와 '불닭볶음면 하나도 안 매운데?' 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웃음이 났다. 한식당에서 먹은 비빔밥과 불고기는 단연 인기 만점이었다.

케밥과 타코


수업의 자유로움도 좋았다. 선생님의 생일에는 다 같이 음식을 사 와서 초를 꽂고 축하노래를 불러주었다. 생일의 주인공인 선생님보다 더 신난 친구들이 귀여웠다. 미리 날을 정해 야외수업을 나간 날도 있었다. 각자 싸 온 음식을 나눠 먹고 부족한 영어로 열심히 게임 규칙을 설명하며 마음껏 웃고 떠들었다.

생일파티 / 야외수업





그렇게 친구들과 신나게 놀다 보니 어느새 8개월의 시간이 흘러 학원 마지막날이 되었다. 졸업장을 받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이제 정말 떠날 때가 되었다는 느낌이었다. 낯섦이 가득한 아일랜드 생활의 시작을 그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었기에, 나는 아일랜드를 떠나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었다. 학원에서 꼭 공부만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서로가 넓혀준 서로의 세상이 좋은 기억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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