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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umi 여이진 유신디 Oct 13. 2023

나의 첫 워킹홀리데이

아르바이트 / imumi

아일랜드에 간다면 달콤한 냄새가 나는 도넛가게나 아이스크림등을 파는 디저트가게에서 아이리쉬 동료들과 함께 일을 해보는 것이 나의 로망이었다.

그렇지만 식당에서 주문하나 제대로 못하는 내 영어실력으로는 그저 꿈만 같은 일이었을 뿐이다.

들고 간 전재산이 바닥을 보이자 나는 이제까지 도넛집이나 아이스크림집에나 돌리던 CV(이력서)를 가망 없다고 판단, 재빨리 노선을 바꿔서 현실적인 한식당이나 아시안레스토랑에 이력서를 돌리기 시작했다.



[1] 나의 첫 번째 트라이얼

  트라이얼이란 한국으로 치자면 알바수습기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기간에는 보통 시급의 70%나 혹은 그보다 더 적은 돈을 받으며 일을 하고 그 기간이 지난 뒤에 정식으로 알바를 시작 할 수 있다.

내가 처음으로 갔던 트라이얼은 한식, 중식, 일식을 다 함께 팔던 아시안 레스토랑이었는데 시티센터 근처에 있던 곳으로 중국인 사장이 운영하고 있었다.


그곳에선 주방에서 일할 키친포터를 구하고 있었는데, 나는 키친포터가 뭔지도 모르고

' 키친포터? 주방보조인가 그럼 그냥 뭐 계란이나 굽거나 김밥 같은 거나 말겠지'

 하며 당차게 트라이얼을 갔다.

다행히 그곳에는 한국인 직원이 한 분 계셨는데 그분이 나에게 이것저것 할 일을 지시해 주셨다.

그 당시 어린 나를 보며 굉장히 친절하게 이것저것 가르쳐주던 그 언니는..

말끝마다 비속어를 곁들이셨다.


어차피 같이 일하는 중국인들이나 다른 외국인 손님들은 모르니 이렇게 욕이라도 해야 화가 풀린다며 당근하나 썰면서 쌍욕, 김밥하나 말면서 쌍욕...

일하면서 쌓이는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었나 보다

하지만 그분은 나에게만은 정말 따뜻하신 분이었고 친절하게 내게 할 일들을 지시해 주셨다.

그렇지만 나는 3시간으로 알고 갔던 트라이얼을 4시간 동안 하면서 중국인 사장에게 돈 한 푼도 받지 못했고

4시간 내내 영어가 아닌 중국어와 한국어를 들으며 접시만 닦는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첫 번째 트라이얼을 마쳤고, 나는 결국 한식당으로 면접을 보러가게 되었다.


다 찢어진 신발과 낡은 운동화를 보며...빨리 일을 구해야하는데  


[2] 나의 첫 아르바이트는, 내가 처음으로 갔던 더블린 한식당에서


 이곳에서 일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일하게 된 곳은 더블린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던 한식당이었고, 의도치 않게 이곳에서 공짜로 먹은 음식들이 참 많았다.

아일랜드에 도착한 둘째 날 유학원사장님께서 나와 S, 그리고 곧 코크로 갈 예정인 학생을 데리고 더블린 시내를 돌며 구경시켜 주셨다.

우리는 더블린의 랜드마크인 스파이어첨탑부터 남쪽에 있는 더블린 2, 그리고 위험지역이라는 썸머힐까지 차로 둘러보고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이곳이 내가 더블린에서 처음으로 간 식당이다.

생각보다 커다란 건물에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1층엔 약간 어두운 분위기의 바와 노래방기계가 있었다.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올라가니 커다란 식당에 검은색와이셔츠를 입은 직원 한 명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거기서 먹은 짬뽕은 한국에서 먹은 웬만한 맛없는 중국집 짬뽕보다 맛있어서 후루룩 한 그릇을 기분 좋게 끝냈다.


그날 먹은 짬뽕


그 후로도 삼일절에 열린 한인행사에 참가한 뒤 공짜로 이 식당에서 제공해 주는 저녁을 먹기도 했고,

한국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Korean meet up에 참가하면서 가게에서 제공하는 공짜 치킨과 감자튀김 또한 맛있게 뱃속으로 집어넣으며 자연스럽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더블린의 한식당은 바로 이곳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자주 가던 단골식당에서 일하는 건 솔직히 쫌 꺼려지는 일이다.

알바를 하다 보며 좋아하던 식당이 꼴도 보기 싫은 곳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던 다른 한식당에 알바면접을 가게 되었고

인상 더러운 가게사장은 당장 이틀 뒤에 트라이얼에 나오라 말했다.


유튜브에서 '워킹홀리데이 영어', '식당 아르바이트 영어' 따위를 검색하며 준비하고 있던 나에게 예상치 못한 문자가 왔다.


띵동 -


'내일로 예정되어 있던 트라이얼이 취소되었습니다

 -XX레스토랑 '

당장 내일이 트라이얼인데 일방적인 통보에 잠시 할 말을 잃은 나는 재차 되묻는 답장을 보냈다.

'내일 트라이얼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뭐 이런 예의 없는 사람이 다 있지?

아무런 전후설명도 없이 그렇게 트라이얼을 취소당하고 나는 급하게 다시 더블린정보단톡방을 들여다봤다.


'OO한식당에서 아침 10시부터 근무하실 분 구합니다.'

나는 잽싸게 연락을 해서 다시 면접을 잡았다.

더블린첫날에도, 3.1절, 성패트릭데이

그리고 내 생일날까지...

자주 갔던 식당에 면접을 보러 가게 되니 기분이 이상했다. 3시쯤에 가니 항상 붐비던 식당이 텅 비어있었고, 커다란 식당에 손님 없이 조용한 것을 보니 익숙했던 공간이 더 낯설게 느껴졌다.


2층 레스토랑으로 올라갔더니 자주 보던 종업원이 서 있었고 나는 그녀에게 인사했다.

" 안녕하세요! 점심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왔는데요.."

" 아 그러세요? 잠시만요 "

그녀는 잠시 후 나를 1층으로 내려보냈다.

나는 공짜 치킨을 먹던 그 테이블에 앉아 면접을 보게 되었다.


" 일을 하시게 되면 여기 1층에서 일하게 되실 거고요. 평일 5일, 하루 4시간씩 점심시간 동안만 근무하실 거예요 "

" 아.. 혹시 레스토랑에서 풀타임으로는 근무가 불가능한가요? 제가 워킹홀리데이 비자라서 좀 길게 하고 싶은데.. "

" 음 레스토랑은 아무래도 어느 정도 영어가 가능해야 해서요. 점심시간에는 레스토랑도 혼자 근무해야 해서 비기너반이시면 아마 힘드실 거예요 "

" 아.. "


설명에 의하면 총 4시간이란 짧은 근무시간 동안 내가 손님들을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2시간이었고

그 외에는 음식을 준비하거나 뒷청소를 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내가 원했던,

외국인 손님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영어를 하고 싶어서 첫 번째 트라이얼 후  다시 면접을 보러 다닌 상황이었기 때문에 선뜻 일을 하겠단 말은 나오지 않았다. 고민하는 나를 보며 그들은 말했다.


" 일단 여기서 일하시면서 손님응대도 하고 영어실력도 꾸준히 늘리시다 보면 나중에 레스토랑에서도 근무하실 수 있으실 거예요! "


그렇게 해서 내가 처음으로 얻은 일은

한식당 1층에서 점심으로 비빔밥을 파는 일이었다.

거의 직장인 단골손님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일은 서브웨이처럼 손님들이 원하는 재료에 맞춰 비빔밥을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영어를 못하는 나에겐 이보다 나은 선택지가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게 나는 비록 워홀비자를 가졌음에도 이례적으로 풀타임워커가 아닌 아르바이트생으로 5개월을 보냈다.

내가 그 긴 시간 동안 투잡을 뛰지 않았던 이유는, 처음 가게 직원과 면접을 볼 당시 열심히 일하고 영어실력도 늘리면 2층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올라가 풀타임으로 일할 수 있을 거란 말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이 이야기는 당시 사장님은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였지만,

당시 없는 일도 만들어할 만큼 성실히 일하던 나를 좋게 본 사장님과 레스토랑 매니저친구 덕분에 나는

결국 2층 레스토랑으로 올라가 저녁에는 웨이트리스를, 점심에는 1층에서 여전히 점심장사를 하다가

나중엔 완전히 레스토랑에서만 풀타임으로 일을 하게 되었고 아일랜드에 간지 250일이 지나고 나서야 처음으로 주급이 아닌 월급을 받게 되었다.




[3] 우당탕탕 레스토랑 알바


'띵동-,띵똥-,띵똥-'

한국도 아닌데, 한식당이라고 여기에는 식탁마다 종업원을 부르는 버튼이 부착되어 있었다.

' 아 그만 좀 눌러 내가 한 사람이지 두 사람이니?, 바쁘고 손 없는 거 안 보여? '


" 저기요-!! 여기 한병 좀 더 주세요~~!! 꺄하하하 "

땡그랑-!!

" 저기 숟가락도 새로 좀 갖다 주세요~! 하하하 "


불금마다 반값인 술을 먹으러 몰려드는 한국 사람들로 가득 찬 레스토랑 안을 보고 있자면,


'하.. 제발 그만 와주라..' 


외국에서 일한다고, 여유롭게 메뉴판 들고 다니면서

 'can i take your order?'(주문하시겠어요?)

이런 상상은 금물이다.

여기는 한식당이니까

술을 주문하는 사람이 있으면 1층인 바까지 내려가서 술을 가지고 다시 2층으로 올라와야 한다.

점심 먹는데 손님 오면 숟가락 놓고 주문받으러 가야 한다.

넓기는 어찌나 넓고 바쁜지 걷는 시간보다 뛸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그 덕에 먹는 양만 늘어서 점심시간마다 2명이 3인분을 4명이 6인분을 먹으며 우리는 튼튼해져 갔다.

물살밖에 없던 내 팔뚝에 뚝배기를 들며 어느새 근육이 생긴 것이다.

마르고 여리던 친구의 팔뚝에도 단단한 근육들이 생겼다. 가스버너를 사용하는 탓에 식칼을 들고 부탄가스를 깨기도 했다. 스스로 ' 나 좀 되게 강한 사람이 된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소 힘든 환경에 트라이얼 기간 중 도망가는 사람들도 많이 보았고 하루는 약에 취한 아이리쉬들을 보기도 하며 그렇게 내가 상상하던 로망과는 다른 워킹홀리데이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가장 좋아했던, 친구들과 함께하던 점심시간

[4] 그래도 후회는 없다.


  이곳에서 일하면서 한 두 번 트라이얼을 하다가 도망가는 사람들도 많이 보았

손님들에게 좋지 않은 평들을 간간히 들을 때도 있었지만, 내가 아일랜드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 바로 이곳이다.

또한 이곳에서 일하며 지금도 끊임없이 연락하고 시간을 보내는 소중한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서 일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서 버스를 타고 약 한 시간가량 걸려 도착한 곳에 제일 먼저 들어가 문을 열고 모든 불을 켜고, 준비를 하고

손님들을 맞고,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고

가끔은 12시가 넘는 시간에 집에 돌아오며 버스에서 곯아떨어지기도 했지만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불만과 웃음과 그 모든 것이 나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가장 많이 느낀 것은

부모님에 대한 존경심이었다.

하루에 9시간, 일주일에 5번을 레스토랑에서 일하며 발에 잡힌 물집을 보며

아빠의 발에는 이보다 더한 흉터들이 있음을 깨닫고

몇 개월이 아닌 몇십 년을 쉬지 않고 일해오신 부모님의 대단함을

이때 가장 절실하게 깨달은 것 같다.

이곳에서는 나에게 용돈을 주는 아빠도,

저녁을 차려주는 엄마도 없어서

커다란 울타리가 없었지만, 나름 독립적인 어른이 된 것만 같은 느낌에 기분이 좋기도 하며

나를 항상 커다랗게 지켜주셨던 부모님에게 무한한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에겐 한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게 그리 멋지게 들리진 않을 수 있어도,

나는 어느 먼 나라의 수도에서, 한국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그곳의 한식당에서

한국의 음식을 만들고 대접한다는 것이 내가 했던 일 중 꽤 멋진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틀림없는 것은 나를 가장 많이 성장시켜 준 곳이 바로 이곳이라는 것이다.


직원이 아닌 손님으로 갔던 마지막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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