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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umi 여이진 유신디 Oct 13. 2023

외국 한식당에서 일한다는 건

아르바이트 / 여이진

아일랜드 생활을 시작한 지 두 달 정도 되었을 때부터 일자리를 구하러 다녔다. 좀 더 풍족한 생활을 위해서였다. 우리나라의 알바몬, 알바천국 같은 시스템이 없었기에, 내가 쓴 CV(curriculum vitae, 이력서)를 출력해서 직접 가게에 주러 다녔다. 20살이 되면서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해봤지만, 당연하게도 이력서를 직접 내러 다닌 적은 없었다. 가게에 들어가기 전 무슨 말을 할지 수도 없이 연습했다. 쭈뼛쭈뼛 가게에 들어가서 'Excuse me'를 외친 뒤, 구인 공고를 보고 들어왔고 잘 부탁한다며 내 CV를 내밀었다. 대부분 환하게 나를 맞이하며 내 CV를 받아줬다.


그렇게 기다리길 몇 주. 정작 연락 오는 곳은 없었다. 이왕이면 현지 가게에서 외국인들과 일하고 싶었던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남은 기간도 점점 줄어들고, 더 이상의 생활비를 부모님께 손 벌리고 싶지 않아 결국 가장 후순위로 미뤘던 한식당으로 CV를 제출했다. 역시나, 곧바로 연락을 받았다.


아일랜드에서는 정식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기 전에 '트라이얼'이라는 과정을 거친다. 일종의 수습 기간인데, 이를 거친 후 채용 여부를 결정한다. 두 곳의 트라이얼을 거쳐 드디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내가 일하던 곳의 업무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되어 있다. 키친, 바, 홀이다. 키친에서는 요리와 설거지를, 바에서는 술 제조를, 홀에서는 음식 서빙을 했다. 나는 홀에서 일했다. 일은 매우 힘들었다. 더블린에서 가장 큰 규모인 한식당이고, 특히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은 아일랜드에서도 불금과 불토이기에 많은 손님이 몰렸다. 술과 안주로 가득한 테이블을 보면 한숨이 나왔고, 취해서 진상 부리는 손님도 꽤 많았다. 절대 걸을 수도 없었다. 바빠서 계속 뛰어다녔다. 생맥주와 뚝배기는 정말 무거웠다. 처음엔 들기도 어려워서 낑낑거렸지만, 점차 단련되어서 팔 힘도 세졌다. 바쁘고 힘든 만큼 울고 싶은 적도 많았다. 


처음 받은 팁과 주급


그래도 나를 버티게 하는 것들이 있었다. 급여와 복지와 사람. 매주 사장님 방으로 내려가 봉투에 담긴 주급을 받고 팁 문화가 있는 나라라 소소하게 팁을 받기도 했다. 한편 사장님과 키친 직원분들이 그리운 한식을 마음껏 요리해 주셨다. 내가 더블린에서 두부김치, 칼국수, 냉면, 골뱅이 소면 등을 먹을 줄 누가 알았겠나. 이와 어울리는 소맥도 마음껏 마셨다. 일하면서 빵부터 만두까지 군것질도 엄청나게 했다. 덕분에 더블린에 있을 때 인생 최고 몸무게를 찍었다.


아일랜드에서 먹은 두부김치와 냉면


일하면서 많은 추억도 쌓았다. 내 생일 때 머핀에 큰 촛불을 꽂아준 것도, 따로 나를 불러내 축하 노래를 불러준 것도 모두 정말 고마웠다. 내가 일했을 당시 할로윈을 보냈는데, 소품을 활용해서 가게에 장식하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회식 때면 가게에 있는 노래방 기계를 쓸 수 있었다. 회식이 있는 날 밤새 열심히 부른 적도 있다.


어쩌다 보니 아일랜드에서 지내는 기간의 절반을 아르바이트하며 지냈다. 손님으로도 친구들과 자주 온 곳이기도 했다. 친해진 직원 중 일부는 지금까지도 연락하며 종종 만난다. 외국 한식당에서 일한다는 건, 생각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 돈 버는 일은 쉬운 거 하나 없지만, 그래도 외로운 타지에서 버틸 수 있었던 건 서로 의지하며 즐겁게 보낸 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정말 재미없는 더블린 생활을 보내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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