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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걱정마 비밀을 지켜줄께

그림 : Dottie Kim 글 : Mama Lee

by kimleekim

비밀을 지키는 기관은 어디일까?

‘말하면 안 된다’는 두뇌의 기억일까 혹은 비밀을 듣게 되는 귀일까 혹은 비밀을 풀어 헤치게 될 입술 혹은 눈빛 혹은 동의와 공감의 바디 랭귀지 일까?

혼자 품기에는 너무 크고, 누군가와 나누려면 두렵거나 부끄러운 일들을 비밀이라 한다.

비밀은 특별히 지정된 그룹에만 통하는 언어다.
언어가 달라 소통하지 못하는 것처럼 비밀은 알고 있는 이들 사이에서만 소통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비밀을 지켜야 해. 이건 너와 나의 비밀이야"라는 맹세가 강요된다.
특정 그룹에 언어로 봉인된 비밀 위에 결계를 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마치 말이 통하지 는 외국에 여행을 가는 것과 비슷하다.
제대로 된 문장이 아니라도 떠듬떠듬 한 두 단어 만으로 원하는 장소에 가고, 음식을 먹고, 사진을 찍고, 쇼핑을 할 수 있다.
눈치 빠른 이들은 주변 정황과 상대의 표정을 읽어서 50% 정도는 해석해 낸다.
더욱 스마트한 이들은 인터넷 서칭으로 정보를 수집하여 추론하고, ChatGPT를 사용해서 비밀의 언어를 해석한다.
100%는 아니더라도 80~90% 이상은 알아내기 때문에 비밀 언어의 무장은 쉽사리 해제된다.

비밀 언어는 해석되기 쉽고, 결계를 푸는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기 때문에 비밀은 더더욱 지켜지기 어렵다.

또한 비밀의 무게에 대한 인식의 차이 혹은 단순한 판단 오류로 비밀은 울타리를 벗어난다.
"이건 심각한 내용은 아니니까"
"(미루어 짐작하며) 아. 너도 벌써 아는구나. 그래 그렇게 된 거야"
그래서 비밀을 가두려는 대상은 "이건 너와 나의 비밀이야"라는 맹세를 거듭 되풀이한다.

여기에 비밀을 지키자는 바디 랭귀지가 덧붙여진다.

주먹을 쥔 손에 검지 손가락을 펴서, 입술에 대고 "쉿! 하는 소리를 내면서 "비밀이야" 하고 말하거나, 두 손바닥을 나팔처럼 모아서 상대에 귀에 대고 비밀을 말하기도 한다.

비밀을 지키는 것이 입술일까 귀일까?

언어로 몸짓으로 잠그고 누르는 비밀 그러나 곧 펼쳐질 비밀이 걱정이라면 약속의 상징인 반지를 나누듯 비밀 엄수 의식은 어떨까.
장식 없는 정갈한 링을 준비해서, 비밀을 1차로 접수하는 귓바퀴에 구멍을 뚫고 비밀을 장착한다.

비밀링을 착용했다면 "나는 비밀을 지키고 있으니 다가오지 마시요."라고 해석하고 거리를 두는 거다.
비밀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표식을 하고 거리를 두고 외부 접촉을 없애는 거다.

그러면 당부하지 않아도 안심할 수 있을 거다.
사람들은 몇 개의 비밀링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나 혹은 둘?

"비밀을 지켜줄게 하지만 지금은 여유가 없네. 내 비밀링은 딱 두 개뿐이거든.
비밀을 나누려면 조금 기다려. 그리고 비밀링의 유효 기간은 3개월이야.
더 많이 혹은 더 길게 비밀을 지켜야 하면 다른 사람을 찾아보렴.

걱정 마. 비밀을 지켜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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