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선수들이 출발대에 올랐을 때, 스타터의 "Take your marks!" 준비구령은 언제 들어도 마음을 간질인다. 곧 물속으로 날아들 선수들의 설렘과 긴장된 마음이 그 중저음 목소리에 녹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설까.
삼십여 년 전, 국민학교 운동회는 동네의 잔칫날이었다.
온 동네 어르신들이 운동장 구령대 쪽에 마련된 자리로 삼삼오오 모여 음식과 정을 나누던 때.
일하시는 엄마를 대신해 할머니가 응원을 오신 게 여간 못마땅했던 나는 철부지 중에서도 킹 오브 철부지였다.
달리기 일등을 해서 운동회에 참관하지 못한 엄마가 아쉬워하도록 만들겠다는 밴댕이 소갈딱지도 비웃고 갈 하찮은 복수를 꿈꿨다.
그렇게 출발선 앞에 서자 선생님의 준비구령에 가슴이 벌렁거리기 시작했다.
"탕"
총성소리보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려온다. 힘껏 달린다. 내 앞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내 새끼 잘한다아아아아!!!"
바람처럼 구령대 옆을 지나고 있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귀에 꽂힌다.
'엄마다.'
왜인지 나는 다 제쳐두고 멈춰 서서 군중 속에서 엄마 얼굴을 찾기 시작했다. 잘 달리다 갑자기 멈춰 선 나를 보고 손뼉 치며 웃는 어르신들의 모습만 보일 뿐. 엄마의 얼굴은 모래사장에서 진주 찾기보다 어려웠다. 머쓱한 마음이 들어 다시 뛰긴 했지만 결과는 불 보듯 뻔하게 꼴찌였다.
그날 밤, 퇴근해 오신 엄마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으며, 나는 총이라도 맞은 것처럼 구멍 난 가슴에 서러움이 흘러 넘쳤다. 달리기 꼴찌를 해서 그랬을까, 들려왔던 익숙한 목소리가 엄마가 아니라 할머니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였을까. 철없던 10살의 나는 어리숙했지만 한가지는 분명히 알았다.
누군가 나를 믿고 지켜봐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 내가 기대고 싶었던 '엄마'라는 이름 만큼이나, 할머니의 목소리 또한 나를 움직이게 했던 응원의 힘이었음을.
수영장 출발대 위로 올라선 선수들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관중석에서 들려오는 함성, 신뢰로 가득한 코치의 눈빛,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응원이
출발대를 잡고 있는 그들의 손끝에, 출발대를 밀어 당장이라도 튀어나 갈 듯한 발끝에 닿고 있을지 모른다.
출발선에 선 선수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물속을 헤집으며 앞으로 나갈때 누군가는 반드시 보고있을거라고. 그 시선과 마음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레이스가 끝나고 돌아봤을 때 알게 될 거라고.
당신은 지금 어느 출발선에 서 있는가.
출발 직전의 떨림과 설렘을 가득 안은 당신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Take your marks!"
사진출처 : by HeungSoon on pixabay
+
수영을 하면서 삶의 깊이와 깨달음의 물결이 내 안을 차고 넘치게 흘러갔습니다.
[수영장 가는 날] 브런치북의 연재는 7화로 마칩니다.
저의 이야기에 시간을 내어주신 것으로 큰 응원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