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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깡미 Nov 19. 2024

한 달에 한번 그날이 오면

대자연의 날에 수영할 수 있나요?

"날을 콕 지정해 드릴 테니 그때 오시면 안 될까요?"

"... 안됩니다."


이 월례행사 손님은 주최 측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언제고 갑자기 방문을 해댄다. 그마저도 방문주기가 한번 틀어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이제 오는지 저제 오는지 알게 뭐람.


수영강습 있는 날에 손님이 와 계시면 '오늘 운동은 그냥 좀 쉬지'라고 하는 자아 1과, 수영장 락스물 냄새에 마음의 평안이라도 얻고 싶은 자아 2의 내적 씨름이 벌어진다.

항간에 탐폰이나 생리컵을 쓰면 수영장에 들어가도 괜찮다고들 하던데. 약간의 운동은 통증을 줄이는데 도움도 고 기분도 나아진다고 하니까 시도나 한번 해볼까. 이곳저곳 사용 후기들을 기웃거려 본다.


탐폰을 써볼까. 일전에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았던 괴로웠던 경험으로 탐폰은 일찌감치 리스트 탈락. 호기심이 생기는건 바로 이 녀석이다. 생리컵.


구매비용은 비싼 편이에요.

그러네, 실리콘 컵이 하나에 삼-사만 원?

그렇지만 8시간-12시간마다 내용물을 비우고 세척 후 다시 장착하는 식으로 재사용이 가능해요.

오호 친환경적, 반영구적이군. 그래, 어떻게 사용하는 건데?

C 접기, 펀치다운 접기, S자접기, 7자접기 방법이 있어요.

으. 으응? 접는다고? 


네이밍 자체가 '컵'이길래 접어서 쓰는 건 줄은 꿈에도 몰랐지. 색종이도 아닌데 유튜브를 보면서 접는 연습까지 해야 한다니. 김영만 아저씨도 울고 가시겠다 야. 꼬집듯이 잡고 당겨 빼라는 말은 또 뭐람. 실리콘 덩어리와 밀당이나 하게 생겼다. 귀찮은 건 딱 질색인데, 너도 탈락이다.


그러고 보니 수영 강습비용을 결제했던 카드내역들이 바람처럼 스치며 순식간에 요약이 된다. 나는 그동안 '여성할인'이라는 이름으로 수영장을 이용할 수 없는 생리기간에 해당하는 이용료 10%를 감면받아 왔던 것.

응? 이거 수영장 오지 말란 거였네. 물질 한번 더 해보겠다고 분투하는 내 자아와 10% 할인금액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에 피식 웃음이 나고 만다.



29회 부산 국제영화제 상영작 <첨벙>


"저는 장점이 하나 있습니다. 육아 휴직 없이 끝까지 일할 수 있고요. 생리휴가도 필요 없습니다. 폐경이 제 장점입니다."


전직 수영선수 출신이던 주인공이 결혼과 출산 앞에서 본인을 잃어가다 수영에 대한 꿈을 다시 찾는 이야기로 그려진 영화 <첨벙>. 수영강사를 뽑는 면접장에서 주인공이 외친 몇 마디가 나를 몇 번이고 다시 그 장면으로 데리고 간다. 


결국 이 모든 고민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한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수영장 물속에서 평안을 찾고 싶은 자아도, 여자의 몸으로 살아가는 나 자신도 모두 내가 사랑해야 할 나의 일부니까.








*사진출처 : 부산국제영화제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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