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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리 돌리도

by 깡미 Mar 16. 2025

 무슨 일이든 한번 시작하기까지가 오래 걸릴 뿐이지, 시동이 걸렸다 하면 가늘고 길더라도 끝을 찍어야 하산하는 고집근성. 강씨 DNA는 삶의 어느 때고 툭 튀어나와 나를 밀어붙인다.


 물론 채찍질만 하는 쪽은 아니다.

-이봐 강씨 그만하면 됐어. 됐다구.

적절한 당근으로 셀프위로를 하다가도 그 근성이 하염없이 피곤해질 때가 있다.


 이를테면 나는 '꿈은 이루어진다'는 뜬 구름 위의 말보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쪽이다. 그것은 글쓰기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꺾이지 않고 그냥 뻔뻔하게 쓰는 것뿐이다. 한 줄도 써지지 않을 때도 있지만 일단 자리에 앉아 무작정 키보드 위를 달릴 준비를 한다.


그동안 변변한 자리도 없이 식탁의 한켠에서 글을 써왔는데, 이제는 식탁마저 없다. 있었는데 없어졌다. 그것도 갑자기.


최근에 이사를 하게 되면서 남편이 갑자기 당근마켓에 내놓은 것이, 한평 남짓한 내 공간이 사라져 버린 이유다. 식탁을 보러 오겠다는 구매희망자가 있어 집 밖으로 내놓았건만 연달아 두 명에게서 취소통보를 받았단다. 이제 어쩔 거야 여보. 다시 들여와.


주방 한가운데 멀뚱히 남겨진 자리를 보면서 이상한 상실감을 느꼈다.

그 위에서 나는 글을 썼고, 책을 읽었고, 가끔씩 아이들의 숙제를 봐주었다. 밤늦도록, 때로는 새벽 일찍 문장을 고치고 생각을 펼칠 수 있는 곳이었다.


이젠 글이 아니라 글을 쓸 자리부터 찾아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오늘은 아이 책상, 내일은 소파, 모레는 어디로 갈까. 중요한 건 '공간'이 아니라 '쓰겠다는 마음'이겠지만.


이제는 주문해놓은 놓을 자리를 손꼽아 기다린다.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 글을 쓰고 생각을 정리하는 공간이 다시 돌아온다는 설렘.


그러면 언제든 다시, 새로운 자리에서 시작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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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 40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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