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있어서 대상을 어떤 상징으로 대체하는 데는 경험적 한계가 있다. 어른의 좋은 점은 같은 대상을 어떤 것으로든 상징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상징의 봇물은 경험이다.
사소함은 의식 외의 것들이다. 몹쓸 게으름 마저 괜찮을 수 있고 남극성(南極星)의 수노인(壽老人)도 썩 신성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다. 그 부드런 때에 이색적인 상징들이 나의 문을 두드리지만 순간 현타가 오면서 그 귀한 손님들은 어디론가 숨어버린다.
경험은 상징의 봇물이기도 하지만 이성(理性)과의 연대 역시 끈끈한 관계로, 나는 사소한 순간만큼은 이성을 거부하는 연습을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도 어른이니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