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의 역사 (8-2)
1980년대 재즈 리바이벌
이전 글에서 1980년대 전후 재즈계의 주요 사건 및 관련 뮤지션들의 활동을 알아봤습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재즈 퓨전의 확대
재즈 퓨전에서 발아한 스무드 재즈의 인기
퓨전 외 뮤지션들의 다양한 활동
클럽 재즈인 애시드 재즈 탄생
재즈 리바이벌과 스트레이트 어헤드 재즈
여성 보컬 재즈의 유행
여기서 마지막 두 가지가 1980년대를 설명하는 키워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재즈 리바이벌과 스트레이트 어헤드 재즈입니다.
재즈 리바이벌(Jazz Revival)
1980년대에는 퓨전이 아닌 전통 재즈, 스윙, 밥 등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이를 재즈 리바이벌 또는 재즈 복고주의라고 부릅니다. 재즈 리바이벌을 대표하는 연주자가 1980년대 초 혜성같이 등장한 윈튼 마살리스입니다. 그가 지향하는 재즈 리바이벌은 달리 표현하면 스트레이트 어헤드 재즈입니다.
스트레이트 어헤드 재즈(Straight-ahead Jazz)
단어의 1차적 의미는 직진하는 재즈입니다. 즉, 유행하던 전자악기 기반의 재즈 퓨전이나 비밥 또는 하드 밥의 연주 방식에서 벗어난 프리 재즈에 한눈팔지 않고 주로 1940~1950년대 모던 재즈 뮤지션들이 주도한 비밥과 하드 밥으로 직진하는 재즈를 의미합니다. 스트레이트 어헤드 재즈의 2차적 의미는 정통 재즈입니다. 이 정통 재즈에 불을 당긴 연주자가 윈튼 마살리스고 1980년대에 붐을 일으킵니다. 즉, 이러한 정통 재즈가 유행한 1980년대를 재즈 리바이벌이라고 합니다.
위의 두 단어는 차이가 있습니다. 재즈 리바이벌은 스트레이트 어헤드 재즈를 지향하는 1980년대의 트렌드를 설명하는 것이고, 스트레이트 어헤드 재즈는 1960년대부터 발전하여 1980년대에 부각이 된 재즈 장르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두 용어는 상호 연관성이 높아 제 글에서는 동의어처럼 사용합니다.
재즈 리바이벌, 스트레이트 어헤드 재즈, 그리고 윈튼 마살리스
1980년대도 재즈 퓨전이 여전히 강세였습니다.
또한 대중 음악에 있어서는 뉴웨이브(신스팝), 포스트 펑크, 얼터너티브, 헤비메탈 등이 인기를 얻는 시기입니다. 재즈 리바이벌은 스트레이트 어헤드 재즈를 지향하는 일련의 활동으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재즈 장르의 하나인 스트레이트 어헤드 재즈는 지금 우리가 접하고 있는 현대 재즈 혹은 마일즈 데이비스를 필두로 형성된 재즈 퓨전과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스트레이트 어헤드 재즈(Straight-ahead Jazz): 키워드
1960년대에 발전
당시에 유행한 재즈 퓨전 불인정
록과 전자 악기 중심의 팝적인 접근 거부
프리 재즈 요소도 지양
어쿠스틱 악기에 의한 스윙과 밥 중심의 연주
'스트레이트 어헤드'는 1960년대 록 비트나 전자 악기를 채용하던 재즈의 경향 즉 재즈 퓨전과 구분하기 위하여 비평가들이 만든 용어입니다.
앞으로 직진하여. 곧바로.
이 단어에는 전자악기를 채용한 록 비트 기반의 연주를 통하여 팝적인 방향으로의 선회, 우회, 혹은 경로 재설정을 거부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앞으로 쭉 곧바로.
어쿠스틱 악기로 안정된 비트를 만들면서 그대로 쭉 스윙 혹은 밥을 추구하는 스트레이트 어헤드 재즈. 뉴올리언즈에 시작된 재즈의 전통을 되새기면서.
이는 재즈 퓨전과 프리 재즈가 핫했던 1960년대에 상대적으로 밀려 있었던 밥에 대한 관심 내지는 집중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윈튼 마살리스가 생각하는 재즈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재즈의 핵심: 스트레이트 어헤드
① 블루스
② 스탠더드
③ 하모니
④ 스윙감 있는 비트
⑤ 재즈에 대한 장인 정신
⑥ 뉴올리언즈에서 시작된 전통 재즈의 숙달
마살리스가 생각하는 재즈의 근간을 스트레이트 어헤드 재즈의 필수 조건이라고 가정해 볼까요?
그렇다면 스트레이트 어헤드 재즈가 재즈 퓨전을 지양하니 두 장르의 공통점은 전혀 없을까요?
① 블루스
음악 장르로서의 블루스가 아닌 재즈의 핵심 구성 요소인 블루스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블루스는 재즈, 록, 팝 등의 여러 장르에도 도입되어 음악을 더욱 풍부하게 합니다. 또한 재즈 퓨전을 전자악기 중심의 록적인 비트와 가깝다고 한다면 블루스도 재즈 퓨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② 스탠더드
재즈가 장르로 정립된 1920년대 이후 많은 곡들이 재즈 스탠더드가 됩니다. 재즈 뮤지션들이 작곡한 곡들 중 많이 연주된 작품, 미국의 문화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즐겨 부른 송북(뮤지컬, 영화음악 등을 포함), 전통 음악 혹은 다른 장르에서 유입되어 재즈로 연주된 곡들, 재즈 발라드 등이 그 예입니다. 이러한 곡들은 연주 목록에 자주 나타나고 녹음으로도 많이 남아있는 곡들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논 스트레이트 어헤드 재즈(Non-straight-ahead Jazz)에서 스탠더드를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연주자의 오리지널 작품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스탠더드를 커버하는 경우 하모니, 비트, 리듬 등의 변화를 통해 새로운 작품으로 해석되곤 합니다.
③④ 하모니와 스윙
스윙 재즈의 경우 지휘자 혹은 리더의 악기를 중심으로 리듬 악기의 꾸준한 비트와 혼 섹션의 솔로 그리고 전체적인 앙상블이 돋보입니다. 여기에 스윙감이 부가되면서 춤출 수 있는 대중 음악으로서의 기반을 확보합니다. 반면 프리 혹은 아방가르드 재즈는 이러한 연주와는 다릅니다. 불협화음의 연속을 통하여 뮤지션의 자유로운 음악적 표현을 강조하였던 반면에 마살리스가 생각하는 재즈는 코드와 멜로디 전개의 일관성을 통하여 좀더 아름답게 들리는 연주에 관심을 갖습니다.
하모니는 멜로디와 함께 서양 음악의 핵심 요소입니다. 어릴 적 클래식과 재즈 수업을 병행했고 클래식에서도 뛰어난 연주를 보인 마살리스는 어쩌면 재즈도 이러해야 한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재즈 엣 링컨 센터 오케스트라 (출처: wyntonmasalis.org)⑤⑥ 장인정신과 전통재즈
1920년대 재즈가 하나의 음악 장르로 정착되었고 중심지는 뉴올리언즈였습니다. 이후 대중적인 스윙이 유행하였고 연주자의 독주가 가능한 비밥이 창조되어 감상용 재즈로 트렌드가 바뀝니다. 연이어 하드 밥과 포스트 밥이 각각 1950년대, 1960년대를 풍미하면서 모던 재즈의 황금기를 구가합니다. 한편 1960년대에는 흑인의 권리, 베트남 파병, 히피 문화, 록 음악 등 정치·사회·문화적 이슈가 대두되면서 프리 재즈가 힘을 얻게 되었고 1960년대 말에는 재즈 퓨전이 엄청난 파괴력으로 재즈계를 흔들게 됩니다. 이 시점에 스윙과 밥 중심의 연주를 하는 뮤지션들은 어떠하였을까요? 많은 뮤지션들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됩니다. 일부는 1920년대부터 약 40년간 지속된 재즈의 전형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 두가지 모습이 마살리스가 생각하는 재즈의 기준점입니다. 즉 전통재즈에 대한 이해 그리고 그러한 재즈를 기반으로 지금까지 형성된 재즈에 대한 천착(장인정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윈튼 마살리스 셉텟: 2022년 7월 6일 @ 마르시악, 프랑스 (사진: Luigi Beverelli)
①~⑥을 통하여 마살리스가 지향하는 재즈가 어떤 것인지 살펴보았습니다. 또한 스트레이트 어헤드 재즈가 1960년대 이후 주류였거나 상당한 메시지를 던졌던 재즈의 하위 장르들(재즈 퓨전, 프리 재즈, 아방가르드 등)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마살리스의 재즈관은 재즈에서의 순수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뉴올리언즈에서 시작된 전통재즈를 기반으로 모던재즈에 이르기까지의 재즈가 진정한 재즈'라고 주장하고 이를 충실히 연주에 반영하며 행동으로 옮긴 것이 '재즈 리바이벌'입니다.
윈튼 마살리스 셉텟: 2022년 7월 8일, 리지필드, 커넥티커트 (사진: Sarah Escarraz)마살리스의 생각과 연주는 재즈계의 논쟁이 되었고 재즈계를 대표하는 선배들이 이 논쟁에 뛰어드는 결과를 야기합니다.
So what's the problem?
The great Miles Davis mentioned about Wynton Masalis like this;
“I really liked Wynton when I first met him. He's still a nice young man, only confused.”
In addition, Keith Jarrett said that Masalis imitates other people's styles too well and his music sounds like a high school trumpet player to Jarrett.
데이비스와 자렛은 위와 같은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그렇다면 마살리스는 데이비스와 그의 작품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Miles is a general who has betrayed his country.
대충 감이 오시나요?
전통과 진보
보수와 혁신
순수와 혼혈
모범생과 이단아
멋진 연주와 그렇지 않은 창의적인 연주
이러한 상대적인 단어들을 연상케하는 마살리스.
또한 서양 고전음악으로 고개를 돌리면, 클래식에서 원전 연주와 현대적인 해석에 대한 호불호, 글렌 굴드의 바흐 연주에 대한 찬반양론, 나이젤 케네디 혹은 바네사 메이가 등장했을 때의 센세이션과 뒤따라오는 비판 등도 떠오릅니다. 뮤지션이 지향하는 가치와 그가 표현하는 음악은 별개일 수 없습니다. 또한 그 가치는 옳고 그름으로 재단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다양성, 융통성, 포용성, 실험성, 혁신성 등의 개념을 통해 어디에 더 가까운 것인지 상대적인 위치를 가늠할 순 있을 겁니다. 또한 위의 추상적 개념들이 재즈 역사를 만들어 온 것도 사실입니다.
재즈가 정립된 후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재즈는 여러 하위 장르의 탄생을 통해 진화하고 있습니다. 마살리스가 지향하는 스트레이트 어헤드 재즈 그리고 그가 주창하는 재즈의 모습. 다음 글에 소개할 그의 주요 작품들을 확인하시고 재즈 리바이벌을 생각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핫불도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