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판소리의 사전적 의미는 여러 사람이 모인 장소(판)에서 부르는 노래(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17세기에 등장한 한국의 고전작품이자 고전음악인 판소리는 고종 재위 시절 문인 겸 판소리 연구가 신재효가 집대성하며 급물살을 타게 됩니다. 국악에 있어 판소리는 클래식에 있어 오페라에 견줄 수 있는 장르입니다. 프리마돈나의 연기와 같이 소리꾼은 노래(소리), 말(아니리), 그리고 몸짓(너름새, 발림)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갑니다. 고수는 소리꾼에게 장단(리듬, 비트)을 제시하고 추임새로 호응합니다. 판소리는 조선 시대 평민과 하층민의 애환과 설움을 씻겨주고 양반 등 지배 계층의 부조리를 해학적으로 풀어감으로써 다른 국악 장르와 구분됩니다.
판소리가 우리 삶에 가까이 다가온 결정적인 장면들이 기억납니다.
1. 임권택 감독의 1993년 영화 <서편제>, 구성진 판소리와 더불어 언덕의 롱테이크 샷은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명장면
2. KBS에 종종 출연한 명창 박동진(1916~2003)의 판소리와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라는 그 말
3. 명창 신영희(1942~)가 KBS 코미디 프로그램(1988~1990)의 꼭지 '쓰리랑 부부'에 출연하여 부른 판소리
4. 명창 안숙선(1949~)의 춘향가 그리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프리마돈나
5. 임방울(1904~1961)의 '쑥대머리'가 SBS 개그 프로그램 웃찾사의 꼭지에 삽입되어 코너를 빛냄(2007~2008)
6. 2019년 데뷔한 5인조 밴드 이날치의 활약
그 외에도 님들은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고전음악을 꾸준히 접하고 있습니다.
판소리의 유파는 섬진강의 서쪽, 동쪽 지역을 기준으로 크게 서편제와 동편제로 나뉩니다.
동편제: 섬진강 동쪽인 구례와 남원 등에서 형성된 유파, 담백한 창법이 특징임
서편제: 섬진강 서쪽인 광주, 나주, 보성 등에서 형성된 유파, 화려한 기교를 특징으로 함
강산제: 서편제 계열의 유파, 서편제 창시자인 박유전이 말년에 서편제와 동편제를 융합한 형태
중고제: 동편제도 서편제도 아닌 유파, 충청도 북부에 분포한 것으로 추정, 현재 전래 안 됨
서양의 종합 예술인 오페라는 베르디, 푸치니 등의 이탈리아 오페라와 슈트라우스, 바그너 등의 독일 오페라로 대별할 수 있습니다. 반면 판소리는 하나의 문학 작품이 하나의 마당을 구성하고 이런 마당이 모여 현재의 판소리에 이르렀습니다.
열두 마당 중 전래된 다섯 마당: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열두 마당 중 미전래된 일곱 마당: 배비장타령, 옹고집타령, 장끼타령, 변강쇠타령, 무숙이타령, 강릉매화타령, 숙영낭자전 또는가짜신선타령
신재효가 정리한 여섯 마당: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변강쇠타령
참고로 판소리는 공무원 시험에 간혹 출제될 정도로 의미 있는 우리의 소중한 유산입니다.
이화중선(李花中仙, 1898~1943)
판소리 명창의 계보는 시대순으로 17~18세기, 개화기(19세기 흥선대원군, 고종, 순종 집권 시기), 일제강점기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부산 동래 생인 이화중선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판소리 명창입니다. 그에 필적하는 명창은 김초향(1900~1983)으로 쌍벽을 이루었습니다.
●이화중선의 삶●
1898년 부산 동래 출생, 아버지는 갓쟁이
5세에 전남 보성으로 이사하여 유년기 보냄
14세에 어머니 사망하고 남원으로 이사
15세에 남원의 박씨에게 시집(자식 셋 딸린 후처자리, 바보스런 남편과 구박이 심한 시어머니)
시집살이를 견디다 못해 가출
순창 큰무당 장작녕의 동생 장덕진을 찾아가 무당소리를 배우고 동거
이후 장덕진에게서 판소리와 육자배기를 사사하고 1921년 경 상경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주최 전국판소리대회에 참가하여 '추월만정'으로 스타 탄생
1927년 일본 콜롬비아 초청으로 음반취입을 하러 일본 방문, 다수의 명반 녹음
1930년대 중반 <빅터 춘향전> 녹음, 발표
1943년 일본 나카사키에서 공연, 큐우슈우 한인 마을을 방문하던 중 풍랑으로 사망, 향년 44세.
1930년대 축음기의 보급으로 메가 히트급의 판소리 음반이 나오게 되었고 이화중선은 임방울과 함께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그가 녹음한 음반은 100장이 넘습니다. 일제강점기 경성에서는 일본풍 노래와 신민요가 유행하였는데 소리꾼 이화중선의 등장은 주목할 만합니다. 당시 SP(Standard Play) 음반 한 장은 앞뒤면 합쳐 6분 분량이었습니다. 판소리 완창(춘향가 6시간, 심청가 5시간, 흥보가 3시간)을 음반으로 만든다는 것은 한계가 있는 상황. 그리하여 그의 완창 공연은 한반도를 들썩이게 하였습니다. 전국판소리대회를 통해 혜성같이 등장한 그는 심사위원 박지홍에게서 '소리계의 선녀'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화중선의 판소리는 쉽게 불러 듣기 쉽다는 것입니다. 많은 명창들이 오랜 시간 피나는 연습을 통해 득음하여 들려주는 묵직하고 걸죽한 음색과는 다릅니다. 여기서 이화중선의 소리에 대한 호불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찌됐든 가장 인기 있는 소리꾼이었던 그는 1943년 일본 나가사키 공연을 소화하게 됩니다. 이어 큐우슈우 조선인 마을로 공연을 가던 중 탑승한 정원초과의 배가 나가사키 앞바다에서 거센 파도로 전복합니다. 그의 생도 44세로 마감하였습니다.
대표작(1992년 복각판)
신나라 레코드가 기획하여 발매한 판소리 명창 시리즈 중 이화중선 편입니다. 그의 SP 음반들 중 대표적인 곡을 복각한 컴필레이션 CD입니다.
수록곡은 총 12곡이며 오케, 빅터, 콜롬비아 등 1930년대 당시 대표적인 미국 축음기 음반사들을 통해 출시된 곡들입니다. 1920~1930년대 활동한 명고수 이흥원이 이화중선의 소리를 받쳐주고 있습니다. 또한 가야금, 거문고, 해금, 단소, 장구 등에 능했던 예인이자 소리꾼으로도 뛰어났던 김종기의 북과 장구 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30대에 요절한 그는 가야금 산조의 명인으로도 유명합니다. 대금 산조 명인 박종기(1880~1947)의 연주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진 속 이화중선의 모습은 단아합니다. 작은 체구에서 흘러나오는 울림과 여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의 무대명처럼 꽃 속에서 거니는 선녀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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