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스 다이너
전세계에서 주목 받는 케이팝. 케이팝의 걸그룹은 1990년대 핑클, 에스이에스 등의 1세대를 시작으로 투애니원 등의 2세대를 거쳐 블랙핑크, 레드벨벳 등의 3세대로 이어졌고 팬데믹 전후 4세대에 이르게 됩니다. 엔데믹 이후 4세대 걸그룹들의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는데 대형 또는 중소 규모의 기획사에 소속된 그룹들이 두터운 팬층을 형성하며 케이팝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습니다. 걸그룹들을 몇 마디로 평가하고 비교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인데다가, 각 걸그룹의 음악 스타일이 다르므로 비록 팬들의 전문성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아마추어의 관점에서 느낌을 표현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제가 케이팝 걸그룹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된 시점이 2024년 4월 경입니다. 빅뱅과 투애니원을 들으며 학창 시절을 보냈던 딸에게 케이팝에 대하여 묻게 되었는데, 아빠의 질문에 일일이 답을 하기 어려웠던 딸은 A4 용지를 가져오더니 케이팝의 변천 과정과 세대별 주요 그룹을 적어주었고 엠넷의 프로그램에 참여한 연습생들을 언급하며 주요 4세대 걸그룹들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때부터 중년의 아저씨가 걸그룹을 파게 되는데 1년이 채 안 된 지금 주요 방송 3사의 음악 프로그램(뮤직뱅크, 음악중심, 인기가요)을 찾아 듣는 풍경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으나 하나의 걸그룹을 듣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식으로 몇 달 동안 주요 걸그룹의 음악을 들었는데 아이브, 르세라핌, 여자아이들, 블랙핑크, 레드벨벳, 뉴진스, 엔믹스, 있지, 스테이씨, 키스오브라이프, 케플러 등이 포함되었습니다.
여기서 6인조 그룹인 아이브는 2021년 말 결성되어 2025년 2월 24일 기준 정규 앨범(1장), EP(3장), 싱글 앨범(3장) 등 총 7장의 앨범을 발표하였습니다. 케이팝의 앨범은 영미의 팝과 차이를 보입니다만 앨범 종류는 아래와 같이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정규 앨범: 영미 팝의 스튜디오 앨범에 대응, 보통 6~7곡 이상을 수록
EP 앨범: Extended Play, 정규 앨범보다 적은 곡을 수록
싱글 혹은 미니 앨범: 싱글 몇 곡을 묶은 앨범
영미에서는 정규 앨범을 발매하기 전 몇 곡을 싱글로 미리 발표하여 시장 반응을 봅니다. 케이팝의 경우는 걸그룹의 활동 기간을 감안했을 때 음반 작업 및 안무 등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전세계 콘서트까지 소화한다면 한 장의 정규 혹은 EP 앨범을 준비하여 발표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중간중간에 싱글을 발표하며 다가오는 공식 앨범과의 공백을 최소화하고 팬들과의 원활한 소통을 도모하고 사업 측면의 시너지를 기대할 것입니다.
아이브의 곡은 다른 그룹에 비하여 샘플링에 강점을 보이는데 이를 포인트 안무에도 활용하고 전체적인 퍼포먼스 측면에서의 기여도가 높아 보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2022년 8월 발표한 싱글 "After LIKE"입니다. 이 곡은 1978년 디노 페가리스와 프레디 페런이 공동 작곡하고 글로리아 게이너가 불러 인기를 끈 디스코 "I'll Survive"의 일부를 샘플링하였습니다. 국내에서는 멜론 포함 주요 음원 차트 1위를 휩쓸었고 스포티파이 누적 스트리밍도 4억회를 넘어섰습니다. 물론 이 곡의 작곡자 리스트에는 디노 페가리스가 있습니다. 프레디 페런은 2004년 사망하여 리스트에는 없지만 저작권은 가족 등을 통해 승계되었으리라 봅니다.
사진 왼쪽은 2025년 2월 발표한 아이브는 세 번째 EP <IVE EMPATHY>입니다. 앨범 발매 전 싱글 "Revel Heart"를 선보였고 "Attitude"가 뒤를 이었습니다. 두 곡 모두 샘플링의 기여도가 높습니다. "Revel Heart"는 류이치 사카모토가 작곡한 <Merry Christmas Mr. Lawrence(전장의 크리스마스)>의 OST에서 샘플링했습니다. 한편 "Attitude"는ㄴ 럭키비키 장원영의 작사 참여도 눈길을 끌었지만 포인트 안무에 사용하는 샘플링이 귀에 쏙 들어왔습니다.
사진 오른쪽은 포크 록 가수 겸 송라이터 수잔 베가가 1987년 4월 발표한 2집 <Solitude Standing>입니다. 이 앨범은 그의 대표작으로 국내 라디오를 강타한 곡 "Luka"와 "Tom's Diner"를 수록하고 있습니다. 곡 "루카"는 아동학대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톰의 식당"은 화자인 식당 주인 톰이 단골들과 식당 주변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이브의 "애티튜드"에는 수잔 베가가 작곡가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원곡이 좋은 만큼 아이브의 샘플링도 곡의 중심에서 역할을 합니다. 여성 포크의 계보를 잇는 베가는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케이팝을 이끄는 걸그룹들 중 하나인 아이브 또한 그러합니다. 이 둘의 만남이 음악 속에서가 아닌 실제 협연으로 이어지는 상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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