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트릭 브이
서양음악의 관점에서 본다면 음악은 크게 고전음악으로 불리는 클래시컬 뮤직과 대중음악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지금은 이 두 경계가 완화되었고 음악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만 이전에는 고전음악에 대한 약간의 우월성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이는 아마도 서양음악이 형성된 역사적 배경에서 찾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 서양음악은 중세의 경우 신의 찬미를 중심으로 발전하였고 봉건제를 지탱하는 백성들의 음악이 따로 발전합니다. 굳건한 왕권은 궁정악사와 고용된 작곡가를 포용하였고, 귀족이나 부호들의 후원 혹은 의뢰를 통해 작품이 만들어지고 연주가 행해졌습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바흐, 헨델,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등은 작곡을 직업으로 삼아 후원자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거나 고객의 의뢰를 받아 작품 활동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였습니다. 길게 설명할 것은 아니나 어쨌든 우리가 흔히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장르는 이런 배경이 있었고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누구에게나 소구될 수 있는 음악이 되었습니다.
현대의 클래식 연주자가 과감한 의상을 하거나 돌출 행동을 할 경우 또는 다른 장르를 채용하여 작품을 만드는 경우 대중의 시선을 끄는 것을 넘어 비판의 대상이 되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지만 사람의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으면서 음악에 대한 상대적인 주류를 형성하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음악을 소비하는 층이 바뀜에 따라 해당 음악에 대한 인식이 변화게 됩니다. 이런 변화의 동인으로는 개방성, 혼종성, 실험성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바야흐로 우리는 케이팝이라는 지구적인 음악을 접하면서 대중음악에 열광하고 클래식을 나만의 방식으로 듣는 "내 맘대로", "내 멋대로"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개성의 시대. 나쁜 것인가요?
최근 수십년 간 음악의 발전을 보면 클래식이 대중음악에게 손을 내민 것보다는 대중음악이 클래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대중음악의 새로운 장르를 모색한 활동이 더 두드러집니다. 그 결과물을 크로스오버라는 통에다 집어 넣으려면 새로운 스타일들은 차고 넘칩니다.
음악 감상에 있어 이러한 현상을 생각해보면서 클래식과 전자음악이 만난 멋진 작품을 소개합니다.
빨간 머리 신부로 불리는 안토니오 비발디(1678~1741)는 바로크 시대 작곡가 겸 바이올리니스트로 작품 <사계>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특히 협주곡에서 역사적인 성과를 일구었는데 <사계>는 많은 클래식 연주자들의 레퍼토리가 되었습니다. 학창 시절엔 이 무지치의 연주가 먼저 꼽혔습니다만 이후 젊은 연주자들의 참신한 해석과 연주로 명연은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1952년 독일 빌러펠트에서 태어난 토마스 빌브란트는 클래식 작곡가이자 지휘자입니다. 여러 오케스트라를 거쳤고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과 베를린 필하모닉을 위해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카라얀은 극과 극의 평가를 받는 지휘자이지만 인기는 대단하였고 클래식 레이블 도이치 그라마폰의 성장을 견인한 인물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카라얀의 EMI 앨범에 더 손이 갑니다.
1980년대에 빌브란트는 클래식계에서 활동하는 한편 솔로 경력을 추구하게 되는데 그 중심에 전자음악이 있습니다. 1984년 클래식과 전자음악을 포용하여 발표한 첫 앨범이 사진의 <The Electric V>입니다. 제목에서 전자음악과 클래식(비발디의 V)의 만남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또한 비발디를 연상시키는 빨간 머리 캐릭터가 앨범 커버를 채우고 있습니다.
이 앨범은 클래식 애호가보다 전자음악, 앰비언트, 프로그레시브나 아방가르드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더 어필할 것 같습니다. 1980년대 후반 이 앨범을 처음 접했을 때 인상 깊었던 계절은 가을 언저리였습니다. 매서운 바람과 더불어 길거리에 구르는 깡통소리는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계절별 특징은 신시사이저가 만드는 사운드를 통해 더욱 강화됩니다. 빌브란트는 원작자인 비발디의 <사계>를 참신하게 편곡하여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합니다. 솔로이스트들은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 오보에, 하프시코드, 오르간, 오보에 등으로 협주곡으로서의 <사계> 형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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