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nu High
트럼펫은 재즈 콤보를 구성하는 주요 악기로 줄곧 색소폰과 비교됩니다. 만일 재즈 역사에서 색소폰이 트럼펫을 제치게 된 결정적인 순간을 꼽아보라면 버드라고 불리는 찰리 파커의 등장과 비밥의 탄생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비밥의 등장은 악기의 코드 전개를 통해 솔로 연주자의 능력을 여과없이 보여주게 되었는데 트럼펫보다 통이 큰 색소폰은 묵직하고 호방한 사운드로 재즈의 맛을 배가시켰습니다.
그렇다고 트럼펫이 색소폰에 밀리면서 세컨드 악기로 전락했다는 의미는 전혀 아닙니다. 트럼펫은 비밥이 탄생하기 이전 아주 인기를 끄는 악기였으며 트럼펫과 비슷하지만 좀 더 똥똥한 코르넷을 연주하는 뮤지션들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사치모(뜻: 가방이 들어갈 정도로 큰 입)라고 불린 루이 암스트롱입니다. 트럼펫과 코르넷 연주를 구분해서 들으면 사운드가 다르게 느껴집니다.
트럼펫이 코르넷과 구분되듯이 훌루겔혼과도 그러합니다. 훌루겔혼의 음색은 트럼펫과 달리 굵고 부드럽습니다. 물론 트럼펫도 소음기를 혼에 부착하여 음색을 부드럽게 할 수 있지만 훌루겔혼은 태생적으로 그러합니다. 어둠의 왕자인 마일즈 데이비스는 소음기를 잘 활용하여 재즈 발라드를 더욱 아름답게 연주합니다. 훌루겔혼을 사용한 연주자로는 1980년대 국내에서도 인기를 끈 척 맨지오니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트 파머의 연주도 좋아합니다.
캐나다 토론토 출생인 케니 휠러(1930~2014)는 리더 겸 작곡가로 트럼펫과 훌루겔혼을 연주합니다. 그가 발표한 앨범 중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이 있다면 1976년 ECM에서 발표한 <Gnu High(누 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상적인 커버는 일본 사진가인 타다유키 나이토 작품입니다.
이 앨범의 특별함을 아래와 같이 표현할까요?
케니 휠러의 아름다운 훌루겔혼 연주
오리지널 세 곡으로만 구성한 앨범
키스 자렛(피아노), 데이브 홀랜드(베이스), 잭 디조넷(드럼)의 리듬 섹션 트리오
30세의 자렛이 사이드맨으로 참여한 마지막 작품
ECM 시리즈에서 발견한 진흙 속의 진주
작품은 1975년 6월 뉴욕에서 녹음되었습니다. 키스 자렛은 같은 해 1월 역사적인 솔로 앨범을 녹음하였는데 바로 <The Köln Concert(쾰른 콘서트)>입니다. 당시 자렛은 솔로 활동과 더불어 어메리칸 쿼텟과 유러피언 쿼텟을 통해 음악 세계를 확장시키는 때였습니다.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스탠더즈 트리오는 1980년대에 결성되는데 여기에는 게리 피곡(베이스)과 잭 디조넷(트럼)이 참여하였습니다.
케니 휠러의 ECM 데뷔 앨범에 참여한 키스 자렛, 데이브 홀랜드, 그리고 잭 디조넷은 모두 ECM에 소속된 뮤지션으로 이 앨범에 참여하였지만 이 셋의 만남은 마일즈 데이비스 밴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데이비스가 1960년대 후반 록과 전자 악기를 도입하여 재즈 퓨전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1970년대 재즈 퓨전 혹은 재즈록이라 할 수 있는 명작들을 이어서 발표하는데 자렛, 홀랜드, 그리고 디조넷이 데이비스 밴드에 있었습니다. 자렛은 1971년 후반 밴드를 떠나면서 전자 악기를 더이상 연주하지 않았습니다.
수록곡 세 편의 제목, 길이,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Heyoke (21:56): 헤요크, 북미 인디언 말로 제례의식에 등장하는 광대를 뜻함
'Smatter (6:01): 뭐가 문제야?, "What's the matter?"를 축약한 것
Gnu Suite (12:49): 영양을 위한 조곡, 앨범 제목 <Gnu High>는 개체수가 증가한 영양을 뜻하며 영양을 모티브로 만든 곡
앨범 <누 하이>는 후라이드반 양념반 같은 맛을 들려줍니다. 후라이드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휠러의 아름다운 훌루겔혼 연주에 빠져들 것이고, 양념치킨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자렛이 들려주는 여지없는 매콤함에 시원한 생맥주를 들이킬 것입니다. 이 앨범의 포만감은 과하지 않습니다. 그저 넉넉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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