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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 베이커 (1)

1985년 유럽

by 핫불도그

트럼펫 왕자들

쳇 베이커 & 마일즈 데이비스

재즈 트럼펫 계보에 왕자라는 닉네임을 가진 두 명의 전설이 있습니다. 한 명은 어둠의 왕자라고 불렸으며 다른 한 명은 쿨의 왕자라고 칭하였습니다. 어둠의 왕자는 1926년 생인 마일즈 데이비스로 1991년 65세로 삶을 마감하였고, 쿨의 왕자인 1929년 생 쳇 베이커는 1988년 58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둘의 나이는 세 살 차이였지만 베이커에게 데이비스는 존경의 대상이었습니다. 데이비스는 1940년대 중반 이미 비밥을 창조한 찰리 파커의 콤보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1949~50년 쿨 재즈를 알리는 앨범 <The Birth of the Cool>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베이커는 1952년 쿨 재즈의 대표 바리톤 색소폰 연주자인 제리 멀리건 밴드에서 연주를 시작합니다. 수려한 외모의 베이커는 재즈계의 제임스 딘이 되어 인기를 끌었고 1950년대 전반에 거쳐 커리어를 대표하는 앨범들을 발표하게 됩니다. 베이커의 삶에는 마약, 술, 여자, 각종 사고가 꼬리표처럼 따라 다닙니다. 특히 1950년대 시작한 마약은 그의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20대 호시절 이후 베이커의 30대는 그다지 밝지 않았습니다. 침체기는 계속 되었고 컴백한 시점이 40대 초반인 1973년 경입니다. 복귀작은 1974년 신생 레이블인 CTI에서 발표한 <She Was Too Good To Me>입니다.

CTI를 대표하는 뮤지션들의 연주와 돈 세비스키의 편곡과 지휘, 그리고 베이커의 트럼펫과 보컬은 스탠더드 중심의 곡들을 잘 소화하였습니다. 이 음반은 국내에 LP로도 발매되었습니다.


1980년대는 베이커의 말년에 해당하는 시기입니다. 1950년대와 비교할 수 없겠지만 미국과 유럽 등을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하는 시기입니다. 특히 1985년 전후 유럽에서의 베이커 족적은 주목할 만합니다. 1985년 쿨의 왕자가 유럽 레코드를 통해 다수의 작품을 녹음합니다.

엔야(독일): <Strollin'>

스티플체이스(덴마크): <Diane>

소넷(스웨덴): <Candy>

타임리스(네덜란드): <Chet Baker Sings Again>

크리스크로스(네덜란드): <Chet's Choice>


위의 앨범 포함 1985년 전후 유럽에서 녹음한 작품들은 베이커 말년 음악의 핵심입니다. 50대 중반의 연주와 노래는 20대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지만 베이커 본연의 모습에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이라 손길이 갑니다.


크리스크로스 앨범 두 장

L: <Blues For A Reason> , R: <Chet's Choice>

두 앨범은 크리스크로스에서 1985년 발표한 연작입니다. 왼쪽은 1984년 가을 퀸텟으로 녹음하였고 오른쪽은 트리오로 1985년 여름에 녹음하였습니다. 두 앨범의 연주는 대비가 됩니다.


<Blues For A Rason>은 피아노-베이스-드럼으로 이어지는 리듬 섹션에 쳇 베이커의 트럼펫과 와르네 마쉬(1927~1987)의 테너 색소폰이 콤비를 이루며 조밀하고 긴박한 연주를 들려줍니다. 베이커를 트럼피터로 보느냐 싱어로 보느냐에 따라 감상이 달라지고 선호하는 작품에 차이가 생길 수 있습니다만 이 앨범은 연주 중심의 베이커를 만날 수 있는 수작입니다. 또한 마쉬의 색소폰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총 여섯 곡 중 베이커의 오리지널은 "Blues For A Reason" 포함 세 곡입니다.


<Chet's Choice>는 트럼펫-기타-베이스 트리오 연주입니다. 일반적인 트리오의 드럼이 제외되었고 필립 캐서린(1942~)의 기타가 피아노 자리를 대신합니다. 캐서린은 쳇 베이커, 래리 코리엘, 닐스 피터슨(NHOP), 스테판 그라펠리 등의 작품에 참여하여 이름을 알린 벨기에 기타리스트입니다. 기타와 베이스가 보조를 맞춘 색다른 편성은 꽤 그럴싸합니다. 베이커의 트럼펫과 캐서린의 기타는 조용히 대화하며 사뿐사뿐 나아갑니다. 특히 "My Foolish Heart"에서 들려주는 베이커의 노래와 연주는 청자의 가슴을 파고 듭니다. 앨범명 '쳇의 선택'과 같이 참신한 리듬섹션과 수록곡(모두 커버곡이며 대부분 재즈 스탠더드)에 있어 베이커의 선택은 탁월합니다. 이처럼 1985년 유럽에서의 베이커는 후반기 커리어를 갱신하고 있었지만 삼년 뒤인 1988년 5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호텔에서 추락사로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참고: 크리스크로스는 현대 재즈에서 역량있는 젊은 뮤지션들의 뛰어난 작품을 꾸준히 선뵈고 있습니다. 재즈 감상 시 이 레이블을 관심있게 보시기 바랍니다.

핫불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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