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넷 콜맨(1930~2015)
콜맨은 프리 재즈를 이끈 알토이스트이자 작곡가 그리고 밴드 리더입니다. 이번 글은 색소폰 연주자로서의 콜맨을 들여다기보다는 다음과 같은 흐름 속에서 콜맨이 어떤 생각을 갖고 새로운 재즈 스타일을 만들며 연주했는지 시대사적인 접근으로 풀어 나갑니다.
1940년대 비밥
1950년대 하드밥
1960년대 프리재즈의 형성 및 발전
1960년대 말 아방가르드 재즈로의 심화
이후 1970년대 전개되는 재즈 퓨전
프리 재즈가 도래하기 전의 상황
1950년대 중반부터 비밥이 발전한 하드밥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1950년대 후반에는 하드밥과 다른 형태의 소울 재즈가 발전합니다.
1960년대에는 프리 재즈가 등장합니다.
밥에서는 코드의 변화를 통한 즉흥연주로 솔로악기 연주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후 마일즈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 허비 행콕 등이 이와 전혀 다른 모드 주법을 시도하여 밥보다 명상적이고 내적인 스타일의 재즈를 발전시킵니다.
1940년대 말부터 밥 기반의 연주를 하던 콜맨은 새로운 방식의 연주를 고민하게 됩니다.
오넷 콜맨의 활동
1930년 텍사스주 포트 워스에서 태어난 콜맨은 테너 색소폰으로 텍사스 블루스와 비밥을 연주하였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친 후 1949년 프로 경력을 시작하면서 알토 색소폰으로 전향합니다. 피 위 크레이톤 밴드의 멤버로 LA를 방문하여 공연을 하던 콜맨은 서부에 머물면서 뜻이 맞은 뮤지션들을 만나 자신의 음악과 연주를 다듬게 됩니다. 그 결과물로 1958년 <Something Else!!!!>를 발표합니다. 그의 새롭고 난해한 작품에 젊은 연주자들이 참여하였고, 콜맨은 "음악이 언제가는 더 자유로와지고, 작품을 만드는게 공기를 들이마시듯 자연스럽게 될 것이다."라고 인터뷰에서 밝힙니다. 콜맨이 프리 재즈 형성에 지대한 역할을 하는 순간입니다. 아래 사진은 콜맨이 서부에서 만난 뮤지션들과 연습하는 장면입니다.
L-R: 에드 블랙웰, 듀이 레드맨, 오넷 콜맨, 찰리 헤이든 그와 작품 활동을 한 주요 연주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돈 체리: 코르넷
듀이 레드맨: 테너 색소폰
에릭 돌피: 베이스 클라리넷
찰리 헤이든: 더블 베이스
빌리 히긴스: 드럼
에드 블랙웰: 드럼
이들과의 협연을 통하여 콜맨이 당시 뮤지션들의 작품과는 매우 다른 스타일의 작품들을 연이어 발표합니다.
콜맨의 초기작과 프리 재즈
아래는 콜맨의 초기 작품들입니다.
1958년 1집: Something Else!!!
1959년 2집: Tomorrow is the Question!
1959년 3집: The Shape of Jazz to Come
1, 2, 3집 앨범명이 예사롭지 않지요?
1960년대 말까지의 콜맨 작품에는 피아노가 들어가지 않습니다. 피아노가 이끄는 코드 제시를 배제하고 혼, 베이스, 드럼 정도의 소규모 편성을 지향합니다. 즉 한 연주자가 제시한 아이디어를 다른 연주자가 이어받아 연주하면서 멜로디 라인, 리듬, 강렬함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지도록 하는데 중점을 둡니다. 이게 바로 프리 재즈!!!
한편 "프리 재즈"의 어원은 그의 앨범명과 관련이 있습니다.
1960년 6집 1960년 12월 녹음하여 1961년 9월 발표한 6집입니다. 앨범명이 "Free Jazz: A Collective Improvisation(자유로운 재즈: 집단적 즉흥 연주)"입니다. 여기서 오넷 콜맨의 새로운 연주방식을 프리 재즈라 부르는데 이후 이 스타일은 1960년대를 지배하는 재즈 장르가 됩니다. 앨범 커버의 사진은 잭슨 폴락의 작품 "White Light"입니다. 폴락이 액션페이팅 기법으로 표현한 추상화와 콜맨이 연주하는 방식은 닮아 있습니다. 이 앨범에는 두 곡이 실려 있으며 연주 시간은 37분 3초입니다.
프리 재즈
오넷 콜맨이 주창한 프리 재즈는 어떤 스타일일까요? 위에 일부 답이 있었습니다.
프리 재즈는 비밥, 하드밥, 모달 재즈에서 나타나는 템포, 톤, 코드 전개 등을 과감히 던져버리고 플레이어의 자유로운 연주에 더 무게를 둡니다. 어떻게요? 한 사람이 아이디어를 제시하여 연주하면 다른 사람이 이어 받아가는 형식을 취하면서 멜로디와 리듬이 잘 어우러지도록 구성을 하면서요.
1940년대 밥(비밥)을 거치면서 다양한 음악적 재료가 첨가되면서 밥이 하드밥으로 발전하고 1950년대를 풍미하게 됩니다. 또한 쿨 재즈, 모달 재즈, 라틴 재즈 등도 목격하게 되지요. 1950년대 말 그리고 1960년대 초 어딘가에 여러분이 있습니다. 지금은 포스트 밥이 나타나기 전이고 1960년대 말 재즈 퓨전이 도래하기 한참 전이기도 합니다. 이 시기에 새로운 음악 혹은 더 뉴 씽(the New Thing)이라는 주제로 음악을 연주하는 접근이 시도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형성된 재즈의 한 장르를 프리 재즈라고 부르게 됩니다.
프리 재즈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습니다.
재즈에 있어서의 추상화와 같은 장르
연주자는 주제나 작품 전개에 있어 자유가 부여됨
참여한 연주자도 자유롭게 연주 또는 연주에 반하여 반응
흑인의 권리에 대한 요구와 베트남 참전 등의 사회적 이슈가 뮤지션들의 저항, 신념, 위로, 황홀경 등을 표현하는 데 자극을 주면서 프리 재즈가 성행
이러한 새로운 음악을 주도한 이는 오넷 콜맨과 존 콜트레인을 꼽을 수 있으며 대중과는 거리가 있는 음악으로 자리매김
한편 젊은 층은 록과 소울 음악에 열광하였으며, 뮤지션들은 이 분위기에 따라가다가 1960년대 후반 퓨전을 맞이하게 됨
프리 재즈가 형성, 발전하는 시기가 1957년 이후 벌어지는 흑인 인권 운동 시점과 일치합니다. 흑인 뮤지션들의 의식이 반영된 작품이 다수 나오기도 합니다. 비록 프리 재즈가 대중의 큰 호응은 받지 못 했지만 아방가르드 재즈에 영향을 주었고 70년대에 전개될 재즈 퓨전 혹은 퓨전 재즈에 기여하게 됩니다.
프리 재즈의 도메인은 넓지 않습니다. 또한 듣기에도 쉽게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감상하시면 좋습니다. 왜?재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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