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머니 마음

집수리 마음수리

by 세공업자

따르릉~따르릉~


“네, 여보세요?”

“아 네 여기 00 아파트인데요. 싱크볼 오래 쓴 거 교체가능 할까요?”
“싱크볼요?”(싱크볼은 싱크대 스테인리스로 된 통 전체를 말함)

“싱크볼! 물 내려가는 데 말이에요. 물이 잘 안 내려가요!”
“아~싱크대 배수통 말씀이시군요!”
“아~네... 가장 저렴한 거 얼마예요?”


싱크배수통과 베란다 건조대, 욕실 샤워헤드와 호스가 낡았다며 가장 저렴하게 교환을 의뢰하셨다. 방문해서 상태를 확인하고 이틀 후에 예약을 잡았다. 의뢰인과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고 내려오며 부동산 일을 한다는 것과 주차장에 도착하자 고급외제차 벤츠의 차주임을 알았다. 나는 15년 된 차에 올라 막 출발하려는 순간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어머니가 오늘 늦더라도 꼭 좀 해줄 수 없느냐고 하시는데 오늘 가능할까요?”


그제서야 허리가 구부정하시고 80세가 훌쩍 넘어 보이시던 어르신이 생각이 났다. 어머님이 부탁을 하시니 거절할 수 없어 알겠다며 제고자재를 챙기고 없는 것은 급히 구입해서 재방문을 했다. 어머님 댁은 전주신데 이번에 내려가면 한참 후에나 따님 댁에 올라올 예정이라 급하게 해달라고 하셨다.

베란다 천장의 낡은 빨래건조대는 줄과 페인트가 부식되어 만질 때마다 미세한 가루가 날렸고 고정 못은 전동드라이버를 사용해서 푸는 방식이 아니라 망치로 박아 넣은 것이라 세월이 묵은 만큼 뽑기도 어려웠다. 천장전고가 높아 낮은 사다리 끝에 올라서서 작업하다 보니 아슬아슬한 스릴마저 느껴졌다.


낡은 건조대를 제거하고 요청한 가장 저렴한 건조대를 달아보니 약간 높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의뢰한 분이 가장 저렴한 것을 요청한 터라 어머님께 설명하고 싱크대 배수통을 갈기 시작했다. 배수호수를 풀어보니 안에는 기름찌꺼기가 가득 쌓여있었다. 바닥하수구도 살펴보니 기름덩어리가 덕지덕지 붙어있어 일회용 숟가락으로 파내고 의뢰자인 따님께 전화를 했다. 하수관이 기름찌꺼기로 거의 막혔으니 관통기로 뚫어야 아래층에 피해가 없을 것이라 전달했다. 의뢰인의 반응은 의외였다. 이 집에서 오래 살지 않을 예정이니 물만 안 새게 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


싱크대 문제가 쉽게 정리되지 않겠다는 생각에 샤워기헤드와 호수를 먼저 갈기로 하고 욕실에 들어갔다. 샤워기 거치대는 벽에 수직으로 고정되어 있는 슬라이드바와 규격이 맞지 않게 커서 덜렁거리며 달려있었고 그 밑을 비누각 홀더로 받쳐 내려가지 않게 사용하고 있었다. 샤워기헤드와 줄을 갈아 마무리하고 싱크대로 다시 갔다.


어머님은 따님 돈 들어갈 것이 걱정이 되셨는지 꼬챙이로 하수구를 뚫으면 안 되냐고 하시며 나무젓가락을 가져오셨다. 나는 너무 짧아 안 된다고 했더니 얇고 긴 스테인리스 봉을 가져오셨다. 싱크하수구는 ㄴ자로 내려가는데 말이다. 나는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을 외면할 수 없어 교체하고 남은 낡은 샤워기 줄을 하수배관에 넣어 보겠다고 하곤 찌르고 돌리고 해 보았지만 오래된 기름덩어리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씨름하고 있는데 지켜보시던 어머님은 그만하자고 하신다. 의뢰하신 따님이 하수구를 뚫어 달라고만 하면 될 일을 왜 요청하지 않는 것일까? 그렇다고 내 마음대로 뚫고 비용을 청구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다. 의문이 들었다.


나는 하수구에서 역류한 물이 싱크배수관과의 연결부위에서 새지 않도록 실리콘으로 마감하고 있는데 어머님은 욕조와 타일사이에도 발라달라고 하셔서 그렇게 해드리고 3시간이 넘어서야 그 집을 나왔다.

집에 와서도 다음날에도 막힌 하수구가 아래층에 피해를 줄까 싶은 찜찜한 마음은 가시질 않았다. 피해금액은 고스란히 위층 부담이 된다.

다음날 오후, 막힌 하수구는 그냥 두면 아래층에 피해가 갈 수 있으니 비용이 부담이 되면 무상으로라도 해드리겠다는 문자를 남겼다. 한참 후 '다음에 해주세요'라고 답장이 왔다.


이틀 후 아침 일찍 따님이 전화를 해왔다. 천장빨래건조대가 높아서 어머님이 사용하기 힘들어하시고 샤워기 각도가 조절이 안 되어 아이들이 힘들어한단다. 정작 막혀있던 싱크대 하수구 이야기는 없었다. 천장건조대는 가장 저렴한 제품으로 해달라고 하더니 높다고 한다.

어머님이 불편하시면 안 되니 자재상에서 기존 제품의 2배 금액인 특대형 건조대를 구입하고 샤워기 헤드도 다시 구입했다. 따님에게 기존금액에 추가로 들어간 금액만을 문자로 전달했으나 답장이 없다.

이 상태로는 샤워기 각도 조절을 할수 없어 우레탄을 덧 데어 고정 함.

집수리 일을 궁금해하는 아내와 의뢰인의 집에 방문하여 건조대를 교환하고 샤워기 거치대는 우레탄을 덧대어서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수리해서 고정해 놓고 샤워기 헤드도 갈아 드렸다. 그리곤 궁금했던 싱크대 하수구를 살펴보고 상태가 심각하면 무상으로 뚫어 놓고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뚫려 있었다. 어머님께 여쭤보니 내가 다녀간 다음날 일찍, 비용을 다 주고 다른 곳에서 뚫었다고 하신다.

아내와 그 집을 나설 때까지도 추가로 들어간 자재비용에 대한 답장은 없었다.

문자를 남겼다. 하수구 뚫으셔서 참 다행이라고. 그제 어머님이 하수구 막혀서 뚫어야 한다는 말에 따님 돈 들어갈까 봐 걱정이 되셨는지 꼬챙이로 뚫으면 안 되느냐는 말씀에 마음이 짠했다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추가로 들어간 자재비는 입금 안 해도 된다는 내용과 사업 번창하시기를 바란다는 응원을 보냈더니 바로 답장이 왔다.

‘아~네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어요.’


눈앞의 이익보다는 사람마음이 불편하지 않은 것이 먼저인 것 같았다.


여보 미안해~ 오늘도 마이너스야...


ps

막힌 하수구 사진은 심약자를 위해 생략했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