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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가고 싶다

<집수리 마음수리>

by 세공업자

모처럼 한가한 휴일아침, 아내와 인천 형님 댁으로 가는 고속도로는 차량소통이 시원할 정도로 여유로웠다. 여유와 평온함도 잠시, 전화벨이 울렸다. 다급한 중년여성의 목소리는 집에 물이 쏟아졌었다고 말을 했다. 지금도 새고 있을지도 모른다며 급히 가봐 줄 수 있겠냐는 부탁이었다. 집에 물이 쏟아지고 있는데 본인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나는 어디 멀리 여행을 가셨냐고 물었고 전화목소리는 세를 놓은 빌라라고 했다. 휴일이라 어디 연락할 곳도 없고 문 앞에 원형자석이 하나 붙어 있기에 전화해 보았다고 한다. 순간 며칠 전 어느 아파트 집수리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자그마한 자석전단지를 문 앞에 붙여놓고 온 것이 생각이 났다.


본인은 지금 텃밭에 있어 가볼 수가 없다고 한다. 빌라주민들이 집주인인 자신이 소유한 집에서 물이 쏟아졌다며 연락을 해왔다고 한다. 나와 아내는 당장엔 갈 수는 없고 형님 댁에 갔다 오는 길에 들려보겠다고 하곤 주소를 보내달라고 했다. 형님 댁에 가서도 ‘물이 새고 있다’는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아내와 서둘러 해당 주소지로 향했다. 골목을 돌고 돌아 스마트폰 네비가 가리키는 필로티구조(건축물의 1층은 기둥만 서는 공간으로 하고 2층 이상에 방을 짓는 방식) 빌라건물 앞에 섰다. 주차장 천장을 살펴보니 해당호실의 안방욕실이 있는 곳으로부터 물이 흘렸던 흔적들이 있었다.


집주인이 보낸 메시지에는 주소와 세입자의 전화번호가 함께 있었다. 세입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젊은 여성의 목소리였고 왜 자신의 집에서 물이 샜는지 자기는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안방욕실엔 세면대수전이 망가져 온수가 안 나오고 샤워기도 망가져 사용하고 있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은 세면대수도를 잠깐 열고 욕실청소를 했고 지금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집주인은 수리는 해주지 않고 식구가 적다며 거실화장실을 쓰라고만 했단다. 집을 이사 가고 싶다고 했다.

세상에나! 요즘 시대에 그런 집주인이 있다니... 속마음이 속삭였다.


집을 확인해 볼 수 없겠냐고 했더니 세입자는 남편도 출장으로 없고 애기도 예민해서 보여줄 수 없다고 한다. 통화를 하고 있는 사이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중년남성분, 젊은 새댁, 중년 여성분은 어제 위층에서 쏟아져 내린 물에 대해서 심각성을 이야기하면서 집주인이 와서 보지도 않았고 세입자도 신속하게 조치를 안 하고 있다며 열을 내며 이야기들을 쏟아내었다. 그중 중년여성이 유독 성과 화를 내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뭐라 해야 할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집주인에게 다시 연락을 했다. 나는 세입자와 주민들에게 들은 내용을 전달했다. 집주인은 자신의 집에 세 들어 살고 있는 사람은 중국인 부부라고 했다. 세면대에 뜨거운 물만 안 나와서 그냥 사용하라고 했단다. 그리곤 위층 여자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위층여자는 건물 곳곳을 청소하고 부지런하기는 하지만 여기저기 참견이 많다고 했다. 분리수거를 잘해야 한다! 건물을 깨끗이 사용해야 한다! 택배는 왜 이렇게 많이 와서 길을 막느냐! 택배 시키지 마라! 등등 심한 참견으로 중국인부부가 이사 가고 싶다고 했단다. 이야기는 길어지고 길어져 집에 오는 도중에도 끝이 나질 않았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내일 샤워기와 세면대수전을 손봐주기로 하고 핸즈프리전화를 끊을 수가 있었다.


다시 세입자와 통화를 했다. 내일 늦은 오후 방문해서 세면대와 샤워기를 수리할 예정이라고 했고 가급적이면 모두 사용할 수 있게 해 드리겠다고 했다. 중국인 세입자는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게 뭐라고...

다음날 늦은 오후 약속시간이 한참이 지나서야 집주인이 빌라 앞에 나타났다. 그 외 두 커플(4명)이 빌라 앞에 모였다. 세입자인 중국인 부부를 두둔하며 시위라도 하듯 친구커플들이 모인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함께 빌라에 올라가 중국인 친구커플들은 거실에 진을 쳤고 세입자 부부와 집주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세면대수전(수도꼭지)을 확인해 보았다. 세면대는 낡고 낡았으며 물마개와 배수관마저 낡아서 사용할 수 없었다. 세면대 수도를 연결하는 앵글밸브가 삭아 수돗물이 폭발하기 일보직전이었다. 주차장 누수의 원인은 이 앵글밸브에 있었다. 세입자가 청소를 하려고 수돗물을 틀었을 때 앵글밸브의 틈사이로 흘러나온 수돗물이 타일과 콘크리트벽사이로 흘러내린 것이다. 누수가 눈에 보이지 않으니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온수와 냉수 앵글밸브를 확인해 보니 한쪽은 교체되어 있었다. 보통 한쪽이 망가지면 다른 한쪽도 확인하고 상태가 안 좋으면 교환한다. 같이 수명이 다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집주인께 이유를 물어보니 세입자가 들어 오기 전에 문제가 생겨 철물점 아저씨가 교체해 주고 갔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가까운 철물점사장님을 부르지, 왜 굳이 멀리 있는 나를 부르셨을까? 그건 터무니없이 비싼 수리비였다고 하셨다.

나는 그 비싼 철물점으로 급히 뛰어가 앵글밸브를 시세보다 2배가량 비싼 가격으로 구입해 왔다. 앵글밸브와 모든 부품이 교체되니 세면대의 제 기능을 찾았다.

이번엔 샤워기를 수리하려고 하니 몹시 노후되어 고장 난 상태였다. 10여 년이 넘도록 한 번도 수리하지 않았던 것이다. 분해를 하고 보니 수도배관이 하나는 안쪽에 깊숙이 들어가 있었다. 이것은 연장할 수 있는 서비스닛블이라는 동으로 된 연장부속이 필요했다. 다시 비싼 철물점으로 달려갔다. 시세보다 2배 높게 부품을 구입해 와서 샤워기수전을 교체했다.


세면대와 샤워기를 수리해서 제 기능을 찾을 때마다 세입자인 중국인부부는 안색이 밝아져 갔다. 만약 누수 된 집 아래에 다른 세대가 있었다면 피해는 매우 컸을 것이다. 다행히도 아래층은 주차장이었다.

시끌벅적했던 빌라단지 주차장 누수사건은 이렇게 저렴하게 마무리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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