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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밤중에 올림픽?

<집수리 마음수리>

by 세공업자

아내와 지방일정을 마치고 올라오는 길에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주방 후드(환풍기)를 손봐 줄 수 있느냐는 의뢰였는데 일단 견적을 받아보고 싶다고 한다.


"그런데... 이거 말을 해도 될까요?"

의뢰인은 말꼬리를 흐렸다.

나는 무슨 일인지 궁금하다고 했다.

"밤만 되면 천장 위에서 올림픽이 열려요"

"예! 한 밤중에 올림픽이요?"

"네 올림픽이요. 막 뛰고 달리고 자기들끼리 난리가 아니에요!"

"혹시..."

"네, 맞아요. 쥐! 쥐들이 밤만 되면 천장 위에서 뛰고 달리고 하며 올림픽을 하는 것 같아요."

"천장 위에서 쥐들이요? 거길 어떻게 올라갔지요?"

"환풍기 밑을 보면 갉아 놓은 것들이 떨어지는데 그리로 다니는 것 같아요"

"아~그래서 환풍기를 봐달라고 하셨군요!"

"네!"

우리가 지방에서 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늦은 오후였고 의뢰인은 오후에 출근해서 밤 9시에 퇴근한다고 한다. 의뢰인은 밤 9시 30분에 와 줄 수 있느냐고 물었고 급한 일 같아 그렇게 방문하기로 일정을 잡았다.


밤 9시, 궁금증을 갖고 의뢰인의 집으로 출발했다. 잠시 후 전화벨이 울렸고 의뢰인이었다. 본인은 퇴근해 집에 도착했으니 방문해도 된다고 한다.

외곽에 있는 의뢰인의 집은 어두운 골목길을 깊숙이 들어가 꺾고 또 꺾고 돌고 나서야 나타났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곤 집 밖을 둘러보았다. 휴대용 작업등을 밝히고 1층에 있는 환풍기 후드켑을 살펴보았으나 안쪽에 해충이나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도록 설치되어 있는 촘촘한 망에는 이상이 없어 쥐들은 드나들기에는 불가능했다. 의뢰인은 벽을 뚫고 벽속을 타고 들어 왔을 수도 있다고 해서 벽을 구석구석 살펴보았으나 구멍 난 곳은 없었다.


우리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오래된 빌라내부는 어둡고 많이 낡아 있어 손볼 곳이 제법 많아 보였다. 의뢰인은 모친을 모시다 최근 건강이 안 좋으셔서 요양병원으로 모셨다고 했다. 형편이 안 좋아 집에 손도 못 대고 있었다고 한다. 반려 견 두 마리가 우렁찬 울림으로 맞아 주었다.

오래전부터 친분이 있었던 여사친이 최근 집으로 들어와 잘 살아 보고 싶었는데 쥐들 때문에 무서워한다고 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잘해보고 싶다고 한다.


어느 여자가 밤만 되면 쥐들이 천장 위에서 올림픽을 하는 집에서 살고 싶어 할까?


주방후드를 살펴보니 정말 밑에 갉아 놓은 것들이 떨어져 있었다. 나는 주방후드와 외부 환풍파이프를 연결해 주는 알루미늄주름관을 잡아당겨 보았다. 순간 툭하며 알루미늄주름관이 빠져나왔다.

주방후드와 연결되어 있는 알루미늄주름관을 외부 후드켑으로 연결해 주는 파이프라인이 아예 없었던 것이다.

벽만 크게 뚫려있었고 안에 연결파이프가 없으니 벽과 후드알루미늄주름관 사이는 빈 공간으로 남게 되어 그쪽으로 쥐들이 들락거린 것으로 추정되었다. 의뢰인도 깜짝 놀라 했다. 오랜 기간 거주하면서도 이렇게 되어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의뢰인은 그간 마음 고생한 원인을 찾았다며 매우 기뻐하며 좋아했다. 사정이 안 좋으니 최소한의 비용으로 조치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한다.

좌측은 주방후드의 알루미늄주름관과 연결는 환풍구파이프가 없음/우측은 정상 임.

나는 우선 벽에 뚫려있는 환풍구멍크기의 파이프를 구해 집어넣고 주변틈새는 쥐들이 갉지 못하도록 단단한 물질로 막고 후드의 알루미늄관을 연결하면 될 것 같다고 알려드렸다.

의뢰인은 스스로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기뻐하며 출장비를 주겠다고 한다. 나는 뭐 한 것도 없는데 무슨 출장비냐며 사양했다. 나는 집수리 잘해서 행복하시라고 하곤 집을 나서서 차에 오를 때까지 의뢰인은 배웅해 주신다. 시동을 걸고 출발하려는 순간.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큰 목소리가 들렸다.


그 뒤로도 의뢰인이 파이프를 구하지 못해 헤맬 때도, 주방후드를 아예 안 쓴다며 벽을 막는 방법을 의논할 때도, 수리는 잘하셨는지 궁금해서 등 등 몇 번의 통화를 더한 것으로 기억된다.

지금 즈음은 밤의 올림픽이 막을 내리고 편안하고 안락한 환경 속에서 알콩달콩 사랑을 키워나가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말 몇 마디에 누군가 행복해질 수 있다니, 삶은 참 오묘하고 신비로움으로 가득한 세계임이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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