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플랫폼을 통해 욕실문 손잡이(방문도어록)와 세면대배수구세트 교체가 필요하다는 의뢰를 받았다. 가지고 있던 경제적이고 튼튼한 욕실손잡이를 권해드렸지만 디자인과 색상이 마음에 안 드셨는지 구입해 놓겠다고 하신다. 방문약속을 했으나 틀어지고 다시 틀어지다 어렵게 저녁시간 가까운 늦은 오후에 약속을 잡았다.
욕실문 손잡이 교체와 세면대배수트랩과 팝업은 어렵지 않은 작업이라 해당제품과 작업할 수 있는 공구만 단출하게 챙겨 방문했다. 방문을 하니 정리가 안 된 짐들이, 이사한 지 얼마 안 된 분위기였다. 욕실손잡이를 달고 나니 걸쇠의 간격이 걸쇠 홈에서 너무 멀어 잘 걸리지 않았다. 애초에 문이 문틀에 비해 너무 작게 제작된 것이다. 의뢰인에게 말씀드리니 비용이 안 들게 잠기게만 해달라고 하신다. 세면대배수구세트의 수리를 마치고 나니 돌출된 벽에 시계를 달수 있게 못하나 박아달라고 하신다. 벽을 확인해 보니 단단한 콘크리트 벽이다. 시간이 늦기도 하였고 간단한 작업들이라 단출하게 공구들을 챙기면 되겠다 싶어서 차에서 내려놓은 해머드릴을 가지고 오질 않았다. 미리 말씀을 해주셨으면 좋았을 것을. 현장에 와서 추가 작업을 요구하는 것은 한두 번 겪는 일이 아니었기에 챙기지 않은 잘못은 내게 있었다. 내일은 휴일이라 아내와 형님댁에 방문하기로 했던 날이기도 하여 출발하기 전 오전에 잠시 방문하기로 하곤 의뢰인의 집을 나섰다.
다음날 형님 댁으로 출발하기 전 오전에 잠깐 가서 어제 일을 마무리하고 오겠다고 했더니 아내는 얼마 받기로 했냐고 물어본다. 못 하나 박아드리면 된다고 공짜라고 했더니 ‘이구, 빨리 다녀와요’ 한다. 8월 말 오전이라고 하지만 무더운 날씨에 잠깐 밖에 서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였다. 오전에 방문하니 집안은 후덥지근했다. 차가운 에어컨바람을 싫어하시나 보다 생각이 들었다. 해당 벽을 타공 하려 했더니 다른 쪽 벽을 해달라고 하신다. 해머드릴로 콘크리트 벽을 뚫게 되면 소음뿐 아니라 먼지가 심하게 날린다. 먼지받이로 받는다고 해도 날릴 수밖에 없어 깨끗하게 닦아내야 한다. 욕실손잡이 레치(걸쇠)도 잘 잠길 수 있도록 덧대어 보수하였다. 작업을 하고 나니 금세 온몸이 땀에 젖었다.
막 정리하려는 순간, 서랍이 잘 안 닫힌다고 하신다. 서랍을 살펴보니 레일 쪽에 결속나사들이 헐거워져 있었고 서랍에 체결되어 있던 나사가 달아나고 없어 덜컹거렸다. 레일을 고정하고 서랍에 맞는 부품을 찾아 체결하니 서랍이 부드럽게 제 기능을 찾았다.
또 막 정리하려는 순간, 이번에 새로 구입한 주방진열장의 선반 간격이 안 맞아 높이가 있는 양념병들을 수납하기 힘들다며 선반하나를 제거해 달라고 요청하신다. 이 진열장은 나사못이나 풀기가 쉽게 조립되어 있는 상태가 아니라 'ㄷ'자 타카핀으로 여러 개를 박아 놓아 분해하기 쉽지 않아 보였다.
의뢰인은 선반을 제거하려고 해도 꼼짝도 안 했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하신다. 나는 의뢰인인 여성분에게 진열장 상태를 설명하고 막 선반을 제거하려는 순간!
"여봇! 기사님 하시는 것 좀 봐요? 당신도 좀 보고 배워서 해봐요!" 하신다.
진열장에 결속되어 있는 측면과 후면의 ㄷ자 타카핀들을 선반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뽑아내고 드디어 선반을 제거하였다. 그러는 동안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분이 뭔가 말씀을 하시려는 듯 타이밍을 보고 계신 듯했다. 일을 마무리하고 짐을 정리하려는데 의뢰인이 말씀하신다.
"우리가 이사하고 나서 짐을 정리하고 집안 보수를 하려고 장비도 빌려다 놓고 구입도 하고 했어요"
정말 한 켠에 전동드릴과 드라이버 펜치 등 전문가 수준의 공구들이 놓여 있었다.
"저거 쓰는 법을 이냥반 한테 좀 가르쳐주시면 안 될까요?" 하시며 전동드릴을 가리키신다.
전동드릴은 기본보다도 꽤 괜찮은 전동드릴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사용방법을 모르셨는지, 벽에 구멍을 못 내어 시계를 걸지 못했던 것으로 생각되었다. 나는 전동드릴의 드릴 척에 “드라이버 비트”를 어떻게 체결하고 분해하는지, 모드(드라이버/드릴/해머)를 어떻게 설정하는지, 회전속도는 어떻게 조절하는지 등 사용기능을 간단하게 설명해 드렸다. 설명을 들은 남편분이 직접 해보시고 안 되는 부분은 같이 해 보면서 기능을 알려드렸다.
못하나 공짜로 박아주고 오겠다며 잠깐 나섰던 길이 시간이 한참 지나서, 그것도 땀에 흠뻑 젖은 몰골로 나타난 모습에 아내는 잔소리보다는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며칠 후 동네플랫폼에 후기가 올라왔다.
이사 후 이것저것 고장 난 것들을 셀프로 고치다 지쳐갈 때쯤 의뢰했는데 수리도 꼼꼼하게 해 주고 못 몇 개 박아달라고 했는데 못도 박아주고, 서랍 고장도 손봐주고 욕실손잡이가 잘 안 잠기는 것도 봐주고 심지어 전동드릴 사용법도 알려주고 갔다는 내용이었다.